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수필가)

▲ 임경자(수필가)

‘처용무’하면 가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가면은 탈이나 복면이라는 말로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가면은 대체로 인간 마음 씀씀이나 행동이 이중적일 때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각양각색의 사연들을 가면 속에 숨긴 채 탈춤으로 표현했다. 가면을 쓰면 그것을 쓰기 전보다 말을 함부로 하고 행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나를 한 꺼풀 포장할 수 있어 쓰기 전보다 언행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가면극은 가면을 쓴 사람의 신분은 물론 사회적 지위나 인물뿐만 아니라 됨됨이까지도 알 수가 없는 게 특징이다. 가면극은 서민들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그 내용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하여 서민의 생활경험을 나타내던 것이 점차 신앙적이고 자연 모방적으로 표현되어 가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뉴스를 보다가 통쾌하게 웃은 적이 있다. 수원시 2016년 시정계획 전략별 보고회의장에 복면가왕이 갑자기 등장하여 모였던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복면가왕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수원시 제1부시장과 주무관이었다. 복면가왕은‘광화문연가’곡에 ‘화홍문연가’로 지명을 바꿔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회의장에 앉아있던 직원들이 놀라움에 과연 그가 누구일까 궁금해 했다. 주무관은 “무척 쑥스럽긴 했는데 부시장님께서 도와주셔서 씩씩하게 불렀다”고 답했다. 권위와 직위를 엄격히 지키는 그런 회의장에서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인간의 본능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위트와 재치로 화기애애하고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 맨은 이 시대에 인기다. 규격화되고 갇혀진 감정을 풀어서 삶에 활력을 넣어 주는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분위기는 없었으리라. 한바탕 질펀하게 흥과 감정을 풀어내어 삶에 활력을 넣어준 복면이 중요한 매개체라 생각된다. 복면을 쓰고 깜짝이벤트를 꾸민 그들의 아이디어가 시정운영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미스터리 음악 쇼 ‘복면가왕’은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프로라 생각된다. 목소리의 음색과 표현력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야하니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이 예능프로가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을 갖게 되나보다. 맨 얼굴로 무대에 서면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금방 판단하여 음악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평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탈을 쓰고 부르면 인물중심이 아닌 음악적인 요소와 재능을 갖고 엄격하고 공정한 심판을 할 수 있으니 아주 기발하고 좋은 예능프로다.

복면가왕 48회 때 성냥팔이 소녀와의 대결에서 번개맨의 정체가 궁금했다. ‘번개맨이 과연 누구일까’ 설레고 마음 졸이며 숨죽이고 감상에 젖는 심판관과 관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범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에 환희와 감동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예술적 표현에 홀딱 반했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7표 차이로 패하게 된 번개맨이다. 가왕이 되지 못한 그에게 우레 같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실제로 얼굴이 공개되는 건 복면가왕 전에서 패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그가 복면을 벗는 순간 모두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스틸하트 밀젠코 마티예비치였다. 그는 전설적인 4단 고음의 소유자란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패한 그는 서슴없이 쉬즈곤을 열창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순간 모든 이들이 열창의 도가니에서 감정이 펄펄 끓었다. 음악적 감각이 둔한 나도 흥분과 설렘으로 두근거림을 감싸 안으며 그가 부르는 쉬즈곤의 멜로디에 푹 빠졌던 시간이다. 진실은 언제고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묘미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거짓과 속임수를 써서 순간을 모면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실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미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 가면의 색이 너무 짙어 인간관계를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박한 세상에 살다보니 신용회복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도 흔하다. 그런 사람을 대하고 나면 왠지 뒷맛이 씁쓸하고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 또한 때로는 가면을 쓴 채 양심을 속이고 남을 해를 끼친 일은 없는가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보다 밝고 환한 맨얼굴로 진실로 대해 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 진실 된 자세로 자기 심정을 솔직담백하게 표현 할 때 호감이 가고 이끌리는 마음이 든다. 언제나 진솔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고운 심성을 지닌 그런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거울을 자주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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