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유례 없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최고 기온이 체온에 가까워 한낮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게 한다. 학생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무더위와 뜨거운 태양열을 피해 여름휴가를 떠나는 인파가 절정을 이룬다.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는 동해 근방을 경유하는 차량들로 일대의 교통이 혼잡한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강원도 속초 지역은 요즘 피서객 뿐 아니라 ‘포켓몬 고’ 라는 증강현실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더욱 붐비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촬영한 현장의 사진 위에 겹쳐져 나타나는 게임 속 캐릭터를 잡는 놀이에 몰두하면서 걷다가 움푹 팬 발밑을 보지 못하고 부상을 입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한다. 복잡한 도로를 걸으며 게임하다가 돌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면 더욱 끔직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게임 얼리어답터들은 포켓몬 고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컴퓨터 게임에 별 관심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이러한 상황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얼리어답터는 일찍이라는 뜻의 `early`와 적응하는 사람인 `adopter`가 결합된 용어로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Everett M. Rogers)가 1972년 그의 저서 “혁신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 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1990년대 첨단기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현대를 대표하는 신조어로 부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저스의 이론에 따르면 혁신적인 상품이 출시되면 5단계의 수용자 집단을 통해 사회에 확산된다는 것이다. 상품의 채택인구 구성은 호기심이 많아 가장 먼저 신상품을 구입하는 혁신 수용자(Innovators), 남보다 앞서서 경험하고자 하는 조기채택자(Early Adapters), 기술이 완성되고 공급이 많아 가격이 하락할 때를 기다렸다가 구매하는 실용적인 조기 다수자(Early Majority), 검증된 제품에 뒤늦게 합류하는 보수적인 후기 다수자(Late Majority), 혁신을 거부하며 마지막으로 제품을 사용하는 지각 수용자(Laggards)로 이루어진다.
   유행(Fashion)이란 일정한 시기에 한 사회에서 다수의 대중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스타일이나 사회현상을 말한다. 새로운 것이 유행하려면 혁신자에 의해 소개된 상품 등이 조기 채택자에 의해 가시성이 높아지면 대중의 욕구에 부합되었을 때 다수자들의 수용으로 사용 인구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유행 상품은 채택 주기에 따라 그 가치가 변화하는데 혁신자는 대중과의 차별화를 위해 수용하고 얼리어답터들은 상품을 체험하는 대가가 높아도 구매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신의 관심분야에서는 남보다 먼저 정보를 얻고 경험하는 것을 즐긴다. 유행하는 상품을 조금만 기다리면 가격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남보다 먼저 소유하는 자부심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구매비용이 높은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얼리어답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부 얼리어답터들은 사용 평가를 공유하면서 소비자와 제조사 양쪽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인기와 신뢰를 쌓기도 한다. 얼리어답터의 활동을 통해 다수의 소비자들은 검증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와 시장동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 얼리어답터는 프로슈머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홍보에 필요하기 때문에 유명한 얼리어답터에게는 신제품을 무료로 제공하여 제품의 수용자를 확보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의상이나 액세서리가 얼리어답터를 통해 대중에게 유행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혁신제품을 대중이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다수자의 수용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가치와 욕구에 적합한, 이전 제품보다 우수한 이점이 있고 사용이 복잡하지 않으며 시험해 볼 수 있고 남에게 잘 보여질 수 있는 특징을 갖춘 상품이라면 신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 로저스의 설명이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확산이 가능한 혁신성을 작춘 새로운 아이디어나 제도를 만들어 내고 우선 얼리어답터에게 인정받아 그들을 적극 활용해 수용집단을 점차 확보하면 대중적 지지를 얻어 개혁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이 갈망하는 혁신적 제도의 출현과 얼리어답터의 중요한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