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안치범(28), 그는 모든 이의 마음에 와서 별이 되었다. 옛글에서는 훌륭하고 잘 생긴 남자를 미인(美人)이라 하였다. 아름다운 사람. 그는 쓸쓸해지는 가을, 세상에서 또렷한 별빛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들어와 박혀 살게 되었다.
  지난 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합정역 인근의 한 원룸에서 방화에 의한 불이 나서 그 건물은 거의 전소 되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라 세입자들은 깊은 잠에 들어 있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119에 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멈칫거리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불은 3층에서 났는데 4층에 살고 있던 그는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깨웠다. “나오세요”라고 외치면서 불길과 매연 속에서 문을 두드려 대서 그의 손은 그을리고 데이기까지 하였다 한다. 
  성우의 꿈을 키우면서 학원 가까이 살던 그는 참 우렁차고 힘찬 목소리를 가졌다. “나오세요” “일어나세요”를 외쳐대며 깊이 잠든 사람들을 일일이 깨우고 본인은 정작 5층 계단에서 질식해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 발견 되었다. 열하루 동안을 병원에서 치료하였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숨졌다. 참으로 가슴 철렁한 안타까운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던 것이다. 정말 꽃다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아들을 보며 그의 부모님은 얼마나 애간장을 녹여 냈을까?
  성우 학원에서도 매우 성실하여 학원 원장을 맡으라는 권고를 받기까지 하였다 한다. 곧 있을 방송사의 성우 모집에 지원하기 위하여 서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는 진정 값진 목소리로 주민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대피시켜 지켜냈다. 자신의 목숨을 먼저 생각했다면 참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는 모든 이웃들을 깨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던 것이다. 그가 이웃들을 깨우던 목소리는 매우 고귀하고 값진 구원의 목소리였다.
  한국성우협회에서는 고인의 영결식이 거행되는 22일자로 한국성우협회 명예회원으로 인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다.
  이제 “초인종의 의인”으로 불리는 그는 10월말경이면 의사자로 결정되어 부모와 지인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그는 평소에도 타인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가 공익근무 시절 도움을 주었던 장애인 제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빈소를 찾아오자 유족들이 깜짝 놀랄 만큼 그는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는 했다 한다.
  아름다운 청년, 안치범이 행한 살신성인의 의로운 선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과연 나라면 그런 상황 속에서 그와 똑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자식이라면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하라고 일러 줄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아들 셋을 두었다는 가수 임창정도 “우리 아들들도 당신처럼 키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지만 그 대답에는 나도
몹시 망설여지는 마음이다. 
  발인식에서도 그의 어머니는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처음엔 아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불이 난 데를 왜 다시 들어갔냐고……그런데 임종 때 아들에게 내가 그랬어요. 아들아 잘 했다.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하면서 “많은 시민 분들이 함께 슬퍼해 줘 힘이 난다. 아들이 이웃들을 살리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면서 애써 슬픔을 이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어려운 사람을 보면 기꺼이 도와주는 그런 친구였다고 기억하더라. 남을 구하다가 제 목숨을 다친 거라 많이 위로가 되고 있다”고 의연하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의 유족들은 이웃을 살려내고 떠나간 그의 정신을 기려 장기를 기증 하려 하였으나 그의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고 한다.
  꽃처럼 눈부신 청년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안 좋은 이야기들로 들끓는 세상에서 정말 고귀하고 아름다운 짧은 생을 마감한 안치범 청년의 영전에 기도를 올리며 그의 삶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별이 되어 떠오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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