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중예술문화교류 포럼
‘중국 조선족 문화예술의 어제-오늘-내일’을 말하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충북예총은 한·중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조선족 문화예술의 어제-오늘-내일’을 주제로 한 포럼을 지난 7일 충북예총회관 따비홀에서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중국 연변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있는 최삼룡 문학평론가와 한광운 연변박물관 부관장, 황선자 연변대 부교수, 한룡길 연변대 교수가 참석해 발제한 후 이에 대해 한국 대표로 안수길 소설가와 윤순병 청주시립국악단 차석단원, 유영선 동화작가, 박정미 청주예총 부회장이 토론했다.

중국 조선족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논의한 이날 포럼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중국조선족의 운명과 중국조선족의 문학예술’

 

▲ 최삼룡

▷최삼룡 문학평론가 “중국의 사서(辭書) ‘세계민족대사전’을 인용해 중국 조선족의 역사와 그 속에서 꽃피운 문학과 예술에 대해 소개하겠다. 천입민족인 중국조선족은 그 역사가 한세기 반 밖에 되지 않은 중국의 소수 민족이지만 전통적인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천입초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의 시기는 망명시기, 이민시기, 정착시기로 나눠 고찰할 수 있으며 망명시기 한국인들은 배달겨레의 고유한 조선어와 조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3중전회부터 20세기 말 조선족 문학예술은 새장을 펼치게 됐다. 경제발전으로 예술가들의 창작열정이 높아져 문화예술의 다양화가 이뤄졌다. 21세기에 진입하며 중국 조선족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자 공동체의 삶의 변화와 더불어 문학예술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20년간 창작된 문학작품들을 살펴보면 △민족의 생존상태와 문화상황을 재현하면서 창조주체의 심각한 우환의식을 나타내는 작품 △민족의 역사를 회고하며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것을 취지로 하는 작품창작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작품을 통해 백의민족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의 생활과 실존을 표현해 민족의 미래를 전망 하는 작품 등 세 가지의 주제로 나눌 수 있다.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장편소설 창작과 정기문학작품의 활발한 창작을 예로 들 수 있듯 조선족 예술인들은 민족정신과 민족정기를 발산해내는 작품창작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쌓았다.”

 

▷안수길 소설가 “최삼룡 평론가의 발표를 통해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에서 고심하며 우리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나 깨닫게 됐다. 조선족 문단의 입지전적 인물인 김학철 소설가가 1인 지배체제인 북한을 보는 시각은 어땠었는지 알고 싶다.”

 

▷최 평론가 “김학철 소설가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비판적이었다. 그의 비판적 태도는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모택동에 대한 비판보다 더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작품을 통해 그의 1인 지배에 맞섰다.”

 

▷안 소설가 “조선족 문화예술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외수시장을 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 방법으로 한글 표기를 남한과 동일하게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조선족의 한글 표기를 개정하기 위해선 중국 중앙 정부의 재가가 필요한지 궁금하다.”

 

▷최 평론가 “중국의 조선족언어정책은 연변에 있는 조선족어문규범화위원회를 따르는데 중앙정부는 조선족 언어에 관한 권한을 그 기구에 위탁했으므로 그 기구의 결정을 따르게 돼 있다.”

 

●‘조선족 농악무의 어제와 오늘’

 

▲ 한광운

▷한광운 연변박물관 부관장 “조선족 농악무의 역사적 변천, 표현 형태, 전승과 보호, 성과와 전망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 조선족의 이주·정착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해온 조선족의 농악무는 현재 조선족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로 부상했다. 조선족농악무는 기본적으로 색상이나 모양이 매우 화려한 전통 복장을 활용하며 현대적인 예술형식이 도입되면서 농악장단과 음악, 춤이 유기적으로 결부된 민속무용으로 변모했다. 농악무를 예술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킨 대표적 인물로 조득현과 하태일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2세대, 3세대, 4세대의 인물들이 농악무를 보호해 마침내 민족의 상징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민족의 응집력을 증강하는데 큰 역할을 할 농악무를 절실한 사명감으로 보호해 민족의 정신적 문화터전을 고수해야 한다.”

 

▷윤순병 청주시립국악단 차석단원 “한국에서는 ‘농악’과 ‘무용’의 혼합을 흔히 볼 수는 없다”며 “농악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한 연구원 “사실 농악과 농악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농악무에서는 전통 농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는 당시 정치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무엇인가 기원하거나, 풍요로움을 반영하는 내용의 작품이 많다.”

