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 김래원

여주인공 인생 멘토이자 연인으로

지덕체 다갖춘 순애보 의사로 활약

섬세하고 깊어진 연기 캐릭터 살려

철부지 옥탑방 사랑도 있었고, 싱그러운 하버드 러브스토리도 있었다.

치명적인 사랑도, 절절한 순애보도 거쳤다.

그때마다 김래원은 증명해 보였다. 커다랗고 맑은 두 눈동자가 멜로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멜로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사실을.

그가 이번에 또다른 멜로를 선보이며 연기를 확장했다.

심지어 한발 옆으로 비켜섰다. 비중만을 따지고 든다면 거절했을 법한 드라마에 기꺼이 참여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SBS TV 월화극 ‘닥터스’의 홍지홍 선생님은 김래원을 만나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로 여심을 훔치고 있다.

서른다섯살 욕심 많은 배우 김래원의 영리한 선택이다.

 

● 김래원 합류로 홍지홍 역할 커져

애초 ‘여깡패 혜정’이 제목이었던 ‘닥터스’는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스타급 남자 배우의 캐스팅을 기대하기 힘든 작품이었다는 뜻이다.

박신혜가 주인공 유혜정 역으로 캐스팅된 후 그의 상대역으로 누굴 붙이느냐가 제작진의 숙제였다.

김영섭 SBS 드라마본부장은 31일 “‘펀치’ 이후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던 김래원이 관심을 보이자 홍지홍 역할을 키워 남자 주인공 얘기도 제대로 세워보자 했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김래원 자체가 멜로 느낌이 좋은 배우라 매력적인 키다리 아저씨의 느낌을 잘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역시나 성공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유혜정의 고등학교 담임이자, 13년 뒤 신경외과의사 선후배로 유혜정과 재회하는 홍지홍은 모든 것을 갖췄고 인성이 바르며 품도 너른 완벽남이다. 지적이고 믿음직스럽다.

다만 한가지 약점(?)이 있으니 혜정보다 9살 많다는 점. 여기에 혜정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이 보태지면서 홍지홍은 태생적으로 ‘아재’의 느낌이다.

그런 ‘아재’를 마흔다섯도 아닌 서른다섯의 김래원이 흔쾌히 잡아, 뭇 여성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키다리 아저씨’로 그려내면서 ‘닥터스’의 멜로는 구름 위를 걷는다.

무엇보다 기존 키다리 아저씨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여주인공의 뒤에 숨는 게 주어진 역할이었는데, 홍지홍 선생님은 사랑에 직진한다. 그점에서 ‘아재’의 느낌을 희석시킨다.

 

● ‘폼나는’ 역할 마다한 김래원의 섬세하고 깊어진 연기

한동안은 남성미와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캐릭터를 파고들었던 김래원은 ‘닥터스’를 통해 작정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됐다. 너무 부드럽고 점잖아서 박력도 없다.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드라마 속 과격한 애정신도 도마 위에 오르는 상황인데 홍지홍은 뭐 하나 걸릴 게 없다. ‘선생님’답게 늘 사려가 깊고 아량이 넓다. 그렇다고 설교하거나 훈계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상대방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살짝 팁을 준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에서 해결점이 보이지 않으면 폭발하지 않고 물러난다. 홍지홍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폭력이다. 물리적이든, 언어적이든, 감정적이든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지양한다.

그런데 이런 신사적인 태도가 오히려 더 박력 있게 다가온다. 혜정에게 저돌적이다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은 곧바로 고백했지만 이후에는 사랑하는 여자의 닫힌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홀로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이 이보다 근사할 수 없다.

김래원은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연기로 홍지홍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홍지홍은 많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크게 하지 않지만, 김래원은 매순간 핀셋으로 집어내는 듯한 감정선과 표정변화를 보여준다. 눈동자의 움직임과 대사 한마디가 다 톤과 색깔이 다르다.

여성들의 정신을 빼어놓은 “결혼했니? 애인 있니? 그럼 됐다”부터 “나한텐 10원짜리 입 언제 돼 줄거야?” “나쁜 기집애” “나 결혼했어?”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 “잡으면 안되지?” “유 선생, 같이 가지 뭐” 등의 대사를 할 때 김래원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바다 같은 해사한 웃음, 간결하지만 핵심을 찾는 질문, 여유있는 한발 후퇴, 신사적인 망설임을 보여주는 순간순간 김래원의 연기는 다채롭고 세밀하다. 소위 ‘폼나는’ 역할을 마다하고 여주인공을 받쳐주는 홍지홍을 선택한 김래원의 한수는 대단히 영리했다. 그는 이 역할을 통해 무리하지 않으면서 연기적으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다채로운 실험을 끊임없이 하면서 깊이를 추구하고 있다.

 

● 멘토 같은 연인…서른다섯 김래원의 성장한 멜로

드라마 ‘눈사람’ ‘옥탑방 고양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사랑한다 말해줘’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천일의 약속’과 영화 ‘청춘’ ‘…ing’ ‘어린신부’.

앞서 이들 작품이 있었기에 김래원은 ‘닥터스’의 홍지홍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홍지홍은 마치 이들 작품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이제는 모든 것에 통달한 듯한, 그러나 여전히 젊고 매력적인 멜로의 주인공을 보여주고 있다.

여주인공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스승이자, 끊임없이 성취욕을 자극하고 독려하면서 그녀가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성숙해질 수 있도록 이끄는 멘토 같은 연인 홍지홍은 기존 멜로에서 만나기 힘든 새로운 캐릭터다.

기다리며 순정을 바치는 역할은 대개 외사랑으로 막을 내리는 조연의 몫이지만 김래원은 이를 주인공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며 한층 성장한 멜로 연기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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