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동양일보)저는 여기서 하나의 사고실험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특히 1965년 이후의 한일관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과연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시도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다가도 결국은 다시 나빠지는 회로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것을 강하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 세계 상황을 보면서, 우리 한·일 양국 사람들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걸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일 모델’이라는 하나의 이념형을 제창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작년 말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정부 간 합의가 발표되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가슴 속에 ‘죄송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90년대의 일본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강한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런 마음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대신에 “위안부 문제란 원래 없던 것을 날조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공적 공간에서 큰소리로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등장했습니다. 
한국 국내에서는 한·일 정부 간 합의가 발표된 이후 강력한 반대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당사자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최종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분명히 폭력적이며, 따라서 합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저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합의 반대’를 외치고 싶기도 하죠. 그러나 간신히 이루어낸 합의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면 아마 한·일관계는 불가역적으로 산산조각 파괴되리라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베정권이 공식적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했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무거운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격렬한 논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포함해서 일본과 한국, 중국 간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마찰은 영토문제, 북한문제와 더불어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라며 우리들은 희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완전히 다른 인식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 노력이 모자라는 측면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 또는 ‘인식의 틀’의 측면입니다. 한·일의 역사학의 성과가 아무리 진전해도 그것이 현실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역사학 자체가 ‘좌’와 ‘우’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기가 어렵다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해석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좌’도 ‘우’도 아닌 새로운 해석의 축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것은 전후 70년 동안 우리 한·일 양국이 해 왔던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일 모델”로 이름 지어 세계를 향해 내세우는 것입니다. 난민이나 이민의 유입과 이슬람 과격파의 신장으로 인해 ‘실패’ 쪽으로 기울고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동아시아는 근대적인 의미에서는 분명히 성공적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현실을 정확히 허심탄회하게 파악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늘 “유럽은 앞서가고 있고 동아시아는 그것을 뒤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게 되며 현안 해결도 그만큼 멀어집니다.
늘 “유럽은 대단하고, 우리는 안된다”고 자학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이 가볍죠. 그러나 우리는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이미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럽은 분명히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 ‘내부’의 일입니다. 일찍이 유럽이 지배하고 침략한 ‘외부’와의 접촉면이 늘어남에 따라 ‘실패’와 ‘퇴행’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에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1965년 이후 일찍이 침략한 측(일본)과 침략 당한 측(한국)이 어쨌든 간에 대등한 관계를 구축해 온 결과 지금과 같은 ‘성공’과 ‘진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의 역사인식은 역사를 그런 식으로 보는 태도를 강력히 기피합니다. 
동아시아야말로 전형적인 ‘실패의 지역’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죠.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역사를 더 정확히 봐야 하며, 좀 더 과감하게 “우리 동아시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 있다”고까지 생각해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역사문제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뭐가 한·일 모델이냐”라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되겠지요. 그건 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까지 해 온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이상적이었으며 성공적이었다고 후안무치의 태도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어려움과 마찰,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문제 해결과 공동의 번영, 평화를 향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이 한·일 두 나라의 관계였다고 발상을 전환하면 어떻겠느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를 더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해 온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진 토대 위에서 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어렵게 쌓아 온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계속 부정만 한다면 100년, 200년이 지나도 우리는 아마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상태로 서로를 비방하고 있겠죠. 너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우선 우리는 지금 동아시아와 서양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동아시아와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완전히 연동해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많은 이민과 난민이 생겨나고 있는 것과 동아시아에서 역사문제가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같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대항근대’라는 강력한 움직임 
지금 동아시아와 서양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항근대’라고 할 수 있는 움직임입니다. 서양은 자신들이 창조한 근대라는 사상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서양의 기만성이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도 생깁니다. 서양은 “자신들의 성공과 동아시아의 실패”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 아니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서양의 실패’와 ‘동아시아의 성공’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 저의 시각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그것을 은폐하려고 하는 서양의 전략이 무너져가는 과정인 것처럼 저에게는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항근대’는 근대에 대한 반발과 동경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평등을 실현하고, 욕망을 해방하고, 자연을 파괴시키고, 풍요로워지고 싶다라는 동경이 있습니다. 글로벌리즘은 그러한 욕망, 즉 한번은 마음껏 근대를 하고 싶다, 서양이 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마음껏 반근대, 반서양이 되고 싶은 거죠. 이것이 보편주의로서의 이슬람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집니다. 
