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 중 하나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세 아이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아이들 각자의 학업과 취업준비, 직장일로 공통시간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금년 여름에도 역시 아이들의 일정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올해는 시간이 되는 아이와 우선 떠나기로 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함께하는 여행이다.
   여행일과 행선지를 정함에 있어 동반하는 아이의 의견에 무조건 맞추고 출발부터 도착까지 눈에 설거나 불편함이 있더라도 꾹 참고 지내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약속이었다. 추가옵션이나 쇼핑이 없고 가격도 적당해서 일본의 한 지역 패키지 상품을 선택했다. 선물 부담 갖지 말고 각자 필요한 물건이나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지출하며 최대한 자유롭게 여행하기로 했다. 전통적인 주거와 음식이나 공예품 등으로 일본의 전통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여행의 특징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인솔자는 매우 친절한 인상이었다. 경력 많은 베테랑 가이드로  직업의식이 투철했다. 관광지와 관련하여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은 기본이고, 아침마다 여행객이 편안한 숙식을 취했는지 살피는 태도도 지금까지 접한 어느 가이드보다 훌륭했다. 가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해설 중간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며 가끔 익살스런 몸짓과 함께 그녀가 보여준 노래와 춤은 버스 안 일행들의 더위와 피로감을 씻어주었다. 자신의 일을 즐기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일행 중 5쌍의 장년 부부들은 40년 지기들이라고 했다. 모임의 구심점은 잘 모르겠지만 상당 시간 좋은 인연을 유지하는 그들의 우정은 본받을 만했다. 서로 부부애를 과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 아쉬웠던 점은 그들만의 소란한 교류가 동반자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모녀 쌍과 모자 쌍의 여행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조용하면서도 다정하게 여행을 즐기는 모녀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서로 소 닭 보듯 소원해 보이는 모자 여행객은 왜 함께 여행을 왔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침묵의 시간은 대화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어느 편의점에서 그들과 우연히 마주쳤다. 아들은 어머니가 물건 사는 것을 말리고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보다가 집었던 물건을 내려놓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들이 따라다니며 물건 사는 것을 막는다고 내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저녁 후 로비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자신의 조기 승진 담과 남편 및 큰 아들 직업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외국 유학 중인 작은 아들의 방학을 이용해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아들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낯선 이에게 늘어놓는 어머니에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다. 그들의 관계가 왜 밀착되지 못하는 지 알 것 같았다.
   70 초 중반의 한 부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2일째 아침 식사장소에서 만났는데 숙소에 팁을 주었냐고 아내 분이 물었다. 남편이 과도하게 팁을 주었다며 무척 아까워했다. 다음 날은 남편이 두고 온 팁을 자신이 가지고 나왔다며 남편이 알게 될까봐 불안해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살 동전을 달라는 아내를 못들을 척 피해버리는 남편을 보니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 여행에서 자매끼리 온 경우는 여럿 있었으나 형제끼리 온 경우는 없었다. 삼남매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내가 그리던 가족여행의 모델이었다. 여행지에서  함께 한 일행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기회가 되었다. 은퇴 후에도 숙박시설과 식당 등에서 밝은 미소와 함께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떠나는 방문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일본 노인들의 건강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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