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일명 김영란법이 28일부터 본격 시행되지만 적용 규정이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법 시행을 앞두고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설명회도 개최하고 유권해석도 내렸지만 직무 관련성 등에 대한 모호성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향응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이 ‘엄격한 법령’은 요즘 모이는 자리마다 가장 먼저 화두로 거론된다.
국민권익위에서 배포한 법령 해설집과 사례집을 토대로 기관마다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모습이지만 대부분의 공통된 결론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시범 케이스엔 걸리자 말자’ 식이다.
일반에 알려진 김영란법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으로 상한을 두는 이른바 ‘3·5·10법’ 정도로만 인식돼 있다.
하지만 법에서 정한 ‘부정청탁의 기준’이 워낙 광범위해 합법과 불법을 나누는 게 애매한 구석이 많다. 일부에서는 나중에 법원 판단이 나와 봐야 처벌 범주를 어느 정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영란법이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는 공무원들의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렇다 보니 당분간 불필요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가장 위축돼 있는 곳이 관가다. 직접 적용 대상인 공직자들은 다가올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바짝 엎드려 있는 분위기다.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첫 시범 케이스’에 걸릴까봐 법 시행 이후 잡혀 있는 각종 약속과 모임을 일찌감치 취소하는 등 각별히 몸조심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관공서 주변 요식업계는 벌써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법 시행 이후 승진·인사를 앞둔 시기에는 더욱 움츠러들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기업체에서도 감지된다. 기업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지만 관계·학계 등과 접촉이 잦아 부정청탁과 식사·선물·경조사비 등 제공 한도와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비가 합법화돼 있지 않은 국내에서 기존 관행적으로 해온 행동이 위법이 될 수 있어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에서 정한 금액에 맞춘 3만원 이하의 저렴한 메뉴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음식업계는 다른 문제로도 고심이 깊다. 보상금을 노리는 이른바 ‘란파라치’들이 식당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인들과 공무원들의 식사자리를 쫓아다니며 위반 행위를 포착하는 파파라치로 인해 고객이 특정 식당을 기피할까봐 벌써부터 노심초사다. 지역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효적 대책마련이 시급한 대목이다.
정부와 국회는 법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법 시행 이후 드러나는 미비점과 부작용에 대해선 지속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되 혼선은 최소화하는 데 김영란법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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