● ‘원한의 근대’란 무엇인가?
서양과 일본을 제외한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근대는 원한의 근대입니다. 서양과 일본 이외의 세계에서는 근대란 식민지화와 피침략의 시대였습니다. 지배를 받았고 국민국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 독립을 달성해도 구 종주국의 지배는 사실상 계속되었고 많은 국가는 파탄했습니다. 일찍이 서양이 지배한 지역은 거의 다 “국가를 가질 수 없었던 한”과 “국가를 가져도 잘 되지 않는 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동아시아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대화, 산업화라는 의미에서의 한국, 대만, 중국의 성공, 특히 한국의 경험을 세계에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요즘 한국의 일부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정말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금까지 힘들게 이뤄낸 무엇이 그렇게 불만스러워서 하필 ‘헬조선’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물론 한국의 사회구조나 현실 속에서 젊은 층이 경험하는 모순이나 부담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물론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던지고 싶은 말입니다. 좀 더 자신을 갖는다면 타자에게 더욱 열린 자세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유럽의 실패
지금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국민국가의 실패가 대량으로 이민, 난민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 사태에 대해 ‘인도’라는 개념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거기에는 경제적인 지배 구조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라는 ‘외부’와 ‘대등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유럽의 기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유럽이 ‘역사화해’라고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유럽 ‘내부’의 일입니다. 자기들이 식민지 지배한 ‘외부’와의 역사화해는 일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화해 없이 ‘외부’를 이용하고, 착취하고, 저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한이 사람들을 이슬람이라는 보편주의로 향하게 만듭니다. 국가를 초월하는 보편주의가 한없이 많은 매력을 지니게 되는 겁니다. 2020년에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탄생한다든가 ‘이슬람에 의한 EU’라는 것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거죠.
● 동아시아의 성공과 문제점 
이에 비하면 동아시아는 ‘근대적’ 의미에서는 비교적 잘 하고 있는 편입니다. 국민국가의 성공과 경제적 성공이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폐해가 개재하고 또 한국도 중국도 분단국가라서 국민국가의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분단과 역사마찰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그럭저럭 잘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즘 중국과 한국은 역사문제로 항일사관을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일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 진영은 그것을 혐오하여 ‘반 항일사관’으로 대항합니다. 일본의 우파는 처음에는 ‘일본의 입장’을 주장하는 세력이었지만 어느새 ‘반인도적’ 세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원래 일본의 보수는 실증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우파는 좌파와 같은 ‘가상 도덕 역사’의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도덕지향적이며 당위적인 역사관을 저는 ‘가상 도덕 역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적대적 공존관계’라고 불리는 관계가 일본과 중국, 한국 사이에 성립한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항일사관’과 ‘반 항일사관’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가장 즐기고 있는 것이 유럽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럽의 실패’와 ‘한·일의 성공’을 가장 명료하게 은폐할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역사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적 역사인식’이 동북아시아의 보편적 가치가 되는 상황을, 유럽에서의 이슬람 보편주의의 팽창과 동일한 틀로 보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역사인식이 한국이라든가 중국과 같은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가는 과정이며 이 ‘보편적 역사인식’을 내세우는 세력 가운데 중국과 한국이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인구 15억의 ‘원한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확대되는 것입니다. ‘인도적 역사인식’이라는 보편주의가 침투함으로써 동아시아가 유럽화합니다. 이슬람의 보편주의와 중국, 한국의 인도적 보편주의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한·일이 해야 하는 일
이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동아시아의 빛과 그림자’를 세계가 바로 인식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해 온 노력, 즉 ‘내부’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외부’적 관계에서 해 온 화해의 노력을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일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화해와 번영과 평화의 시스템을 정확히 개념화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화해철학’이라는 장르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상호마찰의 역사, 화해란 도대체 무엇인가… 화해를 둘러싼 한일 간의 어려움의 축적이야말로 인류의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이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인명피해를 거의 낳지 않으면서 노력해 온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민지지배나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세계의 모델이 될 만한 노력을 해 왔다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한·일이 결코 서양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물론 일본의 사죄와 반성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뒤집어 엎어서는 안 됩니다. 