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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속리산 복천암 전 주지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 비밀<신상구>
기고-속리산 복천암 전 주지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 비밀<신상구>
  • 동양일보
  • 승인 2016.10.0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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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 신상구(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한글’이라는 용어는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1910년대 초부터 쓰기 시작했다. 한글은 세계 2400여 종류의 글 중, 글자를 만들어낸 사람과 퍼트린 날짜, 또한 글자를 창조한 원리까지 알고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글의 창제 과정과 창제 원리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해 안타까운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천(天)?지(地)?인(人)과 혀와 목구명의 모양을 참작하여 창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글은 신미대사가 세종대왕의 밀명을 받고 3개의 절을 옮겨 다니며 범어를 참고해 창제했다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해 국어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진옹(震翁) 월성(月性·속명 金守省) 스님이 1975년 속리산 복천암 주지로 부임한 이후 무려 30여 년 동안 신미 대사에 대한 사료를 모아 조사 연구한 결과, 신미 대사가 세종대왕의 왕사로 밀명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어렵게 밝혀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염산김씨(永山金氏)인 신미(信眉) 대사(1403-1480)는 충북 영동 출생의 집현전 학사로 조선에서 유일하게 범어에 능통하여 세종대왕의 밀명을 받고 복천암), 홍천사, 대자암 등에서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어학계에서는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한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세종실록』 어디에도 실제로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에 주도적으로 기여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 서문을 쓴 정인지조차 “집현전 학사들 중에 어느 누구도 훈민정음의 오묘한 원리를 알지 못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조선 세종태학원 총재인 강상원 박사는 신미대사의 『법어록』과 『동국정운』의 표기법이 정확히 일치하고, 『능엄경의 언해』에서도 『동국정운』의 표기법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보다 8년 앞선 정통 3년(1435)에 한글과 한자로 된 『원각선종석보』라는 불교 고서가 신미대사에 의해 출간됐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복천선원 선원장 월성 스님이 친동생인 집현전 학사 김수온이 쓴 『복천보강』, 『효령대군 문집』, 『조선실록』, 『영안김씨 족보』등 각종 자료를 근거로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의 산파 역할을 했음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복천암 사적비의 기록을 보면, "세종대왕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 유학자인 성현의 저서인 『용재총화』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언문은 범어 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신미대사가 범어를 모방해 실제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신임이 두터웠던 신미대사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신미대사 한글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세종대왕의 왕사인 신미대사가 당대 최고의 대학자로 유일하게 범어에 능통했고, 한글이 범어(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보다 8년 앞선 정통 3년(1435)에 한글과 한자로 된 『원각선종석보』라는 불교 고서가 신미대사에 의해 출간됐다는 주장이다. 또한 당시는 억불승유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대왕에서 연산군 조까지 한글로 발간된 문헌의 85%가 모두 불교관련 서적들이고, 유교관련 서적은 약 5%도 되지 않는다. 『월인석보』, 『용비어천가』등이 그것이며, 특히 월인석보의 첫머리에 세종대왕의 어지가 정확히 108자이며, 『월인석보』 제1권의 페이지 수가 정확히 108쪽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라, 한글창제를 주도한 사람은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복천암의 신미대사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훈민정음이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에 종성을 바로 28번과 33번을 친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한편 세종대왕 사망 후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통시글(쉬운 글)"이라고 멸시하였다. 자신들이 만들었으면, 스스로 한글을 멸시했겠는가?
국어학계에서는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설이 야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말고 복천암 월성 주지스님의 증언과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참고해 한글 창제 원리와 과정을 정확하게 다시 정립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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