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전 제천교육장)

▲ 최성택(전 제천교육장)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리우 올림픽은 큰 탈 없이 끝났다.
한국은 10-10 (금메달10개, 종합순위10위)이 목표였는데 금메달은 9개이나 종합순위는 2단계 뛰어 대체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온 국민이 열광하고 안타까워했던 장면들을 떠 올려본다.
 먼저 양궁은 남, 여, 개인 및 단체 4종목을 석권하였고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8연패 하는 역사를 썼다. 이런 쾌거는 “우리보다 열심히 한팀 있으면 메달을 돌려주겠다.”고 한 문 영철 총감독의 말처럼 준비가 철저했다. 또 파벌이 없고 원칙을 고수하는 일관성과 협회장인  현대자동차 정 의선 부회장의 완벽하고 정성이 담긴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세계 골프 사상 최초로 골든 그랜드슬램 (세계4대 메이저대회 우승과 올림픽 우승을 달성 )의 위업을 달성한 박 인비를 들 수 있다. 금년 들어 손가락 부상으로 국내대회 컷도 탈락하는 부진과 악성 비난도 있었지만 브라질 경기장과 비슷한 골프장에서 오전 6시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연습 하였고 리우에 가서도 저녁에 남편 남 기협 씨 와 옥상 비밀 훈련을 할 만큼 몰입한 박 인비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37살 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격 50m 권총에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진 종오 는 ‘살아 있는 전설’ 이 되었다. 결선 9번째 발에서 6.6점을 쏘고도 평정심을 발휘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편 진 종오 만을 위한 총과 실탄을 제공한 소속사 kt의 후원도 큰 보탬이 되었다.
 펜싱 에페 개인 결승에서 세계 랭킹 3위인 임레게저(헝가리)를 10:14의 열세에서 1분 5초 동안에 1점도 내주지 않고 15:14로 역전 우승한 세계 랭킹21위의 박 상영, 그는 이래저래 힘든 국민들에게 시원한 사이다였다. 그는 1점만 잃으면 지는 상황에서도 “난 할 수 있다” 고 다짐하면서 기적을 일궈낸 그를 보고 취업과 사업에 실패한 이 등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소감들이 올라와 있다.
 그런가하면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부의 김 소희, 오 혜리, 동메달의 남자부 김 태훈, 이 대훈, 차 동민의 태권도는 출전 선수 5남매 모두가 메달리스트인 효자 종목이 되었다. 또 억울한 판정과 팔이 탈골된 부상에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레슬링의 김 현우(동메달), 금메달 이상으로 전 세계의 펜들로부터 응원을 받은 열혈남 펜싱 샤브르 개인전의 김 정한(동메달), 2012년 은퇴 후 복귀한 주부 역사 역도 윤 진희의 동메달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세계1위인 중국의 마룽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2:4 로 분패한 남자 탁구의 정 영식, 조별 예선에서 우승팀 독일과 3:3 으로 비긴 남자 축구는 과학적인 훈련을 하면 장래가 기대된다.
 리우 올림픽이 끝난 지금 한국체육의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1. 악 조건과 위기의 순간 등 모든 상황에 대비한 선수와 단체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2. 이제는 헝그리 정신으로 순위와 포상금에 집착하는데서 보람과 즐기는 스포츠가 대세이며 한국도 점차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는 점 을 감안해야 한다.
 3. 준결승에서 지고서도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 준 태권도 이 대훈 선수의 매너는 국제화 된 한국 젊은이의 품격을 보여줬다
 4, 국내대회 순위로 몰 빵 배구에 빠진 배구계, 여전히 수비가 약한 축구, 정신력만으로 안되는 여자 핸드볼은 세계의 흐름을 보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5. 수영, 체조는 금메달도 가져왔던 종목이지만 한 두 명에게 의존했다가 부상이나 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을 보면서 선수의 저변 확대를 절감한다.
 6. 333개의 메달이 걸린 육상(47종목), 수영(46종목), 체조(18종목), 등 기초종목 육성이 화급하며 일본의 남자400m 계주 은메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7, 베트남의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도록 지도 한 사격의 박 충건 감독 등 한국인 감독 18명이 리우 올림픽에서 16개국 7개 종목의 각국 대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어 대표선수 못지않게 한국의 명성을 널리 알린 공로자 들이다.
 8. 후보자 23명중 4명을 뽑는 IOC 선수 위원에 당선 된 유 승민은 선수 시절의 실적을 능가하는 쾌거이며 선수의 경기력 못지않게 스포츠 외교에 큰 울타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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