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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한·중·일 전문가들의 문제제기와 관련 토론
동양포럼-한·중·일 전문가들의 문제제기와 관련 토론
  • 동양일보
  • 승인 2016.10.1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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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일보가 창사 25주년을 맞아 지난 1~3일 청주시 우암동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연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에 참석한 한·중·일 학자 33명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다.

(동양일보 조아라·김재옥·신홍경·박장미 기자)

2016년 10월 1일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오늘 여러분을 조촐한 자리에 모셔놓고 개천과 개신의 철학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이 오신 청주라는 도시는 과거의 오랜 세월 동안 교육문화도시라는 평판이 있었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라는 명칭으로 일본의 니가타, 중국의 칭다오와 함께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는 몇몇 지역인사들은 청주를 생명문화도시로 불러왔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을 모시면서 청주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여기 계신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것은 ‘함께 철학하는 도시’, ‘철학이 대화로 살아있는 도시’, ‘새로운 철학이 태동하는 도시’라는 칭호다. 함께 철학하는 도시에서 하는 철학은 대학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순자와 같은 이름을 거론하면서 학설을 설명하고 전수하는 철학이 아니다. 청주에서 함께 하는 철학은 인터로컬리티(interlocality)의 철학이다. 즉 인터로컬철학(interlocalphilosophy)다. 지역 간 활명연대(inter-localconvirialsolidarity)를 키우는 철학이다. 인터로컬의 로컬은 지방이나 지역이라는 의미에 더해서 ‘삶의 터전(현장, 현지)’ 생명과 생활과 생업이 어우러지는 고장이다. 서로 다른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터전에서 생성되는 철학과 사상과 예술과 종교와 문학과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들 사이에서 서로를 함께 아우르는 상극·상화·상생의 동력을 기반으로, 지방을 더불어 풍요롭게 가꾸고 키우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진작시키는 공동실천이다. 그동안 중앙집권적 공(公) 철학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 여기서 철학의 지방분권화, 지방자치화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철학의 생활 현장화다. 그것은 특정 개인의 사(私)철학과도 다르다. 서로 다른 생명, 생활, 생업의 현장에서 이루어낸 철학적 상상력, 예술적 상상력, 종교적 상상력, 문학적 상상력, 역사적 상상력을 잇고 맺고 살리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한국 내에서는 영남(퇴계이학)과 호남(수운기학)과 충청(실심실학)의 세 지방 생활현장에서 생성된 철학적 상상력의 성과를 잇고 맺고 살리는 철학대화를 마련했고 그것을 일본의 교토와 센다이와 미에를 잇고 맺고 살리는 일과 동시 진행을 기도하면서 다시 중국에서도 같은 일을 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거기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차후의 과제로 남겨 놓았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새로운 철학에는 새로운 발상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어휘가 필요하다. 종래의 어휘로는 미처 새로운 문제 관심을 담아낼 수 없어서이다. 청주에서 함께 하는 인터로컬리티의 철학은 세 개의 ‘인터(상호매개·생성·발전)’로 시작되는 새 어휘로 특징 지워진다. 하나는 ‘인터사이코소매티시티(interpsychosomaticity)’다. 몸과 마음과 얼을 함께 엮는 철학(+예술+종교+문학+역사)이다. 둘은 ‘인터에티코하비츄아리티(interethicohabituality)’다. 삶의 터전마다 에토스(생명의 율(律))와 하비투스(생명의 맥(脈))가 있는데 그것을 잇고 맺고 살리는 철학(+예술+종교+문학+역사)이다. 셋은 ‘인터비오싸나티시티(interbiothanaticity)’다. 삶의 터전마다 고유의 비오스(삶의 결)와 싸나토스(죽음의 뜻)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들을 함께 어우르는 철학(+예술+종교+문학+역사)이다. 이런 철학을 서울이 아닌 청주에서 함께 해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어휘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이 철학의 사명이다.”

