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라면 오는 9월28일부터는 공무원을 비롯해 공기업 임직원, 교수·교사, 언론인과 가족 등 400만명은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이상을 대접받으면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
김영란법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형평성 논란과 이해 당사자의 불만과 반발도 있지만, 일반 여론은 맑고 깨끗한 사회로 가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악영향 등 예상되는 여러 부정적 파급 효과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제는 법 시행과 함께 입법 취지에 맞도록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먼저 농축수산업계 피해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정치권 일각과 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이 정한 선물가액 상한선(5만원)을 맞추다 보면 국내 농축수산업계가 입게 될 피해규모를 1조3000억대로 추산하면서 이는 생산량 저하와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내수경기 위축 우려가 끊임없이 따라붙었던 ‘3·5·10만원’ 제한도 여전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가액 설정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외식·유통·농축수산업계의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적 부작용만 낳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법이 모호하게 규정된 데 대한 위험부담을 결국 국민과 기업이 지게 되면서 기업들은 합리적인 수준의 경제활동조차 꺼리게 돼 경제가 전체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정의 모호성을 해소해 경제주체의 과도한 심리위축을 줄일 수 있도록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것’을 김영란법상 부정청탁 예외범위로 두는 데 대해서도 논란거리다. 당초 원안에는 있었으나 입법 과정에서 제외된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맡아선 안 되고 산하기관 등에 공직자의 가족을 채용할 수 없도록’ 한 이해충돌 방지 규정도 복원돼야 한다.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부정청탁이나 뇌물보다 앞섰어야 하는데도 이 부분은 전부 빼버리고 오히려 민간부분의 폭만 확대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 또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대상 범위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두는 문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투망식 규제’를 언론인과 사립교원에게까지 적용하는 건 언론의 자유와 사학·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때문에 공직자 못지않게 공공성이 강하고 국민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군으로 법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시민단체는 물론 변호사, 의료계, 금융계, 대기업 등도 포함해야 한다. 홍만표·최유정 변호사의 비리에서 보듯 전관과 현직이 얽힌 비리의 사슬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제약업체 및 의료기기업체와의 고질적 유착도 차단해야 한다. 금융계는 중소 거래 업체, 대기업은 하청업체의 갑이다. 언론이나 사립학교 교원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 논리라면 이들 업종을 예외로 둘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감시와 처벌만이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법은 정의를 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어선 안 된다. 사생활까지 일일이 규제되고 법의 표적이 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침해 당할 것이며, 김영란법은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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