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학(청주대 교수)

▲ 박종학(청주대 교수)

1981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나는 당시 라이트급(-71kg)에 출전했다. 1회전에서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몽골의 담딘을 맞아 경기시작 30초 만에 한판으로 제압하고, 2회전은 이탈리아의 니콜라, 3회전은 헝가리의 산도르, 4회전은 유고의 보유와 겨뤄 모두 한판으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81년 세계군인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프랑스의 세르즈 디오였다. 나는 ’80년 세계군인유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81년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다리부상을 입어 2연패를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막판 위누르기 한판으로 상대를 제압하면서 통쾌하게 설욕했다. 한국유도사상 6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는 유독 심판의 편파판정이 많았고 유럽이 개최지였던 탓에 유럽선수들의 기세가 높았다. 당시 유럽유도는 동양의 기술유도와는 달리 힘으로 동양선수들을 제압하는 힘의 유도로서 완벽한 기술이 아니면 이기기 힘든 경기였다.

경기뿐이 아니다. 국제스포츠계에서도 우리나라는 스포츠약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여건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스포츠로도 소외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모를 것이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우승을 하고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기쁜 소식이 들렸다. 바로 1988년 제24회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발표된 것이다. 체육인이자 유도인의 한사람으로서 날듯이 기뻤다. 우리나라가 스포츠약소국에서 스포츠강대국으로 발돋움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있었다.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모교인 청주 청석고와 청주대학교에서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유도대표팀 코치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유도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서도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또한 2008년부터 대만에서 7년간 국립체육대학교와 국가대표팀 총감독을 맡으며 유도와 소련의 삼보, 우즈벡의 전통무예인 크라쉬를 접하며 동양무예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갖게 됐다.

충북은 많은 해외 무예인들이 무예도시냐며 물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세계 각국의 전통무예 관계자들이 매년 충북 충주를 방문해 세계무술연맹 총회와 세계무술축제를 함께 했고 올해 유네스코 국제기구인 국제무예센터(ICM)가 설립되는 등 세계 무예의 중심지로서 여건이 마련돼 있다.

그런데 귀국 후 반가운 이야기를 접했다. 바로 ‘2016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이라는 세계무예대회가 충북에서 개최된다는 것이다.충북에는 세계 각국의 전통무예를 아우르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세계무술연맹이 있고, 유네스코의 무예진흥사업을 전담할 국제무예센터가 설립되고 있다. 이번 세계무예마스터십을 계기로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가 창설되면, 무예를 중시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하지 못했던 세 개의 국제기구가 한 곳에 집중된다. 명실공히 세계무예의 본부를 가진 충북도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스포츠의 도시가 스위스 로잔인 것처럼 세계무예의 도시가 대한민국 충북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결실은 앞으로 우리 충북이 보다 큰 세계로 진출하는데 큰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무예인의 한 사람으로서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이 나의 고장인 청주에서 개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기쁨은 남다르다. 1981년 네덜란드에서 우승의 기쁨과 함께 겪었던 스포츠약국으로서의 설움이 88서울올림픽이라는 지구촌 거대 스포츠축제를 통해 반전됐듯 우리 충북이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을 계기로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 믿는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