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던 가족과의 예기치 못한 하룻밤

(연합뉴스)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에는 그의 영화가 지닌 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족을 다룬 영화에서는 대개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이 사라진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히로카즈 감독의 이 같은 가족영화의 연장선에 있다.

료타(아베 히로시)는 한때 문학상을 받은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지금은 15년째 차기작 구상을 핑계로 사설탐정 일을 하는 인물이다. 사설탐정 일로 번 돈은 경륜이나 파친코 등에 써버리는 철이 아직 덜 든 어른이다. 부인 쿄쿄(마키 요코)와 이혼하고 혼자서 살고 있다.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는 쿄쿄와 동거한다.

료타의 도박 중독과 결혼생활의 파탄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반년 전에 유명을 달리한 료타의 아버지는 극중에서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족에게도 소홀한 인물로 그려진다. 료타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닮아갔다.

료타의 어머니인 요시코(키키 키린)도 50년간 동고동락한 남편이 죽은 것에 속이 시원하다고 하면서도 종종 남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료타는 쿄쿄와 이혼했지만 아직 그녀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다. 전 부인의 사생활을 염탐하며 어떻게 사는지 지켜본다.

한달에 한번 아들을 보는 날 료타는 아들 싱고를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가 사는 연립아파트로 간다. 싱고가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다.

쿄코가 싱고를 데리고 가야 할 저녁이 되자 태풍이 북상해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친다.

결국 쿄쿄와 싱고, 료타, 요시코는 한 집에서 자게 된다. 그러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간의 입장을 확인한다.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손쉬운 결말을 맺지 않는 미덕을 보이기도 한다. 태풍이 불던 밤 한때 고부 관계였던 요시코와 쿄쿄가, 부부였던 료타와 쿄쿄가 각각 집과 미끄럼틀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해피 엔딩과 절망적인 비극 사이 어떤 제3의 길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시코 역을 맡은 키키 키린과 료타로 분한 아베 히로시는 ‘걸어도 걸어도’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모자 관계로 나온다. 이 둘이 선보인 연기 호흡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특히 아베 히로시가 얼굴 생김새만으로 강한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 압권이다. 어머니의 집에 갈 때마다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든 훔치는 철부지이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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