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진명

비행접시 14

 

정진명

 

한 시간을 대화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외계의 언어에 감염된 사람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행접시에 끌려가

광센서 칼로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형질이 변하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빛깔을 띤다.

그의 두개골 깊숙이 자리 잡은 비행접시를 깨지 않으면

말은 하루 종일 통하지 않는다.

올빼미가 대낮에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듯

멀쩡한 이목구비와 손발을 지녔으면서도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제 안의 빛에만 쪼여 멍해진 채,

언어 밖의 날벼락이 아니고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시집 ‘줄넘기와 비행접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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