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여러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유니슨’ 즉 제창(齊唱)은 노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성부를 같이 부르는 것으로 ‘애국가 제창’ 등과 같은 표현에서 쓰인다. 앙상블(Ensemble)이라 불리는 중창(重唱)은 하나의 노래를 여러 개의 성부로 나눈 뒤 각각의 성부를 한 사람씩 맡아서 부르는 것으로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구성된 혼성 4중창’ 등으로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코러스 즉 ‘합창(合唱)’은 각각의 성부를 중창의 경우와는 달리 한 사람씩이 아닌 여러 명이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창은 음악적 정의에 따라 그 시작에 관한 주장이 분분하다. ‘함께 노래했다’라는 기록에 의존한다면 기원전으로 합창의 시기(始期)를 끌어 올려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역사에서의 시간적 위치를 확정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일상적 생활의식으로서 오랜 동안 ‘합창’이 함께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분업의 원리에 의해 모든 일이 세분화되면서 음악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여러 사람이 각자의 성부를 지키면서 전체의 화합에 참여해야하는 합창을 사람들로부터 재빨리 멀어지게 했다. 이러한 경향이 현재의 합창문화를 만들었다. 작금의 합창에 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최소한의 전문적 음악지식과 기교를 가져야만 참여할 수 있는 분야이며 누군가 이에 관해 반론을 제시하려면 기획공연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아마츄어활동이라는 제한을 두었을 때만 성립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존 개념에 풋풋한 반론을 제시하는 음악활동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독특한 사건이 될 일이 다른 곳이 아닌 충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충북남성합창단 '친구들'의 창단이 3년 전에 시도되었을 때 그것은 그저 음악을 이름으로 내 건 지역사람들의 친목단체 정도로 인식될 일이었다. 단원을 뽑고 이들이 모여 연습하는 과정에서 음악이란 전문성이 그 모습을 드러낼 가망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핵심멤버인 김요식 단장과 이강희 교수, 그리고 김학근 지휘자의 음악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차이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7일 금요일 저녁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 친구들과 함께하는 추억의 7080 콘서트는 이러한 관점을 무색케 하며 관객들에게 감동의 무대를 선물했다. 이 날의 공연은 음악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기회였다. 창단 3주년 기념공연으로 펼쳐진 무대는 합창단 단원들의 연령대와 직업의 다양성 뿐 만 아니라 음악에의 이해정도에 관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합창을 통해 극복하는지에 관한 시험이었다. 음악의 본래의 목적은 기교의 화려함을 보이는 것에 주안점이 있지 않다. 사실 음악은 인간의 생활 그 자체의 표현일 뿐이며 그를 통해 얼마나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감성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존재가치가 있다. 전문적인 기교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친구들'의 음악에 관한 입장은 이번 공연프로그램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지금 장년층의 아이돌이었던 노사연, 권인하씨와 함께 꾸민 무대에서 합창단은 '만남', '사랑했어요' 등의 그들이 젊었던 시절의 애창곡에서 인생의 '하숙생'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오, 해피 데이(Oh, Happy Day)'로 삶의 정의를 내렸다. 합창단의 음악코치들이 '오, 나의 태양(O Sole Mio)'과 '푸니쿨리 푸니쿨라'로 찬조했으며, 우현경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크시대의 명곡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여름으로 단원들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 것은 참으로 이 날 공연의 구색을 맞추는 발상이었다.
  음악에서는 연주실력이 감동을 낳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반인을 늘 관객으로만 대접해야 한다. 감동이 먼저 선행된다면 보통사람을 공연자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선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무대에서는 격려가 감동을 대신하게 되어 있다. 충북남성합창단 '친구들'의 시도는 그것 때문에 모험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런데 이 모험이 감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세월이 바래도록 인생을 살아 온 중년 남성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이들의 모임의 저변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유형의 음악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며 '친구들'의 공연을 위해 써 놓았던 시 한 수로 공연의 감동을 대신한다.      


세월이여!
시들지 않는 청춘을 만난 적이 있는가?
삶의 무게를 온 몸에 걸치고도
좌절치 않는 사나이들의 모습을 아는가?
 
사랑이여!
우리의 노래를 들어 보았는가?
뭉뚱그린 두 손에 세상의 한을 모두 쥐고도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남자들을 보았는가?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고
우리의 아버지가 그랬듯
가슴을 멍들이고도 웃어야만 하는 우리는 아버지들이다.
사랑의 아픔과 세월의 고통을 삼키며
미소 지어야 하는 우리는 아버지들이다.
 
세월이 바래도록 살아보면 누구나 아는 법.
아버지는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니…
처음 보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들’이 되었다.
 
인생이여!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아픈 가슴이 웃는 소리를 느껴 보았는가?
눈물 흘리지 못하는 눈으로 부르는 우리의 사랑노래를
들어 보았는가?
 
세월이여!
사랑이여!
인생이여!
“충북남성합창단, 친구들”의 노래를 들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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