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신성대 교수)

▲ 신기원(논설위원/신성대 교수)

 몇 년 전 검찰총장 내정자 부부가 결혼생활 기간 중 3/4이상을 주민등록상 ‘별거’상태로 보냈다는 것이 보도되어 화제가 됐었다. 이들 부부의 주민등록기록에 따르면 1978년 혼인신고를 한 이후 현재까지 27년 중 21년 3개월여 동안 주민등록에 기재된 주소지가 서로 달랐다.
그 이유가 투기를 위한 주소 및 세대주 분리가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외동딸인 부인이 출가해 주소를 옮길 경우 처가에 화가 올 수 있다는 유명한 무속인의 말에 따라 부부의 주소를 분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인이 옮겨 다닌 곳의 주소는 모두 처가의 주소였고 두 사람의 주소지가 겹쳐지는 곳도 처가주소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기복신앙이 고위층의 생활에 어느 정도 파고들었는가를 나타내는 증거이다.
또한 팔자를 고치기 위한 혹은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었다.
팔자(八字)는 사주(四柱)의 다른 말이다. 사주는 출생 연월일시를 육십갑자라는 부호로 바꾼 것인데 그 부호수가 여덟 글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사주란 사람을 집에 비유할 때 생년월일시를 집의 네 기둥으로 본 것이며, 여기에 간지(十干과 十二支)가 두 글자씩이 되므로 사주팔자로 표현한다. 따라서 팔자는 인간의 운명을 지칭하는 말로 인생을 숙명적으로 보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아이고 내 팔자야!’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고 ‘팔자가 좋네!’ ‘팔자 고쳤네!’는 긍정적인 의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렇게 사주팔자가 그 사람의 운세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을 명리(命理)라 하고, 사주를 분석ㆍ종합하여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짚어보는 것을 추명(推命)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주를 본다’는 것은 바로 추명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사주로 알 수 있는 것에 개인의 성격이나 적성, 부모형제ㆍ부부ㆍ자녀 등 대인에 관한 것, 관운ㆍ재운 등 운수, 그밖에 건강ㆍ상벌ㆍ재앙 등이 있다고 하니 대중들이 몰리는 것이다.
 이처럼 삶을 기정사실화하거나 고정화시켜 혹세무민하는 것으로는 팔자이외에도 운, 관상, 수상, 궁합, 성명, 명당, 풍수 등이 있다. 특히 궁합은 혼인을 앞둔 양가집에서 신랑과 신부의 사주를 보고 길흉을 점치는 혼례의례로 제주도 같은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서는 혼인성립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래 궁합은 신랑집에서 사주를 보내면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부모나 친척이 신랑의 사주를 펼쳐본 후 신랑의 앞날을 점쳐보는 것으로, 12지에 따른 ‘겉궁합’과 오행에 따른 ‘속궁합’이 있다.
이러한 사주와 궁합은 과학이 아니고 일종의 통계이기 때문에 유일한 법칙이나 보편타당한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영향력이 달라진다. 또한, 사주로 알 수 있는 것들은 고정적인 것도 있으나 10년이나 1년을 단위로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추명을 통해서 그 사람의 숙명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흉을 피하고 吉을 취하는 개운법(開運法)을 써서 나쁜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바꾸는데 좋은 이름, 길한 방위, 잘 맞는 궁합 등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주는 균형과 조화의 원리로 인간사를 풀어보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맹신하게 되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해버리는 운명론자가 돼서 자기 인생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사주가 같은 사람의 경우도 각자의 얼굴생김새와 지문 그리고 홍채가 각각 다르듯이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천변만화하는 인생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운이란 보너스(bonus)와도 같다. 보너스는 우리들 삶에서 주류가 아니다. ‘인생 역전’에 대한 기대가 삶의 활력소가 될 수는 있어도 항상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여전히 99%의 노력과 1%의 행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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