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쫓기 위해 집 바깥으로 나갔다. 어슴푸레 어두움이 밀려오는 길바닥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궁금하여 발길을 멈췄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살펴보니 탈바꿈을 금방 한 듯한 어린 매미가 뒤집혀 허우적댔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짓밟힐까 걱정되어 나무 잎새로 싸서 풀숲에 옮겨놓았다.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굼벵이로 준비해 온 위대한 생명체다. 곤충 중에서 가장 풍부한 성량과 좋은 음질을 가졌다는 매미가 아닌가. 저 작은 생명체가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생을 잘 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 여름은 매미 울음소리가 무더위를 식혀줄 것만 같다.

요즈음 들어 어린 시절 수없이 들었던 전래동화가 생각난다. ‘장화홍련전과 콩쥐 팥쥐’이야기다. 자신이 낳은 자식만 예뻐하고 의붓딸을 꼴도 보기 싫다고 온갖 구박을 예사로 여긴 계모다. 그런 계모의 잔인한 학대가 무서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림을 당하는 동화책 주인공이 불쌍하고 가련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보다 더 잔인한 일들이 최근 전국 각처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부천에서 친부모가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후 시신을 훼손해 냉동 보관한 일, 또 청주에서 30대 부부가 네 살배기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목사부부의 아동학대로 평생 뇌성마비 장애로 살아야 하는 22개월 된 아이가 있다. 지난 3월9일에는 3개월 된 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10시간 넘게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해 3월 당시 13살 난 딸을 5시간이나 때린 뒤 딸이 숨지자 이불에 싸서 1년 가까이 내버려 둔 목사 부부와, 앞서 2012년 당시 7살이었던 아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서 숨지자 시신 일부를 3년 넘게 냉동 보관했던 비정한 부모도 있다. 원영이를 숨지게 한 계모 김모씨는 욕실 안에서 원영이를 폭행하고 끔찍하게 학대했다. ‘울산계모 사건’, ‘인천어린이집 사건’ 등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또 용변 제대로 못 가린다고 세 살 아들을 숨지게 하고 31시간동안 방치했다는 보도가 있다. 최근 벌어진 아동학대가 살인, 사체유기 등의 강력 범죄로 흉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큰 충격과 비통함은 말할 것도 없고 금수(禽獸)만도 못한 사람의 행동에 간담이 서늘하고 슬퍼진다.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아동을 보호해야 할 가족이나 사회는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극도의 개인주의로 나만을 위한 삶을 갈구하는 어지러운 사회 구조가 불안하기만 하다. 이 시기에 따뜻한 심성으로 작은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인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한 오늘날 우린 많은 것을 잃고 산다. 맞벌이로 바쁜 생활을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핸드폰이나 TV 또 인터넷 등으로 가족 간의 대화가 없다. 그러다보니 아동의 고민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산업화 되면서 핵가족으로 가정은 있으되 가정교육이 없는 무미건조한 상태로 변했다. 경쟁사회에 살다보니 점수 따기에 바빠 대화도 끊기고 인간관계를 저버린 구조 속에 사는 우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극도의 개인주의로 외롭고 고독한 처지에 인간성마저 잃었다. 문제의 가정을 보면 어쩌다 부모가 되었고 감정적으로 아동을 대하는 미성숙한 부모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인간관계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적 가치와 인간 존엄성을 일깨워 줄 부모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어린이는 미래를 아름답고 새롭게 밝힐 새싹들이다. 이 어린 새싹들을 어리다고, 어른보다 힘이 약하다고, 얕보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윽박지르거나 어른의 전유물로 대해서도 안 된다. 희망에 찬 새싹들이 바르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공들여 보살펴 주고 존중해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갈 귀한 보배다. 존재의 의미를 알고 어린이들이 튼실하게 자라나도록 마음껏 사랑해 주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하지만 인간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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