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기싸움에 밥그릇 싸움까지 얹어 20대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기시감(旣視感·dejavu)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치’와 ‘일하는 국회’를 화두로 내세워 이젠 뭐 좀 되려나 싶은 기대감만 잔뜩 심어주더니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국회 개원 때마다 아웅다웅 싸움질만 벌였던 예전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역시나’ 재현하고 있다.
원 구성 법정시한인 7일을 넘기고도 여야간 양보와 타협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위법’의 불명예를 안고 출발하게 되는 20대 국회인데도 너나없이 ‘내 탓’ 대신 ‘네 탓’을 외친다.
여야 3당은 원 구성 법정 시한을 하루 앞둔 6일 협상을 재개했다. 그러나 국회의장단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런 까닭으로 국회 임기 개시 7일 이내에 첫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하도록 규정한 국회법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7일 오전에도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치인들이 다시 한 번 꼼꼼히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정치는 타협이다. 타협을 이루기 위해선 역지사지가 선행돼야 한다. 상대편 입장을 헤아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하는 것이 협치다. 그 협치 위에 일하는 국회도 성립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1994년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선출 시한’을 못박은 이래 2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이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
당장 원 구성이 되지 못하면 국회는 헌법상 기본 책무인 ‘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법안 제·개정에 대한 소관 상임위의 심사 의결이 이루어질 수 없는데다, 자구 심의를 맡을 법제사법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의사봉을 잡을 국회의장마저 없으니 국회는 ‘올 스톱’ 상태라 할 수 있다.
국회가 다루어야 할 굵직한 현안들은 태산처럼 쌓여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진상규명, 전경련의 어버이연합에 대한 지원 의혹 진상규명, 정운호씨의 구명 로비 의혹으로 불거진 법조계 비리 규명, 경찰 물대포에 맞고 의식 불명된 백남기씨 사건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국정 현안으로 떠오른 거대 해운사에 대한 구조조정, 경제 성장률 둔화에 따른 대책 마련, 미국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 미세먼지 종합대책 등 정부가 국회에 보고해야 할 시급한 문제들도 잔뜩 엉켜 있다.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상임위가 구성돼야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국민들은 20대 국회를 ‘협치’가 아니고선 일을 꾸려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넘기지 못한 20대 국회는 그래서 ‘정치적 타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명령이었다.
‘네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을 해야 한다. 취할 것을 셈하기 전에 줄 것부터 정해야 한다. 원내 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은 과거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수적 우위를 과신해선 안된다. 보따리를 풀고 초심으로 돌아가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 기자명 동양일보
- 입력 2016.06.0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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