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동안 리우에서 발로 뛴 선거 운동이 '깜짝 당선'의 원동력

유승민(34·삼성생명)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깜짝' 당선됐다.

유승민이 지난해 8월 대한체육회(KOC)의 IOC 선수위원 후보자로 선정될 때만 해도 크게 기대하지 못한 결과다.

역도 장미란과 사격 진종오 등 쟁쟁한 이들을 제치고 유승민이 한국을 대표하는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됐다.

유승민은 영어 구사능력에서 경쟁자들보다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은 게 발탁 배경으로 알려졌다.

작년 12월 IOC가 최종 후보 24명을 확정할 때도 일각에서는 반신반의했다.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살아있는 전설'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등 세계 유명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유승민(오른쪽 두번째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루이스 스콜라(아르헨티나) 등이 주요 면면이다. 각국 후보군에서 유승민의 존재는 미미했다.

유럽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인 탁구 선수 출신 장 미셸 세이브(벨기에)는 강력한 경쟁자가 됐다. 같은 종목인 탓이다.

유승민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에서 개인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과 은메달도 각각 땄으나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는 들지 못했다.

유승민은 낮은 인지도를 발품으로 극복했다.

지난달 23일 일찌감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이유다.

그때부터 각국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자신을 잘 모르는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많은 선수와 끊임없이 만나 한 표를 호소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당선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됐다.

선수촌 안팎을 돌아다니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원시적인 방식이지만 발로 뛰는 전략이 주효했다.

선수들에게 선수위원 선거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로 선수촌 일대 버스 정류장 곳곳에서 기다리다 선수들을 보면 무작정 인사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가 소통에 큰 도움이 됐다.

벌에도 쏘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살은 쏙 빠졌다.

유승민은 각국 후보 중 가장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신바예바가 투표 기간 막판인 15일 리우에 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IOC 선수위원을 발표한 19일 새벽 2시에는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모였다. 이신바예바 등 후보자들도 왔다.

정몽규 한국 선수단장과 최종삼 선수촌장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승민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새벽 2시 마침내 선수위원 명단이 발표됐다.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의 이름이 먼저 불렸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펜싱 신아람의 '멈춤 1초'로 결승전에 올라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그다음 이름이 나왔다. 바로 '승민, 유'였다. '와'하는 함성이 터졌다. 한국 역사상 두 번째 IOC 선수위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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