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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콩트-얼른 해가 졌으면<박희팔>
추석 콩트-얼른 해가 졌으면<박희팔>
  • 동양일보
  • 승인 2016.09.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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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소설가)
▲ 박희팔(소설가)

 전화벨이 울린다. 큰조카일까? 명천 씨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작은아버지, 저예요 영은이요. 그 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지금 금방 절에서 추석차례 잘 끝냈습니다.”
 “알았다. 수고했다. 다들 무고하지?”
 “여긴 다들 괜찮아요. 작은 아버지 뵈러 가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죄송해요.”
 “난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편히 지내. 니 댁한테 수고했다구 전하구.”
 명천 씬 오늘 추석날 이렇게 보고를 받으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형님이 생존하셨을 때는 명절 땐 서울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아니 돌아가시고도 3년간 은 그대로 큰집에서 지냈다. 형수님이, 여태까지 한 대로 당신이 명절음식 장만해서 차례 상 차리겠다고 해서 그리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듬해, 형수님이 갑자기 하지를 못 써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는 전화전갈이 형수님과 같이 살고 있는 셋째조카에게서 왔다. 부리나케 상경해보니, 척추 다섯 번째 뼈가 이상이 있어 수술을 하게 됐다는데 퇴원한 후에도 후유증이 계속돼 재수술을 하게 되고 그러는 바람에 거동이 부자유스런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는 벌써 추석이 임박해 있었는데 하루는 형수에게서 한번 오라는 전화가 와서 올라갔다.
 “아무래도 돌아오는 추석부터는 전주에 가서 살고 있는 큰애 집에서 차례를 지내셔야겠어요. 서방님이 보시다시피 인젠 난 안 되겠어요. 서방님도 인제 내후년이면 칠십이시라 거기까지 가시자면 어려우실 텐데 어쩌겠어요. 내가 이러니.”
 그래서 이때부터는 큰조카네로 가서 명절을 쇠게 됐는데, 이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사실은 서울로 명절을 쇠러갈 때도 만만치 않았다. 고향땅 충청북도에서 서울까지 200여리가 넘는데, 얼마동안은 역귀성의 인구가 적어서 귀성객들의 아수라장판보다는 상경길이 수월했지만 서울로의 지방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부터는 역귀성의 교통편도 그리 녹녹치 않았다. 한데 서울보다도 100여리가 더 멀어 300여리가 넘는 전주까지 가는 길은 하행귀성객들과의 뒤엉킨 길이어서 여간 멀고 지루한 게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에서 지낼 땐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들애가 서울 그대로 있으면서 명천 씨 두 내외만 올라가면 됐는데 전주로 가면서부터는 아들애가 하행귀성인파에 묻혀 가까스로 내려와서는 되짚어 제 부모 내외를 다시 승용차에 싣고 내려가야 하니 이 역시 여간 번거롭고 고역스런 일이 아닌 것이다. 큰조카 네에 도착해서는 또 어떤가? 30여 평 아파트에, 큰조카네 제 식구 다섯, 부산서 온 둘째조카네 식구 넷, 서울의 셋째조카네 식구 셋(형수님은 못 오시고), 돌연한 교통사고로 양부모 잃고 지금은 각각 청주, 대전 영광 땅에 흩어져 사는 아직 미혼의 아우네 소생인 조카딸 셋, 그리고 명천 씨 식구 셋 해서 총 열여덟 명이 모여 들먹이니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 방불케 한다. 그런가 하면 방이 세 갠데 어느 틈에 안방은 조카며느리들 셋과 아우의 소생인 조카딸 셋이, 사내애들 둘이 쓰는 건넌방은 조카들 셋과 아들애가. 그리고 부엌 벽에 딸려 있는 제일 작은 구석방은 세 조카 네들 아이들 여섯이 차지하고는 나름대로의 수다들을 떨고 있어 명천 씨 내외는 자동으로 거실을 차지한 채 무료히 텔레비전에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차례음식 준비하는 기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서울에서 명절을 쇨 때는 형수님이 미리 차례음식에 소용되는 재료들을 준비해놓고 전 날 상경한 아랫동서 그러니까 명천 씨 내자와 같이 본격적으로 음식장만을 관장하면서 조카며느리들에게는 전이나 부침개 같은 것을 하도록 지시하면 그 명을 받아 하나같이 분주하게들 돌아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하다. 명천 씬 내자를 시켜 큰조카며느리를 불러 알아보도록 했다.
 “얘, 차례음식 장만은 언제 하는 게냐?”
 “다해 놨는데요. 작은어머님.”
 “아니. 어느 틈에 벌써?”
 “마트에 가서 다 사다 놨어요. 요새 다 그래요, 누가 요새 집에서 송편 빚고 전 부치고 있어요. 골고루 다 있어요. 마트에는. 포장해서 세트루요.”
 “그려, 어디 보자!”
