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오늘(25일) 방한한다. 1년만이다. 국내 정치권은 반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운다. 국민들도 6일간 한국에 머무르는 반 총장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여느 때와 달리 그의 이번 방한이 더욱 더 주목받는 것은 4.13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잠룡들이 우수수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인물 기근 속에 친박계들의 구애가 노골적인 상황에서 그의 행보 하나하나는 반기문 대망론, 충청 대망론과 맞물려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문재인·안철수와의 3자 가상대결에서 38.0%, 34.4%, 21.4%로 1위에 올랐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55.3%), 부산·경남(42.9%)에서, 연령별로는 60대 이상(60.1%), 50대(50.4%)로 강세를 보였다.(이번조사는 5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52면을 대상으로 휴대전화(60%)와 유선전화(4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2015년 12월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 연령, 권역별 인구 비례에 따른 가중치 부여를 통해 통계 보정했다. 응답률은 5.1%(총 통화 2만491명 중 1052명 응답 완료),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이다.)
이 여론조사결과를 놓고 보면 반기문의 위력은 여·야가 겁 먹을 정도로 확실하다. 충주(출생지는 음성)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스펙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고 여기에 충청권 대망론의 중심에 서 있는 게 강점이다. 이웃인 제천 출신의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깜짝 발탁된 것이 반기문 대망론을 위한 포석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튼 반기문은 1년 7개월 밖에 남지 않은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쪽을 선택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지만 정치는 생물이이어서 아직 장담하기는 이르다.
올 연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은 연말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가타부타 빠른 입장표명을 원하고 있다. 충청도식 ‘글쎄유’나 ‘알았시유’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로는 반기문 주가를 반감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반기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슬슬 고개를 들어 그의 대망론에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한 야당 인사는 “우리 언론이 일방적으로 반 총장을 두둔하는 보도만 해 왔다. 유엔 사무총장 된 것이 국위선양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고 해서 미얀마나 가나의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세계적 권위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혹평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을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명이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 문제를 다루면서 “반 총장이 파리기후협정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성과”라면서도 “반 총장은 (유엔 내) 행정능력이나 (유엔 밖의) 통치 능력 모두에서 실패한 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피 아난 등 등 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이 10년이나 임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능력이나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라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5개국이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힐난했다.
특히 유엔이 유엔 사무총장 퇴임후 정부직 진출을 제한하는 결의를 공식 채택해 둔 사실이 알려져 그가 대선에 뛰어들 경우 적절성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결정이지만 존중받아야 할 관행으로 해석돼 반 총장에게는 변수로 등장했다.
반 총장이 대선후보가 되려면 몇 가지 넘고 가야 할 일이 있다. 반 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정부의 도움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반대했고, 심지어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 총장에게 그렇게 했던 지금의 새누리당이 애걸하는 게 우습고, 그런 애걸을 뿌리치지 못하는 반 총장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또 졸속협상 논란을 빚은 ‘일본군 성노예’ 협상을 지지한 것은 두고두고 반 총장의 아킬레스 건이 될 것이다. 반 총장은 작년 말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아 내지 못한 협상에 대해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느니 하면서 할머니들의 가슴을 찢어 놨다.
지금까지 반 총장은 대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의 성품대로 이번 방한기간에도 확답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제껏 그래왔듯, 뜨뜻미지근한 반반(半半·모호한 처신) 전법으로는 국민들을 품을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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