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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리 선생님
안나리 선생님
  • 동양일보
  • 승인 2016.10.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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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연 <서원경 세종교회 담임목사>
 

선생이라는 무거운 이름으로 교단에서 버텨낸 세월이 22년간이다. 새파란 나이에 고3 담임을 했는데, 대입원서를 쓸 무렵에 일등을 하는 아이가 찾아와서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선생님. 아버지가 대학 포기하고 은행시험이나 치라고 하시네요.”

“내가 아버님 찾아 뵐 테니, 딴 생각 말고 공부해라.”

철로변의 판잣집으로 찾아가 점심을 거르며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은행 시험을 미루고 한 번만 대학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듬해 봄에 그 아이는 특대생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나도 함께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4년간의 사제 관계를 새로 맺으면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한국 문학을 공부하자. 네게는 자질이 있어. 그리고 교회도 같이 다니자. 넌 훌륭한 장로가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안나리 선생님……. 동그란 얼굴에 작은 키, 한 뼘도 안돼 보이는 가는 허리, 그리고 상치과목으로 맡으셨던 음악 시간에는 늘 ‘동무생각’을 한 번 부르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나는 그 때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의 흰 나리가 선생님처럼 가냘프고 외로운 표정을 가진 꽃이라고 멋대로 상상을 했다. 그래서 선생님 별명을 ‘안나리’라고 지어 혼자 불렀다. 흰 나리가 그렇게 여린 꽃이 아닌 것은, 아내의 성전 꽃꽂이를 수발들면서 나중에야 알았다.

내 어머니는 스물 둘 앳된 나이에 혼자 되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잦은 다툼 속에 자랐다. 중학 시절 어느 날 아침, 책가방을 들고 나서는데 두 분이 또 다투셨다.

“그만 하세요. 두 분 앞에서 제가 없어져 드릴게요.”

가방을 내던지고 집에서 뛰쳐나갔다.

강가의 외진 절벽이 바리봉이었다. 발밑에 흐르는 강물로 뛰어내리라 하고 바위에 엎드려 펑펑 우는데, 얼마나 됐는지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안나리 선생님이 서 계셨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셨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내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가셨다.

토요일 오후였다. 안나리 선생님이 복도에서 부르셨다.

“내일 아침, 우리 집에 올 수 있겠니? 열시까지.”

선생님 자취방 책상 위에는 건전지를 매단 라디오와 재깍거리는 하얀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감자 빈대떡 냄새가 너무 구수했다. 벽을 바라보며 멋쩍어 하는 내게 선생님은 성경책을 챙겨들고 일어나며 말씀하셨다.

“열 한 시가 다 됐네. 함께 교회 가지 않겠니?” 나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선생님은 도회지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전별식을 마치고 교무실로 나를 부르신 선생님은 꽃다발에서 들꽃 한 송이를 뽑아 내 주머니에 꽂아주며 말씀하셨다.

“난 이 세상에 존경하는 사람이 두 분이 있단다. 한 분은 내게 문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이고, 또 한 분은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야.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님이 될 수 있을 거야. 또 훌륭한 목사님도 될 수 있을 거고…….”

나는 그 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속으로 다짐했다. ‘네. 선생님. 두 가지 다 되겠습니다. 교수님도 되고 목사님도 되겠습니다.’ 라고.

그 후 힘들게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고 문과 교수가 되었다. 정교수가 되던 해, 교직을 내놓고 신학교에 편입을 했고, 목사로 23년간 강단을 지켰다.

그렇게 부담스럽고 또 보람된 두 삶을 살았다. 그것은 안나리 선생님이 내 가슴에 심어주신 꿈의 열매였다.

하늘나라에 가서나 만나 뵐 수 있을까. 만나서 옛날처럼 안기면 그분은 아마 그 때처럼 말없이 울어주실 거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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