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문 규 시인 /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대표

 

최근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 개·돼지는 전체 국민의 99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퍼센트는 누구란 말인가. “친구 잘 둬서 돈 한 푼 안들이고 주식 놀음으로 120억 원을 벌어들인 검사장” 등과 같은 부류의 그 잘난 족속들인가.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는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 땅의 고귀한 삶의 양식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농업은 개·돼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농업인구는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한다. 수입은 대부분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농군들이 개·돼지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농사꾼은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농업에 종사한 전형적인 이 땅의 농사꾼이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다. 오늘도 살을 태우는 뙤약볕 속에서도 논둑의 풀을 깎고, 인삼밭에 풀을 뽑으면서 힘든 하루를 보낸다. 이제 농사를 내려놓고 쉴 만도 한데 농업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들녘으로 나간다. 아마도 나의 아버지처럼 다른 노령의 농업인들도 걸을 힘만 있다면 죽어나갈 때까지 농사를 이어갈 것 같다.  일찍이 박운식 시인은 “애야 여시골 논다랑이 묵히지 마라/니 어미하고 긴긴 해 허기를 참아가며/손바닥에 피가 나도록/괭이질해서 만든 논이다” 하는 시인의 아버지 말씀을 귓전에 쟁쟁히 기억하는데, “아버지 이제 논농사를 지을 수 없어요” 하며 울먹이는 시절이 되었다.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긴긴 해 허기를 참아가며” “괭이질해서 만든 논”, 비록 보잘것없고 하찮은 논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혼이 깃들어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난 6일 하루 영동에는 136mm 비가 내렸다. 특히 이날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56.5mm의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내렸다. 이 집중호우로 농가의 피해가 속출했다. 아버지의 인삼밭도 침수됐다. 인삼 경작은 다른 농작물에 비해 오랜 시간과 생산비가 많이 요구된다. 인삼 예정지를 임대해서 1년 여 동안 토질 향상을 위해 유기농 거름을 주고 밭갈이 등을 지속하면서 투자한다. 이듬해 종자를 심고 햇빛 가림과 비 가림 설치를 한 후 5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 수확을 한다. 그런데 이날 3년 생(1720㎡)과 4년 생(1640㎡) 인삼밭이 잘못된 농어촌공사의 하천정비 사업으로 침수돼 모두 썩고 말았다.
농어촌공사는 지난해 영동군 양심천 약목리 심천면 약목리 배수펌프장 건설 후 올해 봄 소하천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소하천 정비는 인근 농경지 침수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다. 그런데 소하천 정비사업이 이 지역 경작 주민은 몰론 임대해 인삼을 경작하고 있는 아버지의 의견이 철처하게 무시된 채 소하천 정비가 강행됐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기존의 인삼밭과 포도밭 쪽의 배수로보다 소하천이 높게 준설돼 빗물이 역류하면서 인삼밭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완료됐을 때에도 아버지와 주변 경작 주민들은 농어촌공사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 빗물 역류가 예상되니 소하천 정비하기 이전과 같이 하천 바닥을 배수로보다 낮게 재정비해줄 것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인삼밭이 침수되기 일주일 전부터 소하천 재정비가 안 되면 인삼밭과 주변 농작물이 침수될 게 뻔하다는 취지로 민원을 제기했으나 농어촌공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하고 암담하다.
아버지는 자다가도 일어나 “하천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역류된 물이 인삼밭으로 들어와 침수됐다”며 농어촌공사 옥천영동지사에 원망과 원한을 쏟아 붓는다. 침수된 인삼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는 들깨가 앉아 있다. 인삼농사는 망쳤지만 이미 토지 임대비를 지불했으니 땅을 놀려야 하겠냐며 들깨를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동냥해 모종한 것이다.
철천지원수란 고사성어가 있다. “하늘에 사무치도록 恨(한)이 맺히게 한 원수”를 뜻한다. 농사꾼에게 철천지원수는 누구인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농작물을 망치게 한 대상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천재지변으로 인해 망해먹었다 해도 쉽게 용서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국가기관의 잘못된 정책의 사업으로 인한 재앙이라면 철천지원수는 바로 농군을 ‘개·돼지’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부패하고 무능한 공직자가 아니겠는가.

쭞 양문규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박사) /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 계간 ‘시에’, 반년간지 ‘시에티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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