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

 

일본의 J씨와 중국의 C씨에게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제가 일본을 떠난 지도 벌써 9년이 다 되고 있습니다. 그간 별 일 없으셨는지요? 일본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하면서 나눈 두 분과의 대화는 지금도 저의 커다란 학문적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을 살려서 저는 지금 한국철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한국 사상을 연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중국철학을 연구했다”는 독특한 경험이 한국철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의미있는 기념일인 ‘개천절’을 맞아서 모처럼 두 분과 일본과 중국과 한국에 대한 추억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5년 전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중국에 대한 강렬한 인상, 일본에서 6년간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특별한 체험을 10여년 만에 두 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소개의 일환으로 ‘개천절’이 지니는 사상적 의미와, 그 의미를 살려서 올해 청주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는 동양포럼”에 대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중국에 대한 추억

- 혼돈 속의 생명력 -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제가 한국에서 철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에 중국에 답사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종교학과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중국의 도교사원을 견학하러 가는 자리에 운 좋게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문헌으로만 접했던 중국의 종교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지요.

비행기 안에서 들려오는 중국인 스튜어디스의 중국어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멍하니 듣고만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일본어에 빠져 들게 된 계기도 바로 그 소리와 리듬이 주는 아름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북경 시내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로에 자동차와 자전거, 인력거와 사람이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일제히 행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혼란’이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란’이 단순히 앞이 보이지 않는 무질서 상태를 의미한다면, ‘혼돈’은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고 있는 잠재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아마도 중국사상의 대가였던 미조구치 유우조 선생이 “지금의 중국은 혼란상태가 아니라 혼돈상태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동아시아도 일종의 혼돈상태일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에 대한 일시적인 편견을 바꾸게 했던 것은 중국인들에게서 느꼈던 ‘생명력’ 때문이었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난생 처음 인력거를 타 보았습니다. 한여름 밤의 중국 시내를 웃통을 벗어젖힌 검은 피부의 인력거꾼들이 신나게 떠들면서 질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피곤한 기색도 없이, 싫어하는 내색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저에게는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고전적인 영화 ‘인생(活着)?’에서 느꼈던 중국인들의 삶을 피부로 생생하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추억

- 예를 다하는 마음 -

 

이번에는 일본에 대한 추억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일본에 유학한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어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했고 자신의 학문인생에 있어 의미도 있다고 생각되어 같은 분야의 선생님들께 자기소개를 담은 엽서와 함께 일일이 논문을 보내드렸습니다. 대부분 일본을 대표하는 도교연구자로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훌륭한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한 달이 채 안 되어 답장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직접 손 글씨로 써서 엽서를 보내온 것입니다. 저로서는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다니고 있던 대학의 명예교수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교학자이신데, 연세가 90이 다 되어 글씨를 쓸 수 없다면서 제 지도교수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 고맙게 잘 받았다는 답례와 함께 계속해서 연구에 매진하라는 격려의 말을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한분한테서만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마에다’라는 젊은 도교연구자인데, 제가 다니는 대학 출신의 선배학자여서 더 이상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났을까 뜻밖에도 그 분 부인으로부터 엽서가 왔습니다. “마에다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보내주신 논문 잘 읽어봤습니다. 과연 고바야시 선생님의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도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저는 머리통을 얻어맞은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것도 큰 슬픔일텐데 내가 괜히 논문을 보내어 슬픔을 더하게 했구나’라는 자책감과 함께, ‘일본은 죽어서까지 답장을 보내는구나’라는 감동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습니다. 후 샤오시엔이라는 중국출신의 저명한 감독이 “내게 영화란 세상을 대하는 예의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하는데(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인터뷰 참조), 일본인들이 사람을 대하는 예의도, 특히 손님을 대하는 예의는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직업’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소개

