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큰 전쟁을 겪은 인류는 모든 감정을 통제하려 한다. 감정이 모든 분쟁의 시발점이 됐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정부 당국은 감정 억제가 안 되는 이들에게는 감정을 없애주는 약을 강제로 투여한다.

얀 드봉 감독이 연출하고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을 맡은 영화 ‘이퀼리브리엄’(2002)의 내용이다. 제목인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은 고뇌가 없어진 평정 상태를 뜻한다.

‘이퀼리브리엄’으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 설정의 영화가 새롭게 나왔다. 이달 31일 개봉할 예정인 ‘이퀄스’다. ‘이퀼리브리엄’이 감정이 되살아난 반역자들과 이들을 제거하려는 정부 당국간 싸움을 그린 SF 액션물이라면, ‘이퀄스’는 감정이 통제된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된 남녀 이야기를 담은 SF 로맨스물이다.

‘이퀄스’는 ‘인류 대전쟁’ 이후 ‘반도국’과 ‘선진국’으로 나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반도국은 감정통제 오류 증상을 보이는 ‘결함인’이, 선진국은 감정이 제거된 채 지적으로 평준화된 인간인 ‘이퀄’이 각각 모여 산다.

하지만 선진국의 모든 주민이 이퀄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불현듯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이런 감정통제 오류 증상이 나타나면 감정억제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럼에도 증상이 심해지면 치료 감호소로 수감된다.

선진국의 안전부는 감정통제 오류 증상이 있음에도 자진 신고를 하지 않은 결함인들을 색출하는 업무를 맡는다.

어느 날 동료의 투신을 목격한 주인공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현장에 같이 있던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고서 그가 결함인임을 알게 된다.

사일러스는 그 자신이 감정통제 오류 증상으로 고민하고 있어 니아가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 둘은 금지된 감정이 살아 있음에 동질감을 느끼고 급기야 서로 사랑하게 된다.

남녀간 사랑이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으로 간주되는 선진국에서 이들의 사랑은 결국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이퀄스’는 감정이 통제된 사회를 스크린 속에 그럴듯하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일체의 장식이 배제되고 기능성만 극대화된 디자인의 건축과 의상, 배우들의 건조한 표정과 어투 모두 무감정의 사회에 어울릴 만하다.

영화는 감정적으로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땐 음악과 음향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감정이 억제된 사회를 너무 사실감 있게 그려낸 탓일까.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단조로운 느낌이다. 하지만 니콜라스 홀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애틋한 사랑 연기가 흠잡을 데 없어 이들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끝까지 보게 한다.

한국 배우로 김수현이 재난방송을 전달하는 목소리로 출연하고, 박유환은 사일러스의 회사 동료로 잠깐 등장한다.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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