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해 <청주성모병원 원장>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몇 년 전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흥얼거리며 킬리만자로로 향했다.

그냥 도전하고 싶었다.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봉이라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오르며 점점 세월과 타협하며 나약해지는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보고 싶었다. 아니 만년설로 덮인 정상을 밟으며 내 젊음과 열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키보산장(4700m)에서 밤 11시 기상해 간단한 요기를 한 뒤 정상 공략을 위해 출발하기 직전 현지 가이드 알프레드는 부친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집으로 내려가도 좋다고 권고했건만 정상까지는 함께 해주겠다며 앞장섰다.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땅엔 수많은 트래커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장관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고산증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노련한 알프레드는 걷는 속도 조절은 물론 적절한 휴식을 주며 물마시기를 권유했다. 휴식 중 쏟아지는 잠으로 깜빡하기라도 하면 “졸면 죽는다”는 적당한 엄포(?)로 나약해지는 나 자신을 채찍질해 줬다.

졸음과 추위, 두통과 호흡곤란으로 점점 지쳐가던 나는 길만스 포인트(5685m)를 거쳐 최고봉 우후르 피크 정상(5895m)을 몇 백 미터 남겨 놓고 결국 드러눕고 말았다. 심장이 터질 듯, 정신이 몽롱해 지며 그대로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 정상에 오른 이들의 기뻐하는 함성 소리가 들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지쳐 포기하겠다는 나에게 초코렛을 건네며 정상을 함께 밟자고 계속 격려하며 기다려줬다. 덕분에 쉬다 가다를 반복한 나는 마침내 정상을 밟았다. 기진맥진해서 만년설 위에 누워버린 나에게 정상등정 기념사진은 꼭 찍어야 한다고 일으켜 세웠고, 억지로라도 가져간 간식을 먹도록 했다. 차츰 몸이 좋아졌고 정복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에 나 자신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화산재로 덮인 하산길은 많이 미끄러워 위험할 수 있기에 더 세심하게 배려하며 안내해 줬던 알프레드는 키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제는 헤어져야겠다며 이해를 청했다. 나 역시 천주교 신부임을 밝히고 약간의 조의금과 함께 부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위로해주니 깊은 감사를 표하며 떠났다.

성경에서는 높은 산을 ‘하느님을 만나는 곳’으로 소개한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천국이라면 누군가 가보지 않아 두려울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나를 안내할 분이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가보지 않았던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안전하고 확실하게 안내해주었던 고마운 가이드 알프레드를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 죽음의 골짜기를 걷게 될 나 자신을 더 안전하고도 더 확실하게 천국으로 안내해 주실 참된 가이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된다.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 경험이 많았던 알프레드를 만났음이 나에게 축복이었듯 천국 정상까지 나를 잘 안내해 주실 분, 곧 죽음의 골짜기까지 내려가셨다가 천국 정상까지 다시 오르신 예수님을 만났음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깨달으며 오늘도 인생이라는 커다란 산을 묵묵히 오르자고 다짐해본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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