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발등의 불’이 된 맞춤형 보육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학부모들도, 어린이집 원장들도, 교사들도 원치 않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맞춤형보육’은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에 만 0~2세 아이를 보낼 경우 하루 6시간만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맞벌이 가정은 어린이집 종일반(오전 7시 30분~오후 7시 30분)에 자녀를 보낼 수 있지만 홀벌이 가정은 맞춤반(오전 9시~오후 3시)만 이용할 수 있다. 단 필요한 경우에는 월 15시간의 긴급보육바우처를 추가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맞춤반’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어린이집에서는 보육료의 삭감에 따라 운영에 있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맞춤반 원아에 대해서는 종일반 원아 대비 80%의 보육료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또한 종일반과 맞춤반을 나눠 운영하는 경우 교사 배치의 어려움, 임금 하락으로 인한 보육의 질 저하도 우려된다.

청주시에 위치한 A가정어린이집 원장은 “교사들 사이에는 누가 맞춤반을 맡을 것인지, 만약 맞춤반을 맡게 된다면 종일반 급여를 받으면서 어린이집에 머물 수 있을지, 파트타임 교사 자리만 늘어나는 것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엄마들도, 교사들도, 원장들도 문제가 있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니 무조건 하겠다고 밀어붙이기 보다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차량 운행을 따로 하지 않고 엄마들이 각자 와서 아이들을 데려 가고 있는데 오후 3시가 지났다고 엄마들에게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고스란히 원에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인데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업주부들은 이번 정책 개편이 직업의 유무에 따라 혜택을 달리하는 차별적인 개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홀벌이 가정 아동과 맞벌이 가정 아동의 정부 지원 보육료 차이로 인해 어린이집에서 홀벌이 가정 아동의 이용을 꺼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맞춤반 운영 시간 역시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청주에 거주하는 주부 B씨는 “차를 태우지 않는 전업주부들은 오전 10시쯤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낮잠 자고 간식 먹은 이후인 오후 4시 이후에 데려가곤 한다”며 “어린이집에 융통성 있게 해 줄 수 없냐고 문의했지만 정부에서 오후 3시로 못 박아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7월 1일부터는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라도 오후 3시에 맞춰 데려가야 하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서류상으로 입증이 어려운 ‘사각지대’ 역시 제도 시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시간 어린이집을 이용해야 하지만 종일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4일까지 맞춤형보육 종일반 신청을 받고 있는 가운데 충북도내 각 주민센터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임금근로자 △자영업자 △농어업인 △무급가족종사자 △구직 또는 취업 준비 중인 경우 △한부모 가정, 자녀 3명 이상의 다자녀 가정 등 돌봄 필요 사유가 있는 경우 등이면 종일반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증빙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할 경우 종일반 이용 자격에서 탈락할 수도 있어 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 육아 카페에는 소득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없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장시간 어린이집 이용이 필요하지만 종일반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사업자를 낸 지 1년이 되지 않아 아직 세금을 낸 적이 없어서 자기 기술서를 쓰는데 이런 것까지 굳이 써야 되는지 싶었다”며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 아이들 수업료 받은 통장을 복사해서 내는데, 어차피 교육청 신고 금액과 같고 현금영수증도 다 해주니까 상관은 없지만 내 통장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났다”고 털어놓았다.

종일반 자격을 얻기 위해 허위로 증빙서류를 제출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내 한 직업훈련기관 관계자는 “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면 구직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인정돼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며 “단지 종일반 이용을 위해 교육만 받고 취업을 안 하면 문제일 것 같다. 오히려 진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운데 어린이집 단체들과 정부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한민련) 소속 어린이집들은 맞춤형 보육 시행에 반발하며 23일부터 집단 휴원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민련은 어린이집 회원 1만4000여곳을 보유한 단체로, 1만곳 이상이 집단 휴원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충북도에서는 대규모 어린이집 휴원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는 도내 민간·가정어린이집 1000여곳이 23∼24일 휴원하지 않고 정상 운영한다고 22일 밝혔다.

대신 충북어린이집통합추진위원회는 23일 오후 청주 상당공원에서 맞춤형 보육 제도개선과 시행연기를 촉구하는 대규모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결의대회에는 충북어린이집연합회와 충북민간어린이집연합회 소속 어린이집 등 도내 대부분의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주최 측은 이날 2000여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복지부는 24일까지 종일반 이용을 원하는 가구의 신청을 받은 뒤 어린이집 단체에서 요구하는 다자녀 가구 기준 완화 등 개선안을 내놓을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