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 박 종 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1.시(市)급의 모 기초자치단체를 수년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민원사항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지를 확인 및 점검하였다. 그럴 때마다 담당자는 매우 소극적이고 수비적이며 책임회피적인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앞으로의 추진에 관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행동계획(action plan)을 물어보아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주민중심적이고 선제적인 행정은 교과서용에 불과 할 뿐이었다. 행정편의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론과 지식에 맞는 논리를 정립, 여러 장의 문서로 작성한 의견이나 주장 등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주민의 알 권리 및 이익 확보차원에서의 자치단체의 입장을 요구해 보지만 성의 있는 답변은 들을 수가 없었다. 주민본위(住民本位)의 접근이나 노력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감을 거듭 갖게 하였다.

#2. 행정 하위기관인 읍을 방문하였다. 읍에서 관리하고 있는 주민공원을 걸을 때마다 공원에 붙여진 기이한 명칭(진통공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을 듣고자 찾아간 것이다. 담당자에게 공원의 ‘명칭’은 어떤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청하였다. 담당자는 “읍에 소재하고 있는 공원이 16개소가 되는데 그들 공원이 어떤 유래에 근거하여 그와 같은 명칭을 붙였는지 모르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것이 말이 되는가. 공원 이용객이 이해할 수 없는 명칭을 아무런 배경서술이 없이 비치해 놓아서야 되겠는가. 공원 명칭 밑에다 그 유래에 대하여 간단하게라도 소개를 해 놓던지, 아니면 작게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래를 적은 팻말을 세우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면서 차제에 읍 지역에 소재한 주요 공원에 그 유래나 가치에 대한 간단한 설명문을 기록해 놓을 것과 이행여부에 대하여 민원인에게 연락을 해 줄 것(인적사항과 연락처 제시)을 당부하였으나 몇 주가 지났는데도 무소식이다.

#3. 현대식으로 지어 놓은 구 단위 보건소를 지나노라면 입구 화단에 여러 개의 태극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엄숙함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전통적 국기관(國旗觀)에서 탈피, 일상을 국기와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에서 유니폼을 비롯한 운동복이나 기타 장식품에도 그려 넣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태극기의 가치를 훨씬 크게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관점으로 변화되었다지만 흙으로 조성해 놓은 화단에 국가의 상징인 국기를 일반 화초와 같은 등급(?)으로 집식(集植)해 놓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지나는 길에 보건소를 직접 찾아가 방문한 취지를 직고(直告)하였더니 “별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3.1절을 맞이하면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단순한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대답이었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직접 방문하여 질문하는 주민에게 공공 기관에서 어찌 그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누구든 찾아 와서 의문사항과 의견을 제시하면 고맙게 수용하고 같이 지혜를 모아 개선의 길을 모색하려는 진지함은 보이지 않고 그저 그리 알라는 지시적 임기응변적 대답으로 일관하는가. 공공기관 어딘가에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환경조성의 일환으로 태극기판 화단을 조성하려면 3.1절 기념일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국경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방법이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돌아섰다.
한마디로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사회에 이기적 배타적 거부성의 행태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부성의 행태는 국민과 주민, 더 나아가 지역 간에 갈등과 이질감 및 적대감을 갖게 하고 사회규범 및 공동체성 등을 멍들게 하며 급기야는 사회해체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행태가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지역 간이나 민간 조직, 단체 및 개인관계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노정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이 자기와의 친소관계 및 이해관계에 따라 대칭형의 사고와 행동으로만 일관한다면 세계와 국가,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지구촌 한 가족, 대동 사회 등의 개념은 한낱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이 아닌가. ‘나’나 ‘내 가족’, ‘내 지역’, ‘내 국가,’ 등 만에 집착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세계시민의식 및 사회공동체적 가치관 등을 붕괴시킬 수 있는 독소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고립주의를 자초하는 것이 되고 사회적 존재,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황폐화 시키는 것이 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의 의견이든 진지하게 청취하고 자기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본무에 충실한 공직자 및 성숙한 사회인으로서의 조건이다. 여백(무심)이 있어 정물화는 생명과 가치를 인정받듯이 인간은 남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행동과 태도)을 구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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