▲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인터로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천의 새 뜻 풀이’

 

● 문제 제기 1 : 김용환 충북대 교수

 

개천절을 맞아 개천을 생각해본다. 개천은 문자 그대로 하늘을 새롭게 여는 것이다. 천지인 상관연동을 중시하는 한사상의 관점에서 개천은 새로운 삶의 현장을 여는 것이다. 개체생명에 갇혀온 삶을 우주생명에 눈 뜨게 하는 것이다. 개천은 낡은 에토스와 하비투스를 개신함으로서 새로운 에토스와 하비투스로서의 동아시아 시민성의 함양을 통해서 국민국가의 테두리에 갇혀왔던 것을 더 넓은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사관의 개진을 의미한다. 인간혁명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자는 것이다. 청주에서 개천의 뜻을 새밝히는 데서 중요한 역사적 사례를 든다면 고려시대의 백운경한(白雲景閑·1299~1374)의 직지무심(直指無心)이 될 것이다. 백운경한은 원(元)에 가서 석옥청공(石屋淸珙·1272~1341)의 법을 받아 무심(無心)을 깨닫는다. 또한 백운경한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펴내 직지무심을 설파했다. ‘직지’는 중생다심을 새롭게 열어 일심으로 통하게 함으로서 무심(無心)의 구경(究竟)을 이룩하자는 몸과 마음과 얼의 전면 변혁을 통해서 시민성의 공통 함양을 지향하는 기본 매체다.

동아시아 시민성은 동아시아 시민공동체의 기질과 기풍을 키우는데서 이루어진다. 한·중·일을 핵으로 하는 동아시아 시민성 함양으로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개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대화>

▷변영호 쯔루문과대학 교수 “김용환 교수의 발제를 잘 들었다. 국민이 특정 국가의 국민이라는 틀을 벗어나 동아시아 시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정립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개국과 개천은 어떻게 다른가?”

▷김용환 충북대 교수 “개국이라고 하면 단군왕검이 지금으로부터 4349년 전에 백두산 신시에 환단국(桓檀國)을 처음으로 세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개천은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동아시아인의 삶의 현장이다. 그것을 국민국가에 내폐시키는데서 탈출하는데서 동아시아의 미래를 찾자는 것이다.”

▷김태정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김용환 교수님의 개천의 의미 해석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의 반고신화를 보면 원래는 천지가 하나로 붙어 있었는데 반고라는 거인이 천지를 분리시켜 그 사이의 공간에 인간의 삼의 터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천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연다는 것이 설명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천절을 ‘건국’이라는 개념으로만 보아왔으나 새로운 뜻 밝힘을 할 때가 왔다.”

▷가타오카 류 도호쿠대학 준교수 “개천에 대한 말씀을 듣고 개천이라는 말이 일본말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말에는 회천(回天)이 있다. 회천은 생명력을 되돌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개천절을 제정해 기념하는 이유는 단지 건국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시 되돌리는 것을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닐까?”

▷장귀룡 영남대 대학원생(석사과정) “여기서 개천을 다시 생각해볼 때 두 가지 개천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힘이 작용해서 이루어가는 개천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개천이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가타오카 교수께서 개천은 국가건설이라기 보다는 생명력의 되돌림이라고 말씀하신데 공감한다. 단군 신화에는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첫째는 탐구 인생. 즉 사람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뜻을 살핀다는 것이다. 둘째는 원화위인, 즉 천상의 신이나 지상의 즘생이 똑같이 사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것이다. 셋째는 주원위인, 즉 자녀를 점지해 달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질적인 것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생성, 개국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생명세계의 개시라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16년의 청주에서 한·중·일이 함께 하늘을 연다는 것은 동아시아 시민이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삶의 터전을 함께 마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속에 내재하는 ‘천(天)’=우주 생명을 자각함으로서 우주 생명이 펼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의 길을 열자는 것이다.”

▲ 포럼 첫 날인 10월 1일 오후 열린 종합토론의 진행을 맡은 김태정(사진 가운데)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총평을 하고 있다.
 

