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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연주자 전경호 "타악기 음악 새 역사 쓰겠다"
시각장애인 연주자 전경호 "타악기 음악 새 역사 쓰겠다"
  • 연합뉴스
  • 승인 2016.08.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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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졸업 앞두고 20일 첫 독주회 '드리밍 퍼커션'
▲ 독주회 앞둔 타악기 연주자 전경호가 지난 12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에서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시각장애 1급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내년 2월 한예종 졸업을 앞두고 첫 독주회를 연다. 도미넌트에이전시 제공

"보이지 않는 대신 더 많이 노력하고 땀을 흘렸어요. 쉽지 않은 길을 가지만 음악으로 큰 울림을 주는 연주자가 돼 타악기 음악에 새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을 앞두고 오는 20일 생애 첫 독주회를 여는 전경호(28)는 조금 특별한 타악기 연주자다. 조기출산아에게 종종 일어나는 미숙아망막증 때문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마림바와 팀파니, 드럼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은 여느 연주자와 다르지 않다.

지난 12일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의 연습실에서 만난 전경호는 "처음에는 선생님의 동작 하나하나를 만져가면서 배우느라 그야말로 피땀을 흘렸다"며 웃었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그에게 음악이 빛이 됐다. 클래식 음악보다는 가요를 듣는 평범한 소년이던 전경호는 한빛맹학교 중학교 3학년 때 '다들 하니까' 시작한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은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우연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곡 음반을 듣는데 내가 치는 드럼과 같은 악기가 전혀 다른 소리를 내더라고요. 감동이었죠."

깊은 울림으로 전체 오케스트라 음악을 빛내는 타악기 소리에 매료된 전경호는 세계적 교향악단에서 타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연주자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여러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데다 연주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지휘자와의 교감이 생명인데 시각장애인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그로서는 무리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포기를 생각하던 차에 극적으로 길이 열렸다. 한빛맹학교에서 음악을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2년제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음악전공과를 신설하면서 음악을 전공한 교사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그 가운데 이철수 당시 한빛맹학교 타악앙상블 전임 교사가 "한번 해보자"고 힘을 실어줬고 용기를 얻은 전경호는 2006년 음악전공과에 진학해 정식으로 타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진학과 함께 처음 도전한 타악기는 가장 어렵다는 마림바였다. 라틴아메리카 민속악기에서 발전한 마림바는 나무로 된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로 실로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크고 건반도 많은 데다 건반 크기도 각기 달라 비장애인도 연주하기 쉽지 않다.

처음에는 건반의 생김새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다. 음마다 걸맞은 자세와 동작을 익히기 위해 이 교사가 시범을 보이면 팔 모양 등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감을 익혔다. 수십 번씩 원곡을 듣고 점자 악보를 달달 외우는 것은 기본, 하루 6∼8시간 반복 연습으로 배운 바를 몸에 새겼다.'

성실함과 재능으로 빠르게 성장한 전경호는 2007년 KBS교향악단 어린이음악회에서, 2009년 대전시립교향악단 자선음악회에서 각각 협연하며 경험을 쌓았고 2012년에는 한예종에 입학했다. 특별전형을 통했으나 교수진으로부터 '비장애 학생에게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경호는 "보는 눈이 넓어진 것이 가장 좋다"고 한예종에서의 4년을 돌아봤다. 학생이지만 프로나 다름없는 연주자들과 함께 치열하게 연습했고, 한편으로는 점자명함 인식 개선을 위한 자선콘서트를 여는 등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는 '칼 졸업' 대신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졸업을 내년 2월로 미루고 미국으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 이후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음악 공부를 계속하면서 진로를 모색할 계획이다.

오는 20일 독주회는 연주자로서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여는 무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애인 예술가 창작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뽑혀 예상보다 일찍 리사이틀 기회를 얻게 됐다.

전경호는 "타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면서 느낀 것들을 그동안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들려드리는 자리"라며 ""떨리고 긴장되지만 용기를 내서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드리밍 퍼커션'(꿈꾸는 타악기)으로 이름 붙인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타악기의 매력을 다채롭게 뽐내는 현대곡들과 관객이 클래식 음악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로 짰다.

"1부에서 연주하는 체레핀의 '팀파니를 위한 소나타'나 사타스의 '마트레 댄스'는 각각 팀파니와 드럼의 특성을 잘 보여줘요. 로자로의 '마림바를 위한 협주곡'은 리듬과 멜로디에서 라틴 정취가 물씬 풍기고요. 2부에서는 쇼팽이나 사라사테의 친숙한 명곡들을 마림바로 연주해요."

특히 2부 마지막 곡인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은 마림바를 처음 시작할 때 무턱대고 도전한 난곡으로 선생님의 동작 하나하나를 더듬어가며 피땀 흘려 익힌 곡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고 했다.

전경호는 세계 여러 교향악단의 타악기 사운드 가운데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의 깔끔함과 베를린필하모닉의 풍부한 울림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이런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꿈꾸고 있다.

가장 좋아하고 롤 모델로 삼는 타악기 연주자로는 이블린 글레니(51)를 꼽았다. 12세 때 청력을 완전히 잃고 몸에 전해지는 진동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세계적 음악가다.

전경호는 비슷한 길을 먼저 갔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해서 글레니를 좋아한다면서 타악기 연주자로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타악기 연주자는 아마 제가 거의 유일할 거예요. 조금은 힘든 길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타악기 음악에서 새로 역사를 쓰는 거죠. 제 음악을 통해서 관객이 '힐링'되고 타악기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타악기 연주자 전경호의 '역사'가 시작되는 첫 독주회는 20일 오후 5시 삼성동 베어홀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 문의 ☎ 070-88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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