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인성교육칼럼니스트)

▲ 반영섭(인성교육칼럼니스트)

그렇게 찜통더위로 가을 오기를 고대하였더니 어느 샌가 가을이 왔다. 지난 토요일 오후 늦게 무심천변을 걸었다. 운천동을 거쳐 까치내 합수머리까지 10Km 정도를 걸었다. 무심천변 풍경도 시골처럼 정겹다.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 보송보송한 갈대, 그사이로 살랑이는 코스모스, 잎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잡목들이 눈을 편안하게 한다. 그런데 더욱 정겨운 것은 풀섶에서 들리는 풀벌레울음소리이다. 울음을 우는 풀벌레로는 여치, 베짱이, 방울벌레, 귀뚜라미, 쌕쎄기 등이 있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곤충이 여름에는 여치이고 가을에는 귀뚜라미이다. 귀뚜라미는 한쪽 윗 날개 뒷면에 일렬로 가지런히 돋아 있는 미세돌기들을 반대쪽 날개 가장자리에 있는 마찰편으로 긁어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이를테면 첼로나 기타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는 셈이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夢遊하는 밤/ 더운 뒤뜰에 나와 / 의자에서 잠들었다./ 들리는 풀벌레 소리 /귀뜰 귀뜰.... 또르륵.../ 찌륵 찌이르륵 뚝.../ 돌쯔 돌쯔....’ 가끔 귀뚜라미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합창단처럼 화음을 이룬다. 이렇게 도심 속에서 귀뚜라미소리를 들으니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시골에서 자란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시절 시골에선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섬돌 밑이나 마루 밑에서 밤새도록 울어댔다. 낮에도 들려오는 귀뚜라미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풀섶으로 귀뚜라미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소리가 들려서 다가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를 멎어 귀뚜라미를 찾아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귀뚜라미를 잡으려고 풀섶 이곳저곳을 뒤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렵사리 귀뚜라미를 잡으면 집에서 기르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또한 구슬이나 딱지를 걸고 서로 싸움을 시켜 누구의 것이 힘이 더 센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귀뚜라미를 넣을 여치집을 밀짚으로 만들어 마루구석에 놓아두었었다. 귀뚜라미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어서였다. 저녁나절 몰래 방안에 숨어 있으면 울곤 하였다. 동생과 킥킥거리며 숨죽여 웃던 그 추억이 새롭다. 수컷은 낮에 짝을 찾기 위해 풀섶에서 연속해서 우는데 우리들은 이 소리를 듣고 귀뚜라미를 잡으러 다녔다. 귀뚜라미를 잡느라 풀숲을 헤치고 다니니 팔뚝에 풀에 스치우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그래도 피부연고 한번 바르지 않아도 탈나는 아이들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모기한방을 뜯겨도 생난리가 난다.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풀숲에 갈 여유가 없고 부모가 다친다고, 벌레 물린다고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납치되듯 가야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듣는 소리가 컴퓨터자판 두드리는 소리, 휴대폰 벨소리, 자동차 엔진소리, 컴퓨터게임에서 나오는 별의별 소리 등 인공적이거나 가상적인 소리로 귀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듯하다. 너무 인스턴트식 감정에 사로잡혀 이기적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음(音)은 소리의 여운이며 마음(心)은 소리의 근본이니 소리는 곧 마음을 대표하는 그릇이라고 했다. 자연의 소리는 일단 마음이 편안하다. 자연의 소리는 지친 뇌를 쉬게 해준다. 솔바람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를 접하면 알파뇌파가 나와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하나로 통일시키며, 무념무상의 경지로 이끌어 준다고 한다. 소리요법 연구가인 앨버트토머티스 박사는 5000Hz-8000Hz 사이의 소리들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심신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자연에서 발생한 소리들이 속하는 음역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상쾌함과 에너지를 전해주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인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시작이면서 끝이다. 치열한 도시에서 삭막하고 틀에 박힌 생활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피곤해진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허전하게 한다. 가족과 함께 자녀들에게 자주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듣고 감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줌이 어떨까. 산새소리, 풀벌레소리, 그리고 오색단풍, 거기다가 저 파아란 가을하늘의 새털구름 흘러가는 소리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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