‘개천, 개벽, 다시개벽을 묶어서 생각한다’

 

● 문제 제기 2 : 박맹수 원광대 교수

 

무명의 민중사상가들이 제시한 새 세계관들은 아주 소박하고 투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소박하고 투박한 형태의 단초적인 표현이고, 몇 마디 안 되는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정제된 기존사상이 갖고 있는 반생명성, 이데올로기, 굳어진 껍질의 역사적 책임소재를 전면적이며 근본적으로 비판해 들어가는 날카로운 안목이 숨어 있다. 또한 역사의 담지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지배층에 의해 역사의 객체로만 취급당해 온 민중이,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얼을 다 쏟아서 민중 나름의 사상적인 형태로 스스로 보여 줄 때 그것은 지극히 소박할 수밖에 없었고, 미신적인 형태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채 정리되지 않은 부르짖음일 수밖에 없었지만 거기에는 총체적 변혁, 총괄적 변화를 요구하는 데 생사를 건 개벽(開闢)지향의 폭발적인 에너지의 분출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 서서 19세기 한 민족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양 열강이 군함과 대포를 앞세워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를 향해 막 쳐들어오던 시기, 즉 아편전쟁과 태평천국혁명 당시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북경으로 쳐들어가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남경 등을 함락시켜 청나라에게 불평등조약을 강요하던 바로 그 시기, 또한 인도의 민중이 서양 열강의 침탈에 맞서 세포이 반란을 일으켜 저항하던 바로 그 무렵, 다시 말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아랍 등지에서 서양 열강이 대 살육을 자행하던 바로 그 시기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사상이 한반도에서 우뚝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이 동학(東學)을 필두로 한 근대한국의 개벽(開闢)사상이라는 거대한 사맥(思脈)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운의 동학과, 그 동학에서 비롯된 근대한국의 개벽사상을 수준 낮은 잡학(雜學)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수운의 동학사상의 핵심은 ‘활인활명(活人活命)’의 사상, 즉 사람을 포함한 전 우주의 모든 생명을 함께 살리자는 활명연대사상에 다름이 없다는 데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수운의 동학사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정신과 사회적 정신, 개인과 사회집단의 생존, 모든 우주자연 삼라만상을 하나의 통일적이며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는 관점이다. 문명과 우주와 사회와 그 사회적 생존을 철저히 생물학적인 틀 안에서 생동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기(氣·수운 선생은 지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의 운동으로 보고, 움직이는 총체적 연관 속에서 그 질곡과 병폐를 보며, 그 치유의 길을 창조적인 생명 순환의 회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개천의 뜻을 개벽으로 풀고 그것은 끊임없는 다시개벽으로 이어지며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는 점을 오늘의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관련대화>

▷미야자키 후미히코 지바대학 비상근강사 “근대 서양을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근대와 서양의 구조를 다시 되돌아봄으로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박 교수님의 말씀에 감명 받았다. 일본인은 자신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본이라는 국가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임홍령 교토대학 대학원생(수사과정) “박맹수 교수님께서는 동학사상을 토대로 개벽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젊은 세대가 듣

 

기에는 추상적이기도 하며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나라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사상이 한국 철학을 모르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리우 지엔 훼이 일본 국제일본학연구센터 교수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단군 신화에는 ‘생명의 탄생’과 ‘국가 만들기’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반고신화는 인간 생명과 인간의 공동체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국가와 공동체가 강조돼 생명 탄생의 의미가 소홀히 되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은 생명 에너지에 관한 부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5000년 이상 역사를 공유하는 가운데 민족의 장벽을 없애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가능하지만 개인과 국가가 무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장귀룡씨가 제기한 문제는 개천의 핵심에 관계된다. 김용환 교수, 박맹수 교수, 그리고 리우 교수 모두 인간이 주도하는 개천을 강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용환 교수는 개천이라는 말을 개국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동아시아 시민성의 함양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자고 제안했고 박맹수 교수는 하늘이 자기 안에 있음을 깨달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동학이 의미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장귀룡씨가 거론한 문제 관심을 축으로 해서 살펴보면 두 발제자의 견해는 하늘과 땅의 힘을 아우르는 가운데서 인간, 특히 민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인간, 국가, 세계를 연다는 뜻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홍령씨는 두 발제자의 발제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잘못하면 한국적 자의식에 폐쇄될 위험이 있으니 그것을 열어 같은 동아시아지만 우리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일본과 중국의 견해를 들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박맹수 교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 “동학의 경우 신분 계층적으로 가장 밑에 놓인 농민들이 스스로 자각과 수행을 통해서 자기 삶을 새롭게 개척해가는 주인공이 되는 길을 열었다. 내가 내 속에서 작동하는 우주생명을 자각하고 그런 자각을 공유한 백성들이 함께 세상을 열어간다는 것이 개국이나 개화와 다른 개벽이 아닐까. 동학에서는 내 안에 하늘이 있다는 믿음이 기본이다. 동학에는 이중과제가 있다. 한국이 걸어온 근대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근대가 아니라 강제되고 강압돼 왜곡된 것이었다. 말살된 자주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려고 했던 가장 처절한 것이 동학인데 젊은 세대가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당시의 한국인이 지녔던 생존조건에서 생겨난 가장 한국적인 사상이나 철학이야말로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재세이화의 이화(理化)로 개천을 푼다’

