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강아지가 첫배 새끼를 낳았다. 하도 신실해서 맏이가, “강아지가 새끼 났어, 새끼 났어!” 소리 지르면서 방문을 화들짝 열었다. 그랬더니 아들애가 뛰쳐나가고 딸애가 뒤따르고 안사람도 “그리유!”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방문을 나서는데 팔순의 어머니가 정색을 하면서, “이제 새끼 난 어미보고 ‘강아지’가 뭐여 강아지가?” 하신다. 참 그렇다. “하지만 엄니, 코꼬는 우리 집에선 아직도 동네송아지마냥 ‘우리강아지’잖어유.” ‘코꼬’는, 갓 젖 뗀 강아지 한 마리를 애들 이모가 갖다 주면서, “진돗개 튀기래요 족본 없지만 제 어미가 꽤 영리하다니까 이놈두 영리할 꺼야요 잘 길러봐요 형부.” 했던 놈인데, 코언저리에 꼬막 같은 점이 있다 해서 애들이 붙인 이름이다. 해서 이놈이 집안의 마스코트처럼 돼서 ‘우리강아지, 우리강아지’ 한 것이 벌써 1년이 지나 새끼까지 배서 인제 낳았는데도  아직도 입에 배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여 인제 어미가 됐잖느냐. 어미 된 입장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똑같은 것이어. 사람은 시집장가 가서 애 낳아 어미아비가 되면 처자니 도령이니 또는 처녀총각 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어른 대우를 하지 않느냐. 마무리 짐승이라도 마찬가지다. 인제 ‘어미 개’니, ‘강아지어미’니 하든지 아니면 그냥 ‘코꼬’라구 이름 불러.” “알었어요 엄니.” “그런데 새끼는 몇 마리여?” “세 마리요.” “세 마리, 세 마리믄 솥발이잖여. 거 참 경사네. 이건 진짜 ‘솥발이’구먼!”
  ‘솥발이’, 맏이 형제들은 세쌍둥이다. 어머닌 당시로선 참으로 희한하게 여긴 세쌍둥이를 낳았다. 온 동네가 수군수군 대면서 이들 셋을 솥발이에 비유했다. 한배에서 난 세 마리의 강아지를 ‘솥발이’라고 하는데, 사람의 뱃속에서 세 애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었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사람을 짐승에 비유했으니 당사자 부모들로서는 비하하는 말로 들려 한꺼번에 세 아들을 낳았다는 즐거운 마음보다는 침울한 심경이 돼 서로가 눈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 남편이, “개가 말이요 보통 한 배에 대여섯 마리, 일고여덟 마리씩 낳지만 세 마리를 낳으면 세 솥발처럼 튼튼하게 버티면서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해서 ‘솥발이’라고 하지 않소. 그리고 명 길으라고 귀여운 자식들에게 ‘강아지’니, ‘돼지’니 하고 이름 대신 부르지 않소. 그러니 우리 애들 셋도 튼튼하고 명 길으라고 흡족한 마음으로 아주 ‘솥발이’라고 부릅시다.” 했다. 해서 맏이 형제들은 동네솥발이가 됐는데, 어머닌 이를 두고 이번에 난 세 마리의 강아지를  ‘진짜솥발이’라며 좋아하신다.
 맏이는 이 진짜솥발이들이 젖이 떨어지자 어머니의 분부대로 수놈만 남겨 놓고 암놈 두 마리는 인근 타동네로 각각 살림나 살고 있는 두 아우들에게 분양해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맏이의 중학교동창 내외가 꽤 오랜만에 손님으로 찾아 왔다. 참으로 절친했던 사이어서 어머니도 잘 아신다. 헌데 이 친구가 돌아갈 때 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며 손님들에게 재롱을 부리는 수놈 솥발이와 엉겨 놀더니, “얘, 저 에미가 또 새끼 날 거 아냐. 이 강아지는 내가 가져 갈란다.” 하고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무조건 차에 널름 싣는다. “그래요, 참 예쁘고 귀엽네!” 그의 안에서도 맞장구를 친다. 어정쩡하게 일을 당하자 떠나가는 차 뒤에서 맏이보다 어머니가 빈 입맛을 쩍쩍 다시며 더 서운해 하신다.
 그리고 어머니 생신을 맞이한 날 맏이네로 두 아우가 왔다. 그런데 이 둘째와 셋째가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어머닌 솥발이형제들의 안부부터 묻는다. “그래, 니들 집 솥발이들은 잘 크겄제?” 이에 둘째가 머뭇머뭇 하더니, “어무닌 사람안부는 안 묻고 강아지안부부터 물어유. 그거 동네사람이 탐을 내서 줘버렸어유.” 그러자 어머니가 셋째에게 얼굴을 홱 돌리더니, “니넨?” 하며 차갑게 묻는다. “우린 처남이 가져갔어유.” 그랬는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머니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대더니만 그 서슬로 언성을 높이며, “이 못난 것들아, 그 강아지들이 여느 강아지들이냐. 그것들 하나 건사를 못해 냉큼 들 가서 찾아와, 찾아와. 어여 어여!” 역정을 내며 세 형제들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몬다. 허허, 이를 어쩔거나 세 형제가 어정쩡히 내몰려 밖으로 쫓겨났다. 이를 알 리 없는 코꼬가 제 집에서 이들을 보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껑충껑충 거린다. 맏이가 코꼬에게 다가간다. “코꼬야, 솥발이 한배 또 낳아줘야겠다. 얼른 얼른!” 그러면서 코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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