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논설위원/강동대 교수)

▲ 이동희(논설위원/강동대 교수)

 막바지 더위가 입추를 지났는데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올 여름 폭염은 최고의 더위를 갱신하며 온열환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구촌은 더욱 온열화가 지속되어 지구를 덥히고 있다. 먼 옛날 시골에서 자라며 산천초목의 자연을 만끽하고 더위와 싸웠지만 지금처럼 덥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소중한 많은 추억거리가 있다. 동네 방죽에서 미역 감고 가까운 원두막 근처에서 참외, 수박, 복숭아 등의 서리를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워터파크 등과 같은 물놀이 시설은 없어 가까운 물가에서 홀라당 벗고 물에 텀부덩 들어가 친구들과 어우러져 노는 것이었다. 그러다 방죽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방죽은 샘솟는 우물과 인근 논에서 흘러 들어온 물을 막아 수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저 시원한 물에서 노는 것이 마냥 좋았다. 허나 방죽은 위험하고 수질이 좋지 않아 조금 먼 개울가로 물놀이를 가곤 하였다. 개울은 물도 깨끗하고 물고기도 있고 어른들도 미역을 감고 놀았다. 주변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미역 감고 등을 밀며 더위를 식혔다. 그렇게 열심히 물가에서 놀다 보면 주변의 사과 서리를 하다 등줄기가 물 보다 더 시원한 상황을 맛본 기억도 있다. 그리고 마을 주변에서도 참외 수박 복숭아 등의 서리를 하였다. 하지만 이는 도독이 아닌 먹거리의 나눔이 당시 상황이었다. 그런 그 시절이 그립지만 요즘 시대는 농작물 절도죄로 유죄를 받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한데 벌써 40 ~ 50여 년 전의 이야기 거리이다. 먼 옛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먹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의 원두막과 서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유년시절은 많이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이고 소중 추억을 만들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유년 시절 원두막과 맛보았던 과일 서리가 아련히 떠오르는 한 여름밤의 꿈을 꾸기도 한다. 이렇게 폭염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며 아픈 과거 전쟁, 배고픈 유년 시절 등을 열대야의 깊은 밤 속에 묻고 싶다. 다음 주면 벌써 처서가 다가와 이번 무더위는 한 풀 꺽일 것이다.
  옛날 우리의 가정 경제는 어려웠고 나라 살림살이도 힘들었다. 마을마다 또래끼리 모여 어울러져 다니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말썽과 추억거리를 쌓고 성장하였다. 그 시절 시골은 마을마다 방죽 개울가 등에 모여 발가벗고 미역 감는 일이 일상이었다. 또한 방죽은 농사를 위해 파놓은 시설이지만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개 해엄을 치며 노는 것이 여름방학의 추억과 그 시절 피서 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무덥지 않았으며,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있어서 지금보다 5도 이상 낮았고 시원했었다. 현대사회의 도시는 콘크리트 빌딩숲, 각종 전열기구 등 모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커다란 열섬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두막과 서리는 어떤 의미인가? 원두막은 참외, 수박, 오이, 호박 등을 심은 밭을 지키기 위해 밭머리에 지은 막이다. 속담에 원두막 삼 년 놓으면 조상군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원두막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면 인심을 잃게 되어 죽은 뒤에 조상하러 오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직업상 인심을 잃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북한어이다. 서리란 떼를 지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을 의미한다. 서리는 통설로 서리는 하되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이며 서리한 과일은 두고 먹는 것이 아닌 요깃거리이다. 또 한 집만이 아닌 골고루 돌아가며 한다. 서리는 도둑질과달리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단지 약간의 허기를 채우는 장난이었다.
  오늘날 원두막과 서리는 삭막한 현대사회에 인정이 품어 나오는 오아시스 같은 마음속 여유의 말이다. 원두막은 참외밭을 지킨다는 구실 외에 동네 사람들의 피서지이고 밤이면 모이는 장소이다. 또 길손에게 땀을 식히고 가는 휴식 장소이다. 밭 주인도 개구쟁이들이 몇 개쯤 따 가는 것은 못 본 척 눈감아 주었다. 아이들 역시 재미로 서리를 할 뿐 농사를 망칠 만큼 따 가는 경우는 없다. 또한 과거에는 가게도 없고 군것질거리도 귀했다. 더불어 시골 마을은 일가의 집성촌이었다. 따라서 원두막은 만남 장소, 쉼터의 공간으로 일가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막걸리 잔을 나누는 곳이었다. 지금은 세월 속의 아쉬운 추억의 공간,  참외, 수박, 오이 등은 비닐하우스 농법으로 계절 감각이 사라진 사시사철 맛보는 과일이다.  원두막은 단지 아련한 추억의 장소지만 요즘은 주민 쉼터로 탈바꿈되어 정자 혹은 산책로에서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행복한 말년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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