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이젠 거스를 수 없게 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합헌 결정을 받으면서 예정대로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대한민국은 이 법 시행을 앞두고 ‘김영란 격랑’ 속으로 빠져 들었다. 김영란법을 대놓고 반대하면 부정·부패자로 몰리는 상황까지 왔다.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아니 반대할 수도 없다. 이 법 제정이 현실화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분출됐지만 우리 모두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자신이 말했듯이 미풍양속에 근거한 우리 관습과 문화가 ‘더치페이’ 문화로 바뀌면 크게 걱정할 바도 아니다. 내 돈 내고 내가 먹고 마시는데 무슨 잔말이 필요한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진통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출혈이 너무 커진다. 벌써 우리 사회에서는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기류가 깔려 있다. 한쪽에선 부정 부패척결이란 입법취지에 맞게 전면시행을 요구하고 이 법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부정·부패자로 낙인 찍는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이 법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를 들면 농·축·수산업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도를 찾자는 거다.
투명하고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로 혼란을 가져다 주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비록 합헌 결정은 났지만 언론인이 이 법 적용 대상자가 돼야 하느냐는 것은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이어서 법 적용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이 법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게 기분 나쁘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공직자가 아니다. 공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아얏소리 못하고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자가 하는 일의 공익성을 강조하다 보니 이 대상에 포함시켰는지는 몰라도 신분은 그저 민간 회사의 직원에 불과하다. 기자라고 해서 특권을 누리는 시대도 지났다. 이는 국민들이 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달라졌음이 입증한다. 오죽하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이 일반화 될 정도의 세상이 됐지 않은가.
세금을 지원받는 일부 방송과 통신사를 제외한 모든 언론인은 공직자처럼 철밥통 신분도 아니다. 회사 기운이 쇠하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척박한 언론환경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기자 신분도 아닌데 언론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윤전부나 업무국 등 비편집국 직원들을 이 법으로 묶어 놓는 것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나라에서 땡전 한푼도 받지 못하는 데 말이다.
이들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으로 삼는다면 차라리 대한민국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게 법 앞에 평등이다. 시민단체, 변호사, 의사, 회계사, 은행원 등 전문직들이 제외된 것은 무슨 말로 설명할 것인가. 기업체에서 벌어지는 갑질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지 않은가.  
3-5-10 원칙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 법 제정 과정에서 빠진 이해충돌방지 조항과 국회의원을 포함시켜야 한다. 국회는 졸속으로 제정한 김영란법의 비현실적인 문제점을 정비해 이 법으로 피해 보는 국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의 부패를 근절하고 비리와 청탁을 차단하는 첫 출발이 될 것이다. 그런만큼 오는 9월28일 이후부터는 우리 사회에 대변혁이 예고된다. 아니 그동안의 관습 또는 문화와의 충돌로 사회는 급속도로 긴장과 혼란 국면으로 빠져 들 것이다. 벌써부터 검·경의 시범케이스에 걸려 들지 않기 위해 허리 춤을 바짝 조이는 관가와 업계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젠 너나할 것 없이 김영란법 하에서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데 술문화의 변화로 이젠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점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술이 곁들여지는 저녁은 동석자들 서로가 불편한 자리가 된다. 저녁만 간단히 먹고 집으로 가는 게 상책이다.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드라마에 빠지는 수 밖에 없다. 10월부턴 매월이 가정의 달이다. 그게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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