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화제를 낳은 KBS 1TV의 팩추얼드라마 '임진왜란 1592'의 성공에는 조연 이철민(46)의 역할이 컸다.

    그가 연기한 귀선돌격장 이기남은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최수종 분)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김응수) 못지않게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철민은 29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귀선돌격장 이기남의 탄생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철민은 "지금껏 조명된 적이 없는 이기남 장군이란 역사적 인물을 처음으로 연기하게 돼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으나 이기남 장군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누구도 연기한 적이 없고 참고할 만한 사료도 없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기록으로 남긴 '귀선돌격장 이기남'이란 이름 하나로 모든 걸 만들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귀선돌격장은 조선 수군의 선봉으로 귀선(龜船·거북선)을 끌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판옥선 본진이 왜선들에 근접할 수 있게 길을 열고 공격을 받아내는 돌격대의 대장이자 거북선의 함장이다.

    극 중에 울분에 찬 민초들을 다독이고 조총 탄환이 빗발치는 귀선 격군실(노를 젓는 공간)에서 장렬히 최후를 맞는 이기남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철민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코믹하고 구수한 사투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는 자칫 딱딱하고 밋밋해질 수 있었던 팩추얼 드라마(다큐멘터리에 드라마를 결합한 극사실주의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고 흥을 돋웠다는 평가다.


    "야이 느자구 없는 새끼들아. 나라님한테 버려진 사람들을 우리가 또 버리면 돼? 안돼? 요새는 버리는 것이 습관이여?"
    드라마 초반 전라좌수영 군영으로 피난온 전쟁 난민을 막아서는 군졸에게 던진 이기남의 걸쭉한 이 한마디는 시청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철민은 사실 고향이 대구라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하는 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한 건 처음이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김한솔 감독이 전라도 광주 출신이고 이번에 함께 출연한 배우 박노식이 전라도 강진인데 녹음을 해가면서 많이 괴롭혔다"고 소개했다.


    이철민은 "이기남을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사전에 감독님과 사전에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의논했다"고 했다.

    이어 "캐스팅됐을 때 감독님이 얘기한 이기남의 이미지는 귀여운 건달, 유머, 카리스마, 이순신을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인물, 그리고 요즘 표현대로 하면 츤데레(겉으로 퉁명스럽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뜻의 신조어)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극 중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독특한 사투리 연기에 대해서는 "이기남만큼은 대사를 사극 톤으로 안 했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주문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여기에 거북선을 직접 지휘할 정도로 이순신 장군의 총애를 받았던 이기남이 서울 출신인 이순신 장군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다면 말투조차 닮고 모방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저의 상상력을 더했는데, 감독님이 좋다, 재밌다며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기남이 병사들을 대할 때도 약간 재밌어지고 여러 가지 입체적인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웃음을 자아낸 '미끄러졌니?', '혼자 갈거니?' 같은 대사들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연기는 없었냐는 질문에는 "1편에서 사천해전에 이기고 격군들이 감격해 우는 장면에서 '밥 먹으러 가자'는 대본의 대사가 좋았는데, 격군들하고 껴안으면서 '두 그릇씩 먹어버려'라고 한 것은 애드리브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논픽션 드라마라 인물을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김한솔 감독이 이기남을 너무 잘 만들어줬기 때문에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하려고 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철민은 '임진왜란 1592'의 대본을 직접 쓰고 1~3편 연출을 맡은 김한솔 PD의 치밀한 세부묘사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거북선의 내부 장면은 수원 KBS 드라마센터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2층 격군실 위의 3층 포군실로 올라갔더니 포를 쏘는 데 불씨가 필요하다고 숯불까지 중앙에 배치해뒀더라"며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연기할 때 김한솔 PD와의 호흡도 좋았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저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하셨더라"면서 "2006년 '거룩한 계보'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때 제가 한 대사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철민은 '임진왜란 1592' 방송 후 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아는 분들도 그렇고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며 "악역을 많이 한 탓에 전에는 주위에서 말을 거는 걸 꺼리고 식당에 가면 나쁜 짓 좀 그만하라고 했는데, 요즘은 부담 없이 대하고 따뜻한 말씀들을 많이 해준다"고 말했다.

    최근 '임진왜란 1592'를 본 한 팬으로부터 '배우 이철민이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철민은 1991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개벽'으로 데뷔한 25년차 배우다.

    영화 '유령'(1999), '이끼'(2010), '황해'(2010), '친구2'(2013), '터널'(2016) 등 영화와 KBS '젊은이의 양지'(1995), '무인시대'(2003), '대왕의 꿈'(2012), OCN '동네의 영웅'(2016) 등 TV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최근 시작한 tvN 'THE K2'에 출연 중이다.

    5부작 '임진왜란 1592'는 지난 3일 1부부터 25일 5부까지 모두 방송됐으며, 29일 밤 10시 제작 뒷얘기를 다룬 번외편 '숨겨진 이야기들'이 전파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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