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3~4년전, 충북도청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과장(서기관) 자리를 6개월씩 돌려가며 꿰차고 있었던 것이다. 공로연수를 1~2년 남겨놓은 토목직 사무관들이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자리 나눠먹기를 한 것이다. 그 결과 1955년생 11명 중 3명을 제외한 모두가 서기관을 맛보고 퇴직했다. 일반 회사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충북도청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일이 3년여만에 반복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내년 공로연수에 들어갈 1958년생 6명(토목직)중 3명은 서기관, 3명은 사무관이다.
핵심은 사무관 3명중 몇 명이 서기관 맛을 볼 수 있느냐다. 현 직제하에서, 고참 서기관의 용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2명은 희망이 없다. 아쉽게도 동료나 후배들을 위한 특이동향은 현재까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충북도청 토목직 공무원들의 인사 적체현상은 전국에서 가장 심하다. 가장 큰 이유는 유신사무관들의 오랜 ‘진지’ 구축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퇴직했지만 충북도에 근무했던 유신사무관 11명중 토목직은 무려 3명. 이들은 30년이 넘도록 바톤을 주고 받으며 계장, 과장, 국장자리를 꿰찼다. 특히 국장 자리는 12년여동안 돌려막기 했다. 그러는 사이 일반 토목직 공무원들의 승진 길은 꽉 막혀 버렸다. 이 때문에 토목직 자리가 나도 승진 소요연수를 채운 사람이 없어 타 직렬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여기에 복수직으로 돼 있는 서기관 자리를 행정직이나 다른 직렬에게 ‘접수’도 당했다. 한때 8개였던 토목직 서기관 자리는 행정이나 건축, 공업직에게 넘어가 4개로 줄어 든 게 현실이다. 기구개편으로 토목직 자리가 하나 둘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토목직 공무원들의 수장인 건설국장 자리를 토목직이 차지한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사무관인 1965년생이 서기관을 거쳐 9년후에나 바라볼 수 있다. 그것도 수년이 아닌 맛배기에 불과할 뿐이다. 
토우회(충북도청 토목직공무원 모임)는 인사철만 되면 이시종 지사에게 인사적체 해소를 건의해 보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토목직공무원은 126명으로 10%를 차지한다. 행정직 650명(50%)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이중 5급(사무관)이상은 26명으로 21%다. 충청북도 지방공무원정원조례 직급별 정원책정기준 24%에 미달된다. 참고로 행정 31%,건축 34%, 농업 32%,보건 36%, 지적 36%이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토목직의 5급 이상 비율을 정원조례에 따라 24%이상 보장해 달라는 것과 빼앗아 간 토목직의 고유 업무영역 보직을 되돌려 달라는 거다.
지금 당장 모든 보직을 넘겨 주기가 부담스럽다면 연차적으로라도 돌려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일각에선 토목직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선 선배 공무원들의 희생과 자성이 필히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배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한다면 6개월이고, 1년이고 먼저 용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다는 것이다.
한 후배 공무원은 “일부 선배들을 보면 자기영달만 생각했지 동료나 후배들의 앞길을 챙기는 데 소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사권자나 동료, 후배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을 때는 할말이 없다”고도 했다.
다른 직렬도 열심히 하지만, 토목직 공무원은 설계, 공사추진 등 고유의 전문분야 말고도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다양한 도정 현안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달 말로 충북도에서는 부이사관(3급) 3명과 서기관 10명이 공로연수에 들어가 행정직은 그야말로 승진 잔치를 벌여야 할 판이지만 토목직과 같은 시설직에겐 언감생심이다. 연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있어서는 안될 과거 토목직 공무원들의 자리 나눠먹기를 용인한 것은 그들이 수십년에 걸쳐 받았던 인사 불이익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젠 어두웠던 거대한 인사장막은 걷혔다. 비록 직렬은 다르다 할지라도 함께 근무했던 10년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결국 키는 인사권자인 이시종 지사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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