- 하늘을 여는 사람들 -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는 10월 3일은 ‘개천절’이라는 기념일로 휴일입니다. 그러나 ‘개천’의 의미가 무엇이고, 누가 그 말을 생각해냈고, 그것이 어떤 사상적 함축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최근에 들어서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한국에서 철학이나 종교를 공부한다는 연구자들은 대개 서양이나 중국의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데, 정작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저도 선배학자들의 전철을 밟아서 그런 패턴을 전형적으로 따른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바로 이런 경력이야말로 한국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상은 중국과 서양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저의 요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차적인 이유는 지금의 한국이 대단히 서양화되고 중국화되어서 서양적이고 중국적인 언어와 사상으로 전달을 해야 비로소 그 의미가 이해되고 가치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개천’은 말 그대로 “하늘을 연다”는 뜻입니다. 이미 열려진 하늘을 또 연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아시다시피 하늘이 열려지는 것을 중국 사상에서는 ‘개벽’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제시대에 활동한 이육사라는 시인의 ‘광야’에 나오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가 바로 개벽을 묘사한 말이지요. 그런데 19세기에 한반도에서 탄생한 ‘동학’이라는 사상에서는 이 ‘개벽’을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태초에 하늘이 저절로 열린다”는 우주론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하늘을 연다”는 인문학적인 의미로 탈바꿈시킨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개천’도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된 것 같습니다. 1910년, 한국이 공식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해에 ‘대종교’라는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대종교에서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일을 기념하여 ‘개천절’을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라를 세운 ‘건국’을 하늘을 연 ‘개천’으로 표현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단순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국절’이 아닌 ‘개천절’이라는 표현을 택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개천’은 동학에서 말한 ‘개벽’과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대종교의 사상가들은 단군의 건국이라는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의 배경이 된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에 더 주목했을지 모릅니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보편적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사건을 “인간을 위해 새로운 하늘(=세상)을 열어줬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대종교에서는 대종교의 창시를 ‘중광(重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동안 묻혀 있던 단군의 이념을 다시 한 번 밝힌다는 의미이지요. 저는 이 ‘중광’이 동학에서 말하는 ‘다시 개벽’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린 개벽에 대해서 민중들이 새로운 하늘을 여는 것을 ‘다시 개벽’이라고 했듯이, 대종교에서도 먼 옛날에 천신(天神)이 내려와서 새로운 하늘을 열어준 것에 대해서, 이번에는 민중들이 스스로 새로운 하늘을 여는 것을 ‘거듭 비춤’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즉 20세기적인 의미의 ‘개천’을 단군신화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동학의 개벽과 대종교의 개천은 모두 당시를 세상이 다시 열리는 전환기로 보았다는 점에서 상통합니다.

 

청주에서 여는 생명의 하늘

- 철학하는 동아시아 -

 

그런 점에서 오는 10월 1~3일 동양일보의 후원으로 청주에서 열리는 동아시아포럼 ‘한·중·일의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대단히 의미 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새로운 하늘을 열기에 안성맞춤인 지역이자 시기적절한 시점에 열리는 대화의 장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새로움이란 비움에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기존의 생각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유의 자유로움에서 창조가 시작됩니다. 그것을 동아시아사상에서는 ‘허심’이나 ‘무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청주시대를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충북대학교가 위치한 ‘개신동(開新洞)’은 바로 이런 사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처음의 ‘무’의 상태로 되돌리고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것이 바로 청주시에 담겨진 무심과 개신의 자세입니다.

또한 청주시가 표방하고 있는 ‘생명문화도시’ 건설은 합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근대문명으로부터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찍이 동학이 표방한 ‘생명개벽’(김태창 선생의 표현)의 계승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구적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을 자기 안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근대화’란 ‘현대화(modernization)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의 근대화가 오로지 서구적 근대화만을 의미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동아시아가 추구해야 할 근대화는 전통사상의 현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 ‘생명’과 ‘문화’가 있습니다.

중국의 인력거꾼들이 보여준 강한 생명력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보여준 정중한 예의 역시 전통적인 생명문화의 현대적 또는 민중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자연의 차원이라면 문화는 인간의 영역입니다. 일찍이 생명에 대한 문화적 표현을 동학에서는 ‘경(敬)’이라는 한 글자로 담아냈습니다. 동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력거꾼의 몸놀림은 우주적 생명력으로서의 하늘님의 현현이고, 일본학자들의 예의문화 역시 하늘님을 대하는 문명적 자세에 다름 아닙니다. 이와 같은 생명력의 자유로운 발현과 타자에 대한 공경의 태도야말로 21세기 동아시아인들이 지향해야 할 공통선이자 하늘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선의 실현은 시민 차원에서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편견의 제거와 전통의 재구축(deconstruction)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철학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동아시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19세기적인 이념과 시비가 아니라 21세기적인 철학과 사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천절에 청주에서 열리는 철학대화가 기대됩니다.

두 분께서도 이 역사적인 대화에 주목해주시기를 바라면서 10여년 만에 보내는 소식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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