황선하 수필가

 

여름이 시작되었다. 푸르고 싱그러워야 할 여름에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이웃들이 있어 울적하다. 일명 ‘옥시’ 사건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가습기를 더욱 깨끗하게 사용하고 싶어서 넣었던 소독약이 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 사건은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조금만 더 솔직하게 연구발표를 했고 그 발표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옳은 방법으로 처리하였더라면 이렇게 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불법으로 도용된 약품만 믿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모 대학의 교수 연구결과로 제품의 안정성을 주장하였지만 이 또한 불법으로 조작되어진 치졸한 처사다. 인간의 존엄성에 또 한 번 자존심이 상하는 불쾌한 심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품설명서를 읽고 인증된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어떤 안전성을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지 의구심이 앞선다. 왜 이렇게 불법이 난무하는 것일까.

불법의 끝은 어디까지 일지 캐 낼수록 의문에 꼬리를 문다. 이번 사건 뿐 아니라 불법들로 시작된 일들은 해결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문제가 들통이 나면 처음에는 일단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모르쇠’로 주장한다. 본인은 모르는 일이며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던 발뺌은 ‘유감이다’라고 애매하게 얼버무리다가 서서히 원인규명이 드러나게 되면 곧 이어 ‘사죄 한다’ ‘보상 하겠다’로 결론 지으려한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채 링거를 맞으면서 휠체어에 앉아서 최대한 처량한 모습을 연출하며 법의 심판대로 간다. 이런 모습을 화면으로 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의 발단부터 해결방법까지도 일방적 수순이다. 이번 가습기 사건만 하더라도 수 많은 피해자들의 시간보다는 가해자들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음에 더욱 화가 난다. 훌쩍 시간이 흐른 후에 들고 나온 사죄와 보상카드는 피해자들에게는 오히려 괘씸한 마음과 고통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처음부터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허망해 하는 그들의 처연한 눈빛 속에서 어느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슬픔과 억울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일은 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는 것뿐임이 답답하다.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불법천국, 혹은 안전 불감증 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다음 세대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되는 부끄러운 용어 임에도 불구하고 만연되어있는 불법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음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을 물려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청년들이 음악, 미술, 문학, 영화, 과학, 체육, 요리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을 때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사회악을 뿌리 뽑자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CCTV를 곳곳에 설치해도 꼭 지키려는 개개인의 한 뼘 양심과 도덕성이 없으면 지켜지기 힘들다. 자칫 조그마한 불법을 행하려할 때 주위를 살피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엘로우 카드를 냉정하게 꺼내어 자신을 먼저 살펴보는 일은 어떨까. 완벽하지는 않아도 떳떳하게 후회 없는 인생을 걸어가자. 조금 느리고 귀찮아도 기다리며 최소한의 양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상큼한 여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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