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동네에 잇따라 초상을 치렀다. 이태 전에 시집온 장달이처가 출산한지 이틀 만에 첫애를 잃어 산에 묻고 나니 그 사흘 후 이번엔 송산집 며느리가 첫출산 한지 엿새 되던 날 출산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그러니 양쪽집이 실심에 빠졌다. 애를 잃은 장달이처의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젖이 한창 돌아 주체를 못할 정도로 흘러내려 급기야는 젖몸살이 날판이니 당사자나 주위식구들의 심정이 말이 아니다. 송산집은 이중으로 애를 끓인다. 졸지에 당한 며느리의 죽음에 애통해 하고 애가 어미의 젖을 잃었으니 보채며 울어대는 어린 생명을 지켜봐야하는 온 식구들의 심정이 또한 말이 아니다.
 애 죽은 지 여드레가 되는 날, 장달이 부모가 장달이 내외를 불러 앉혔다. “너희 두 내외, 특히 며늘아기야 얼마나 몸이며 맘이 편치 않겠느냐. 우리 아녀자들끼리는 더 잘 안다. 그래서 네 시아버지와 의논 끝에 하는 말인데 잘 들어라.” 그리곤 뜸을 들인다. “그래 계속하마. 너 그 주체 못할 정도루 철철 흘러내리는 젖, 그거 젖 없어 보채는 송산집 애기한테 멕이면 어떻겠느냐?” 여기서 시아버지가 나선다. “그래, 그리하면 송산집 애기 유모가 되는 것이다. 유모가 무엇이냐 젖어머니 즉 어머니를 대신해서 젖먹이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젖어미’ 아니냐. 이렇게 남의 애기 키워주는 유모라고 해서 시큰둥할 일 아니다. 옛날엔 귀족이나 왕실에선 삼칠일까지는 친모가 젖을 물렸지만 그 이후에는 젖 떨어질 때까지 유모가 젖 물려서 키웠다는구나. 특히 임금의 유모를 젖마(?)라고 했다는데, 왕실에서는 이 유모의 고마움을 높이어서 ‘봉보부인(奉保夫人)’이라는 칭호까지 내렸단다.” 다시 시어머니가 나선다. “그만큼 귀한 자리라는 것인데 우리네야 그 귀한 칭호보다는 당장 네 젖몸살의 지경이 급하고 송산집은 애기의 젖양식이 급하니 격식 따지고 날짜 따질 게재가 아닌 듯싶구나. 어떠하냐. 결정은 너희 둘이 내려라.” 이래서 이튿날 장달이처는 송산집으로 들어갔다.
 송산집에선 대환영이었다. 그렇잖아도 애기의 연명을 위해서 할머니 되는 이가 쌀알을 입에 물고 씹고 불려서 한 숟갈씩 먹이고, ‘젖미수’ 즉, ‘구덩이 속에 멥쌀가루를 넣어 뜨게 한 것을 즙을 내어 다른 쌀가루와 반죽하여 쪄서 이걸 볕에 말린 가루’가 좋다기에 이걸 어렵사리 해서 따뜻한 물에 타 먹여보지만 이걸 목으로 넘기질 못하고 토해내면서 연일 보채고 울어대니 온 식구들이 안절부절 차마 감당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3살까지 장달이처의 젖을 먹고 큰 애가 봉천이다. 장달이처는 봉천이가 젖이 떨어진 후 곧 장달이의 애를 낳았다. 딸이다. 이름이 용단이다. 그동안 본집살림하며 양가를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부부생활엔 지장이 없던 터다. 할머니할아버진 봉천에게 늘 젖엄마를 잊지 말라 당부했다. 그리고 하루는 할아버지가 봉천이에게 물었다. “젖엄마가 난 용단이가 너완 어떤 관계가 되는 줄 아느냐?” “오빠동생 관계지요 뭐.” “맞다. 하지만 용단인 그냥  동생이 아니라 ‘젖동생’이다. 젖엄마의 젖을 같이 먹고 자란 동생이란 말이지. 그러니 네 새엄마가 난 동생들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루 대해줘야 한다. 알겄제?” “예” 봉천이 아버진 새장가를 가서 애 둘을 낳았던 것이다. 장달이도 용단이 아래로 사내애 둘을 더 낳았다. 이 양가 아이들은 다 친형제들처럼 우애롭게 지냈다.
 용단이가 시집갈 땐 이미 그 세 해 전에 봉천이 할아버지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한 해 일찍 돌아가셨다. 이때는 봉천이 장가가서 애를 하나 낳았기 때문에 할머니할아버지는 손자까지 보고 가신 것이다. 두 분은 돌아가시면서도, 젖엄마 은공 잊지 말고 젖동생들한테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인제 용단이도 할머니가 돼서 친정아버지 기제사에 참석차 오래간만에 친정엘 들렀다. 제일 먼저 봉천 오라버니를 찾았다. “오라버니, 나 왔수. 아직도 신수가 끼끗하시구먼요.” “동생두 누가 칠십할머니루 봐.” “아이구 그런 소리 마셔 둘째며느리가 벌써 애가 둘이우.” “내도 그려. 며느리를 셋이나 봤잖여. 그래 손자들은 잘 크제?” “둘째 난 둘째며늘애가 젖이 부족해서 애가 날마다 투정이우.” “어허 그려, 우리 셋째며늘애는 젖이 남아 주체를 못하는 모양이던데 그 손자애를 데려와 봐 우리 셋째며늘애한테 젖 좀 물려보라 하게.” “아이구 고맙수. 한데 요새 젊은 애들 행여 그리 하려 하겠수. 일부러 모유 안 멕이고 우윳병 물리는 세상인디.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를 오라버니한테 보낸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대단한 분들이셔.” “그러게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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