 내자는 큰조카며느리를 따라 냉장고 앞으로 간다. 열어 보이는데 냉장고 가득 조막만 하게  포장된 것들이 채워져 있고 그 중에 송편 넣은 포장지도 보인다.
 “집에서 저희들이 다 장만하고 싶은데요, 제 눈이 잘 보이질 않아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너 참 녹내장인가 뭐라며?”
 “예, 아직은 약 먹고 치료하고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은데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그건 그렇구요 내일 아침에 물만 끓여 토란국만 하면 되구요, 작은아버님은 애비한테 지방 쓰는 것 좀 가르쳐주시고 차례음식 진설하는 것 좀 도와주셔요.”
 차례 모시는 선대어른들이 열 분이나 되고 형님과 아우내외까지 해서 열세그릇을 차려야 한다. 병조참판벼슬을 지냈다는 증조할아버님을 비롯해 마나님을 둘 셋씩 둔 분들이 있어서다. 그러니 눈 나쁜 큰조카며느리 입장도 이해가 간다.
 이렇게 2년을 전주로 명절 쇠러 다녔는데, 이번 추석을 앞두고 또 형수님에게서 전화연락이 왔다.
 “서방님, 노여워 마시고 들으셔요. 전주 큰며느리가 녹내장 눈이 더욱 나빠져서 돌아오는 추석차례를 못 지내겠다면서 부득이 제가 다니는 절에다 모셔야겠대요. 그렇게 되면 식구들이 전부 전주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다는 거야요. 절에서 다 알아서 차려주는 것이어서 지들 식구만 가서 참여를 하면 된다나요. 어쩌지요?”
 “글쎄요, 갑작스런 일이라 전 뭐라고 대뜸 대답 드리지 못하겠네요. 형수님 의향에 따를 수밖에요. 그나저나 눈이나 호전돼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그리구요 또 한가지 말씀 드릴 게 있는데요 기제사 말씀인데요. 명절차례 상은 나 죽을 때까진 그냥 열세 그릇 차리게 하겠지만 기제사는 이번 기회에 줄여야겠어요. 아버님 내외분하고 형님하고만 지내고 셋째서방님 내외는 조카딸 셋이서 지내게 하려구요. 어떠세요. 서방님 의향은?”
 “하긴 요즘 기제사는 일 년 중 제일 첫 번째 달에 든 분의 기제사 날에 몰아서 한 번만 지내는 집들도 많다 하는데, 것두 형수님 의향대로 하시지요 뭐.”
좀 떨떠름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한 것 같아서 그냥 어정쩡하게 동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 첫 번째 맞는 오늘 추석날, 명천 씬 추석 쇠러 가지 못한 대신 혹여 큰조카의 전화를 이때나 저때나 하고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잘 지냈다니 그나마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아들애는 어젯밤 늦게 와서 한나절까지 자더니 고등학교 동창들과 약속이 되어 있다면서 청주로 내달았다. 오후에 딸네 식구들이 왔다.
 “어쩐 일이냐. 오늘 친정엘 다 오구?”
 “엄마 아버지 올해부턴 명절에 큰집 큰오빠네 안 가신다구 해서 뵈러 왔지요.”
 “너희는 참 교인집안이라 명절하곤 상관없겠구나?”
 “그렇긴 한데 그래도 크리스마스처럼 국가공휴일이잖아요. 뜻있게 보내야지요. 그래서 왔어요. 기특하지요 엄마 아버지?”
 “그래, 그래 잘 왔다.”
 아우네 조카딸들도 왔다.
 “너희는 어쩐 일이냐?”
 “특별히 갈 데두 없구 해서 둘째큰아버지 둘째큰엄마 뵈러 왔어요.”
 “그래, 잘 왔다. 근데 참, 올해부터는 너희아버지 어머니 기제사는 너희들이 모여 지내라. 그리구 내년 명절부터는 너희아버지 어머니 명절차례도 너희들이 지내고. 큰애 알았지?”
 “예, 근데, 큰아버지와 우리 엄마 아버진 화장해서 강에 뿌렸기 땜에 성묘 갈 데가 없지요?”
 “그래, 할아버지 할머님도 화장을 했으니….”
 명천 씨 대답에 힘이 없다.
 명천 씬 딸네 식구와 조카딸 셋 모두에게 세뱃돈 10000원씩을 주었다. 애들은 그길로 읍내장터로 내달아 라면을 사와선 끓여 먹고 다들 가버렸다. 
 명천 씬 동네어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집집에서 나온 승용차들이 마을을 빠져나간다. 집집의 자식들이 다들 대처의 저희들 집으로 각기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저놈들이 다 소싯적엔 인사 왔던 놈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놈도 안 왔다. 하긴 아들애도 동네어른들께 인사도 올리지 않고 내달았다. 갑자기 명천 씨 마음이 허전해지고 무거워진다. 기력이 빠지고 무료해진다. 빨리 오늘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데 아직 추석의 저녁 해가 대여섯 자나 남아 있다. ‘얼른 해가 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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