사죄와 반성을 앞으로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 온 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해 버리면 안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이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화해를 쉽게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라는 거대한 ‘결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권의 정통성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일본과 결코 타협하지도 화해하지도 않고 굳세게 당위적 주장을 계속하는 북한”과 “쉽게 일본과 타협하는 정통성이 없는 한국”이라는 알기 쉬운 도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하고 역사에 관한 화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이나 한국 좌파가 더 도덕적이고 정통성이 있다”는 도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조(日朝) 국교정상화를 통해 북한은 반드시 민주화될 것이며, 이는 미래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질 것입니다. 동아시아 전체가 성공의 지역이 될 것입니다.
● ‘한·일 모델’에서 일본의 성격 
‘한·일 모델’을 생각할 때 일본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전후 70년에 걸쳐 일본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지의 결여 내지 불명료함’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즉 일본의 “국가로서의 애매함”이 이 모델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입니다. 법실증주의와 관료주도가 일본 정치스타일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이것은 결단주의의 결여와 정치주도의 결여를 의미합니다. 이 점이 일본 국내·외에서 계속 비판받아 왔는데 일본이 국가의지를 결여한 점이 오히려 동아시아의 안정을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국, 한국, 북한의 결단주의와 절대로 연동하지 않는 일본의 부동성이 한편으로 동아시아의 짜증과 안달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외교는 또 전략의 결여, 전략적 사고의 결여로도 유명합니다. 전략 뿐만이 아닙니다. 이념과 도덕성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외교는 이념과 도덕성이 아니라 이익과 공감을 추진력으로 삼아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일본 정치가들에게 이념과 도덕성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나름대로 이념과 도덕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치 외교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그런 이념과 도덕성으로는 강력히 정책을 밀어붙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을 중시하는 보수 본류(保守本流)가 있었는가 하면 대만을 중시하는 세이란카이도 있었습니다. 한국을 중요시하는 기시 노부스케 라인이 있었는가 하면 북한을 중요시하는 AA연(아시아 아프리카 문제 연구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집권 자민당 안에 있었다는 점 입니다. 자민당 안의 권력투쟁과 균형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이념이 주도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일본 정치의 이런 성격은 분명히 1945년 이전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반동이었습니다. 일본제국의 지나친 이념성, 어처구니없는 전략성, 잘못된 도덕성의 완전한 실패가 일본국헌법의 탈역사성에 힘입어 전후 일본의 실용주의, 탈역사성, 도덕지향성의 부정, 미국적 가치에 대한 추종 등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거기에다 전후 일본의 보수본류였던 자민당의 요시다 시게루나 이케다 하야토 등의 탈 도덕지향성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무 전략성은 표현의 자유가 거의 완전하게 실현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극우로부터 극좌까지 모든 주장이 거의 제한 없이 허용되어 온 것이 일본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구조를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극우에서 공산당까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실제로 정책화 할 수 없는 공리공론이 정치공간에서 자유롭게 논의됨으로써 오히려 논의의 폭이 비현실적일 만큼 좌우 양쪽으로 넓어졌으며 그 결과 ‘가운데 축’의 성립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정치가가 아니라 관료가 주도하여 정치가와 함께 이익을 유도하는 스타일의 정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 정치는 결단주의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후 일본이 국가의지를 명확히 나타냄과 동시에 동아시아는 극심하게 동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더라도 일본의 국가의지의 결여가 동아시아의 안정에 이바지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한·일 모델’에서 일본의 특징
지난 호에서 저는 한·일 모델에서 일본의 특징은 ‘국가의지의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집권 자민당 안에 거의 모든 정치이념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정치는 어느 특정한 이념이나 세력의 힘으로 결단주의적으로 쉽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 대한 비판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격동하는 동아시아의 안정성을 지탱하기도 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요? 결단주의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국가의지의 결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라는 문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일본은 국가의지를 좀 더 명확히 하고 동아시아의 미래에 더 칙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한국이 좀 더 안정 쪽으로 움직임으로써 동아시아를 전체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정치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만 물론 ‘한·일 모델’을 추진 해 온 주체는 정치뿐만이 아닙니다. 시민이나 국민의 역할, 학계의 역할 등도 말할 나위 없이 컸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분석은 생략하겠습니다.
