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충북지방중소기업진흥원장>

1987년 3월 4일 새벽 서울 도봉구 공릉동 모 산부인과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내 아들이다.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달려가 보니 금방 태어난 아이 답지 않게 얼굴이 깨끗했고, 얼굴은 물론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톱 모양도 나와 정말 똑같이 닮았다.

오후에 병원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우유를 잘 먹지 못하고 몇 번 우유를 빠는가 싶더니 금세 토하고는 울기만 했다. 처음에는 아기들의 빠는 힘이 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나아지기를 기다렸으나 그 다음날에도 우유를 먹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산부인과에 가서 물었더니 장이 꼬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청량리 동산병원을 소개해 줬다.

동산병원에서는 이틀 동안 못 먹어 탈수증상이 있다며 링거를 놔줬고 아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터에 넣어 지켜보자고 했다.

다음날 갑자기 아이의 배가 부풀어 올라 수술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은 위나 장에서 천공이 생겨 공기가 들어가 나타나는 현상인데,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길 여유도 없다고 했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 때 “살 확률은 어느 정도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10% 정도입니다”라고 대답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수술은 2~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수술을 마치고 나온 외과과장한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아무리 힘세고 건강한 젊은 청년이라도 저 정도면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포기하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했다.

위가 괴사돼서 절반을 절제했고 수술 후 몸무게는 3.2kg에서 2.2kg으로 줄었으며 아기는 머리와 팔다리에 대여섯개의 링거와 주사바늘이 꽂힌 채로 수술실을 나왔다.

수술 후 위의 절반이 절제된 만큼 우유를 두시간에 한번씩 주도록 조치하였는데 아이는 우유룰 먹자마자 설사를 해 배가 고파 하루 종일 울어댔다.

두달이상 병원치료를 했으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아내와 나는 병원장을 찾아가 퇴원을 요청했다. 그 후 서울 모 대학병원의 소화기내과 전문의 이 모 박사를 찾아 입원을 시켰다.

이 박사님은 ‘기아로 인한 설사’ 즉, 못 먹어서 생긴 설사라며 우유를 한시간에 한번씩 먹이라고 했다.

처음 치료한 병원에서 우유 먹이는 시간을 두시간으로 너무 길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유를 먹이고 삼십분이 지나면 아이는 배가 고프다 우는데 나는 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는 일만 계속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도 하루에 설사 횟수가 7~8회 정도, 몸무게는 태어난 3.2kg에 못 미치는 정도의 결과만 갖고 내가 청주로 발령이 나서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청주로 내려온지 며칠 안돼서 우연히 수곡동에 있는 남들약국에 들러 아이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다 들은 박사님은 “수술하고 치료했던 두병원 모두 조치를 잘 못한 것 같네요. 제 생각엔 우유를 삼십분마다 먹어야 될 것 같아요. 우유가 위에서 삼십분이면 소화가 다 될 거예요 소화가 다 돼 배가 고프니 울지요. 그리고 이 약을 먹여 보세요. 독일제 지사제인데 굉장히 효능이 좋아요. 병원에서는 값이 비싸서 못 썼을 거예요“라며 처방을 해주셨다.

아이에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하루 10시간이상 울던 아이가 삼십분 단위로 우유를 먹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 울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있을까. 설사도 멈추기 시작했다.

한탄스러웠다. 왜 지금까지 우유가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30분 정도인 것을 두병원에서는 몰랐을까. 배를 채워가며 설사 치료를 했어야했는데 매일 우는 아이를 달랬던 게 얼마나 미안한지…….

그 때 생후 5개월(보통 7키로 이상 나가는데) 우리 아이는 태어난 몸무게 3.2kg을 약간 넘어선 상태였는데, 이때부터 그야말로 뻥튀기처럼 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돌이 되었을 때는 혼자서 뛰어다니는 정도까지 자라났고 아주 건강해졌다.

역시 병은 자랑해야 좋은 의사도 알게 되고 치료법도 알게 된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했던 우리 아이를 청주 수곡동 골목에 있는 남들약국 약사님이 치료한 것이다. 약사님은 이화여대 약학박사 학위를 가진 김수연 박사님이시고 박사님의 남편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기호 변호사님이시다,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한분이어서 이 자리를 빌려 김수연 박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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