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등 극심한 로비…영남권 신공항 논란 영향
정부 과열경쟁 이유…뚜렷한 대안 없이 책임회피 수단

(동양일보 지영수 기자)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설립이 잠정 중단되면서 유치에 뛰어들었던 청주시와 옥천군 등 전국 24개 자치단체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의 부지 선정 발표가 예고된 시점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체부는 지난 24일 지방자치단체 간 소모적인 유치 경쟁으로 번지고 있는 한국문학관 추진을 잠정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문학계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취지다.

정관주 문체부1차관은 “지역문인과 출향문인들도 언론기고나 서명운동에 참여하면서 문학계 분열까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특정지역 내정설’등 근거 없는 비판과 유언비어도 계속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어떤 곳을 선정하더라도 탈락한 23곳에는 치유하기 힘든 허탈감과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어 한국문학관 건립과 관련된 제반사항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달 부지 선정 발표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갑자기 중단돼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정부가 소모적인 과열경쟁만 부추긴 채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고 있다. 이날 정부가 ‘범국민적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 사태로 지역 간 갈등을 겪은 정부가 후보지 선정 후에도 발생할 지자체 반발에 부담을 느낀 게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관계 등의 극심한 입김·로비와 지역 여론 악화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뚜렷한 대안 없이 국책사업 추진을 미루면서 정부 주도사업의 추진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영남권 신공항 사업 백지화에 이어 또 다시 ‘지역갈등’을 이유로 국책사업이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문학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던 청주시와 옥천군 등 지자체는 당혹감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후속 대책을 마련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당장 불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정부의 대책을 기다린다는 방침이다.

한국문학관을 유치하면 고인쇄박물관, 백제유물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상당산성 등을 묶어 복합문화 창작타운을 조성하려던 청주시는 아직 이렇다 할 대응은 없다.

다만 문학관 유치와 관계없이 지역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콘서트, 지역 기업체와 맺은 관련 협약은 수행할 계획이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군도 그동안 유치활동을 위해 구성했던 각종 위원회는 해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옥천군 관계자는 “정부가 후속대책을 수립한다고 한 만큼 유치추진위원회 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부의 후속대책에 맞춰 대응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모방식이 지나친 경쟁을 불러왔다는 지적에 올 하반기 정부의 종합대책에는 다른 방식의 입지 선정 방법이 검토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문학관 건립사업은 지난해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규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이번 잠정 중단 결정은 문학관 건립계획 백지화라기보다 공모 절차 중단이다.

지자체들 간 과잉경쟁으로 인해 공모절차가 중단된 만큼 다시 공모절차를 밟기보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심의·의결할 가능도 배제할 수 없다.

문체부는 한국문학 유산과 원본 자료의 체계적 수집·복원·보존·연구·전시·교육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학관을 2019년까지 건립, 2020년 개관할 계획이었다.

지난 5월 25일 건립 부지 공모 신청 접수 결과 청주시를 포함한 충청권 7곳 등 전국 지자체 24곳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앞서 문체부는 당초 부지 선정을 이달 말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으나 신청 지역이 많다는 이유로 7월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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