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

▲ <사진/최지현>

 “동아시아 3국이 함께 개천(開天)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1억2000만 일본인이 한국이나 중국에 와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 나라 국민을 위해 기원하고 기도를 하는, 그런 마음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중·일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결과적으로 대등해질 것인지 고민하는, 그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오구라 기조(小倉紀藏·58·사진) 일본 교토대 종합인간학부 교수가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에 참가하기 위해 청주를 찾았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학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3일간 열린 이번 회의에 참석해 마지막 날 전체토론에 대한 총평을 하고 진행을 맡았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지켜보며 강한 인상을 받게 된 그는 그 엄청난 에너지의 메커니즘을 찾고자 1988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와 철학을 공부하게 된다.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1988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에 머물렀던 그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NHK에서 한국어 강좌 강사로 활동하고 ‘한·일 우정의 해 2005’ 실행위원, ‘한·일 교류축제’ 실행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등의 저서를 내기도 하는 등 한·일 간의 이해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 온 그는 최근 일본 내에서 확산되는 ‘혐한’ 분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일본 사람들은 자신을 잃었다.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있었지만 최근 그것이 완전히 없어졌다”며 “‘혐한’은 한국이 일본과 대등한 힘을 갖게 됐다는 질투심에서 발로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중문화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을 매력 있게 일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허구의 작품이 아니라 책이나 영화 등으로 진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년 전 교토포럼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다. 25년 간 세계 각국을 돌며 공공철학을 주창해 온 김 주간의 뜻에 공감한 그는 이후 교토포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발제와 토론을 해 왔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교토포럼을 통해 일본 지식인들은 ‘공공철학’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김 주간은 동아시아 3국이 공통된 공공철학의 개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하다”며 교토포럼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서 유일하게 일본인에게 한국의 사상적, 철학적 매력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태창 주간”이라며 “일본 사람들을 아주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한국 사람들의 말이 도달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데 천재적”이라고 말했다.

한·중·일 석학 33명이 참가한 가운데 3일 간 열린 이번 동양포럼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했던 교토포럼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렇게 성공적인 포럼은 처음”이라며 호평했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중·일이 함께 미래를 연다는 것은 추상적이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이다. 사실 철학하면서 양보하고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이번 포럼은 ‘이것은 지금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이것은 나중에 하는 말이다’ 하는 것을 배워 나가는 과정이었다”며 “특히 한국 젊은 사람들의 발언이 참 좋았고 매우 날카로워서 놀랐다. 이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 의식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전문가가 발제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이 결함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발제를 정중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는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분위기도 참 좋았습니다. 참석자들이 자신의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 내용을 소화하고 창조적인 삶을 해 나간다면 그것이 이번 포럼의 큰 성과일 것입니다.”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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