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욱 전 흥덕구청장/충청대 강사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일컬어지는 ‘직지(直指)’는 우리 고장 청주에서 간행한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직지는 오랫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 하다가 재불 한인학자이신 고 박병선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됐고,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게 됐다.

직지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한 고 박병선 박사는 제9대 전북지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느대학과 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박 박사는 사서로 근무하는 동안 그곳에 보관된 ‘직지심체요절(1377년)’이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임을 알게 됐고 이러한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또 재임 중 베르사이유궁전 창고에 방치된 고문서더미 속에서 국보급인 조선왕실의 ‘외규장각의궤’를 발견해 한국정부에 알림으로써 송환되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처럼 박 박사는 직지와 외규장각의궤를 발견하고 모국송환을 위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기밀을 누설했다는 괘심제로 평생직장이 보장된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직에서 해고돼 생활고를 겪기도 했고 만년에는 직장암에 걸려 치료비가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고 한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승에서나마 마음 편히 영면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오늘의 직지가 있기까지는 고 박병선 박사의 노고가 컸지만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고 널리 알리는데 앞장선 청주인의 노고도 컸다. 등재 당시 청주시는 한 나라의 수도나 광역도시가 아닌 지방의 중소도시 청주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자문회의가 개최되도록 유치함으로써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원본이 아닌 영인본으로 각 위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맨투맨 방식으로 상세히 설명을 해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침내 직지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생산국과 소유국이 다른 것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첫 선례를 남기게 됐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특히 청주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 광영이요 쾌거라 할 것이다.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에도 직지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탄생지 청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청주인의 노력은 계속됐다. 2000년 10월엔 청주국제인쇄출판박람회를 정부의 새천년 밀레니엄사업으로 지정받아 세계 20여 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함으로써 청주가 직지를 간행한 인쇄출판의 메카임을 널리 알렸다. ‘직지상’ 제정을 추진해서 2004년도 ‘유네스코 직지상’이 제정돼 매년 전 세계의 인쇄출판문화 유공자에게 시상되도록 함으로써 직지와 청주의 위상을 드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제작비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직지오페라’를 제작해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청주예술의전당,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이 있는 마인쯔시와 일본 등지에서의 공연을 통해 직지의 문화·역사적 의미를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직지오페라 제작의 의의는 중앙의 유수 전문가가 아닌 지역인들의 창발적 아이디어로 시도돼 대본을 작성하고 중앙의 전문가를 끌어들여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지역문화·예술의 극대화를 도모하고 교육·문화도시 청주의 위상을 고양시켰다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처럼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초기에는 관련 사업과 각종 행사가 성대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의 직지축제와 각종 행사는 너무 초라한 모습이다. 해마다 열리는 직지축제의 규모와 내용이 빈약해서 세계인의 관심을 이끌지 못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로도 자리를 잡지 못 하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올해엔 행사의 명칭을 ‘직지코리아’로 바꾸고 행사의 규모와 내용을 일신해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 된다. 세계만방에 이름을 빛낸 직지! 이젠 그 가치와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맑은 고을 청주인이 한마음으로 뭉쳐 국가의 보다 통 큰 지원을 이끌어내고 보다 다채롭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직지의 우수성과 훌륭한 가치를 세계만방에 꽃피워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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