● ‘한·일 모델’에서 한국의 특징
한·일 모델이 기능해왔던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이 일본에 대해 던져 온 강력한 도덕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좀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겠지만, 이 점이 유럽이 일찍이 지배한 지역과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구 종주국에 대한 요구가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강한 도덕적 요구였다는 점입니다. 굴욕을 극복하려고 하는 길에 경제적 풍요로움과 도덕성의 실현이라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동아시아 최대의 도덕지향적 세력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서슴없이 도덕적 규탄과 요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일본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대립 국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지극히 높은 지적 수준과 도덕적 요구는 예를 들어 일본 좌파에 의한 포스트콜로니얼한 역사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식민지지배의 부당성을 강력히 비판하는 일본 좌파의 역사학이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꽃피었습니다. 그것은 서양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시작되는 1990년대보다 20년 내지 30년 앞서가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도 ‘종속경제’의 위험성을 타파하고 세계의 최첨단으로 달려갔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 피땀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역사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통성을 실현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던 점도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특히 위안부문제를 세계의 보편적인 전시 여성의 인권유린 문제로 부각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본도 이것에 응답해야 했고 많은 실증적 역사연구로 이어졌으며, 또 할머니들에 대한 사죄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한·일 공동으로 쌓아 온 노력들을 너무 낮게 평가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한·일 양국이 이 어려운 사안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제설정하고 그 해결을 위하여 노력해 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해 온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할 때, 즉 자기 평가가 너무 낮을 때 오히려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이 주도해서 일본과 함께 해 온 귀중한 노력들을 과소평가할 때, 거기에는 일본에 대한 너무 강한 경쟁의식이 개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의식의 장점도 물론 있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한·일의 ‘공동’, ‘협동’의 작업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내세워 온 도덕과 역사가 합일된 인식이 한국 국내에서도, 일본사회에 대해서도 ‘분열의 힘’으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는 충분히 다양화된 이 한국사회에서 일본과 관련된 역사인식만은 ‘자기와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정의’가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한·일 모델’의 미래
‘한·일 모델’은 타협의 방법론이 아닙니다. 지배한 자와 지배 받은 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비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정말로 고통과 어려움이 가득 찬 길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이 고통스러운 화해와 번영과 평화의 길을 더 걸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한·일이 공동으로 해야 할 것은 많지만 저는 다음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역사의 직시, 기억, 반성’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근대의 극복’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철학의 구축’입니다.
역사반성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더욱 힘차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보는 눈 자체를 아직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인간관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다중주체주의’라는 철학적 입장을 개척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근대가 내세운 원자론적 인간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다중주체주의’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우리들의 언어, 인간, 생명을 되찾아서 그것을 새롭게 다시 창조해야 합니다. 가장 먼 길을, 고불고불한 길을 천천히, 결코 서두르지 않고, 쉬운 답에 달려들지도 않고, 가장 근원적인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 같이 차분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화해를 당연한 전제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 간의 화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화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리고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근원적으로 사색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초조해 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함께 꾸준히 대화하면서 생각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앎의 공동작업’을 한·일 양국 사람들이 과감하게 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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