 

▷윤 차석단원 “자료에서 무대 예술화된 농악무를 살펴보면 악기편성이 되지 않은 부분도 보이는데 악기 편성이 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 연구원은 “악기가 편성되지 않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당시 상황에 따라 무용만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전통무용-중국에서의 전승맥락’

▲ 황선자

▷황선자 연변대 부교수 “중국에서의 전통무용 전승과정과 부흥, 계승과 발전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조선족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슬기롭고 용감하게 민족 전통을 지켜나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 중국 조선족에 계승돼온 전통무용은 대부분 한반도로부터 이입된 것이며 ‘농악무’, ‘강강술레’, ‘쾌지나 칭칭나네’, ‘가면무’, ‘걸립무’, ‘무당무’ 등이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기관, 극장, 공회당이 세워지면서 조선족의 민간, 민속 무용이 무대로 올랐고 한성준, 조택원, 최승희 등과 같은 인물이 활동하며 조선족의 무용은 무대화의 예술적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 1950년대를 계기로 조선족지엽예술단체들이 설립되고, 군중문화단체들의 공연활동이 전개되며 대중문화를 다채롭게 했고 점차 무용은 단일화나 토속화의 수준을 넘어 다원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 무용의 극장화를 촉진했다. 특히 1990년대 발표된 대형무용시 ‘장백의 정’은 조선족의 역사를 녹여내 큰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조선족 무용의 진화는 육체에 잠재한 표현력을 새롭게 발굴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한편 질적인 향상을 꾀하는 신사실주의 무용문화를 창조했다. 무용예술의 미래를 위해서는 하나의 학문계통을 이룰 수 있도록 부단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그 방법으로 △문화적으로는 조선족문화깊이에 내재된 심층적인 정신을 발굴해야 하고 △미학적으로는 고증적 미학론 체계를 세워야 하며 △학문적으로는 연구발전의 폭을 넓혀 무용학문을 확대하고 조선족 특생의 동작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유영선 동화 작가 “황 교수의 발표를 통해 조선족 무용은 비교적 전통이 잘 유지 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족 무용은 민족적 전통을 바탕으로 고유의 정서를 담아낸 탁월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창적일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조선족 무용 전승과정을 잘 설명해 줬다”면서 “전환기의 특징을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 비교했다면 무용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인물로 보는 중국조선족 예술무용의 형성과 발전’

 

▲ 한룡길

▷한룡길 연변대 교수 “중국 조선족 무용은 반도로부터 전래된 전통무용에 최승희의 신무용, 새롭게 창조된 민속무용을 토대로 형성돼 중국이라는 새로운 문화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체의 특색을 띠게 됐다. 무용예술가 조득현, 무용교육가 박용원 등 예술무용의 발전을 이끈 여러 인물들의 창조적 성과와 조선족예술무용의 형성, 변화 및 발전과정을 소개하겠다. 먼저 조득현은 예술가로서의 민족양심과 민족예술에 대한 애착심으로 전통농악놀이를 토대로 한 농악무를 창작한 인물이다. 농악무에 나타난 조득현의 창작방법은 예술 무용의 형성과 향후 발전에 있어 적극적인 방법론으로 제기되고 있다. 조선족 무용 교육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박용원은 1977년 무용교재 ‘조선민족무용기본동작’을 완성했고 16개의 표현동작 묶음인 ‘표연훈련계통’을 새롭게 개발한 인물이다. 박용원은 최승희의 신무용사상과 교육체계를 조선족무용에 정착시킨 대표인물로 줄곧 무용예술 인재양성사업을 이끌어 오늘날 조선족무용예술의 전승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조선족 무용은 조득현과 박용원 이외에도 많은 무용인들의 예술창조활동에 의해 발전해왔다. 세대들의 재창작으로부터 2세대들의 창조적인 예술수단으로 발전했고 이어 3세대에 의해 인문학적인 예술무용으로 발전했다.”

 

▷박정미 청주예총 부회장 “조득현 선생의 농악무가 조선으로부터 전래됐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창작된 것인지 궁금하다.”

 

▷한 교수 “농악무는 전통적인 농악놀이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무용요소를 극대화 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농악무는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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