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영등록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 학술대회

(연합뉴스) '평안도 백성으로 염병을 한창 앓고 있는 자가 2천314인이고, 사망한 자가 547인이라고 도신이 아뢰었다.' ('숙종실록' 62권, 숙종 44년 10월27일)
숙종실록을 보면 1717년 2월부터 1719년 7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이 각종 전염병에 죽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수십 차례 올라온다. 그런데 1719년 가을부터 이듬해 숙종이 사망할 때까지는 전염병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숙종과 신하들은 창궐하는 전염병을 어떻게 물리쳤을까.

마사토 하세가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는 논문 '중앙군영 기록을 통해 본 18세기 초 조선사회와 전염병'에서 당시 군영의 업무일지인 훈국등록(訓局謄錄)을 통해 숙종의 보건정책을 가늠해본다.

마사토 박사는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전염병 기록을 집계한 결과 1717∼1719년 홍역 등 전염병으로 전국에서 3만5천명이 사망했다면서 "조선시대 보건관리상 가장 큰 위기였다"고 말한다. 군영에도 전염병이 번졌는데 여기서 숙종의 '위기관리 능력'이 드러난다.
 
마사토 하세가와 박사

훈국등록을 보면 숙종은 1718년 5월11일 군내 감염자에게 약을 처방하고 격리 치료를 지시한다. 사망한 경우 매장을 잘 하라고 당부한다. 중앙군 감염자가 460명 넘게 집계되자 지방에서 순번대로 서울에 올라와 군역에 복무하는 번상군(番上軍) 상경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숙종이 전염병 특성을 파악하고 군 안팎의 확산을 막으려 애쓴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사토 박사는 "1717년 2월 전염병 감염과 사망에 대한 첫 상소 이후 2년이 지난 후에도 숙종과 관료들의 위기의식은 여전했다.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평가한다.

마사토 박사는 미국 예일대에서 조선시대 한중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한국학 연구자다. 그는 29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군영등록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를 주제로 개막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논문을 발표했다.

군영등록(軍營謄錄)은 조선 후기 서울과 외곽지역을 방어한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 5군영에서 300여 년간 기록한 병영일지로 한중연 장서각이 568책을 소장하고 있다. 군내 훈련·업무뿐 아니라 실록 등이 담지 못한 조선 군인의 생활상을 생생히 전하는 기록으로서 가치가 크다.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군영등록을 통해 조선의 군제사뿐 아니라 사회·생활사까지 조망해보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된다.

유승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논문 '조선 후기 군병의 주거실태와 거주공간의 특성'에서 고향을 떠나 상경한 군인들이 주택난을 겪던 서울에서 어떻게 거처를 마련했는지 분석한다. 무주택 군인은 세입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군영에서는 무주택 군인 현황을 파악해 집단 거주지를 마련해줬다. 인왕산 근처에 특히 군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영국 런던대 SOAS(동양·아프리카대)에서 한국 역사·문화를 가르치는 앤더스 칼손 교수는 군인들이 임금에게 민원을 올린 상언(上言)에 주목한다. 훈국등록을 보면 공신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병역 면제를 요청하거나 흉작 시기 줄어든 식량을 복구해달라는 민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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