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석준 기자)지난달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받게 됐다.

즉 김영란법 대상자들은 3·5·10 이라는 숫자를 의식하지 않고 방심했다가는 일생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가 만연돼 있으면 이러한 법률이 생길까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지만 김영란법으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

농·수·축산업계와 요식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침체가 가중됨은 물론, 사람과 사람 간의 불신이 커져 더 이상 정을 나눌 수 없는 각박한 세상이 되고만 것이다.

최근 뉴스에 소개됐듯이 김영란법 신고 1호는 대학생이 교수에게 건넨 캔커피였다.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강의로 목이 아플 교수를 생각하며 건넨 제자의 애틋한 마음이 김영란법의 ‘직무관련성’ 위반에 따라 오히려 해당 교수와 학생을 자칫 범죄자로 만들고 더 이상 사제지간을 유지할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경찰은 112전화를 이용한 익명 신고인 데다 교수와 학생 이름 등 구체적인 사안을 밝히지 않아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달아주거나 소풍 때 선생님 김밥을 챙겨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사회가 깨끗한 사회일지는 몰라도 사람냄새 나는 좋은 세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직무관련성에 대해선 사법기관이나 국민권익위도 명쾌한 대답을 못 하거나 말들이 다 달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 헷갈리는 건 예외조항과 고무줄 같은 유권해석이다. 김영란법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원활한 직무수행 목적이 있으면 ‘3·5·10 규칙’ 안에서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해놓고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서라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이 같은 판단 기준은 앞으로도 큰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보완이 절실하다. 불신과 의심, 감시와 고발이 판치고 개인의 일상사 하나하나를 국가기관의 눈치를 보고 행동해야 한다면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악법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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