 

● 문제 제기 3 : 최재목 영남대 교수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나오는 단군신화에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과 ‘재세이화(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한다)’가 나온다.

재세이화의 ‘이화’는 ‘다스리고 교화함’의 뜻이니, 성리학적 맥락에서 이야기 한다면 ‘치인’-‘경국’에 해당한다. 사람을 다스리고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은 ‘이(理)’를 근본으로 한다. 퇴계는 이(理)를 내면화시켜서 논의한다. 다르게 말하면 퇴계의 이학은 단군신화의 재세이화가 인간론적, 실천적 차원에서 펼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퇴계가 본 ‘천(天)’은 ‘이(理)’였다(천즉리). ‘이동(理動)’ ‘이발(理發)’ ‘이자도(理自到)’에 이르려는 인간의 숙연함, 엄숙함, 경건함의 축약된 표현이 ‘경(敬)’이다. 경은 올바른 사람의 길-인지도이다.

경은 전인격적-신체적 대응(몸짓)이다. 그래서 경은 ‘인간의 저변에 깔린 천(天)에까지 가서 닿는 수직적 깊이’를 갖는다. 나침반의 바늘이 끊임없이 몸을 떨면서 방향을 잡으려 하듯, ‘고요한(靜) 마음’은 평소의 생활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일상적 삶이 가상현실 게임이고 실전이다. 이런 마음의 고요함과 치열함은 밖을 향한 ‘관찰’(=테오리아)과 달리 끊임없이 수직적 ‘깊이’를 가진다. 그래서 평소의 ‘미발의 고요함(靜)’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실제 생활 속(已發)에서 ‘행동’으로 연결해낼 수 있다.

퇴계의 신체화-내면화-행동화된 ‘이’는 ‘경’이란 한 글자에 축약되어 있다. 경은 천리(天理)가 나에게서 현전-현성, 발현-현시하는 것이다.

천리는 내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안에 있는 것은 밖을 향하고 밖에 있는 것은 안으로 향한다. 이 둘이 만나는 곳이 바로 내 ‘몸’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내 몸의 표현이다. 내 몸은 세계의 축소이고, 세계는 내 몸의 확대이다.

우주와 진리에 대한 겸손-경건함은 인간적 차원에서는 신비주의적 모습이지만 우주적 차원에서는 자연-당연-능연-필연의 경지이다. 이 경지가 ‘천즉리’의 자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천이란 내 안과 밖에 실재하는 천리를 현전-현성, 발현-현시함으로서 인간 내면의 변혁과 외부 세계의 개혁을 동시에 성취시키고자 하는 것이 퇴계 이학의 재세이화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대화>

▷선지수 도호쿠대학 대학원생(박사후기과정) “최재목 교수님에게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이퇴계의 경우 경=자기성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경은 성과 다른 것인가? 타자의 생명존중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퇴계는 무엇이라고 말했나?”

▷최재목 영남대 교수 “일본의 한 양명학자는 주자학의 경을 공부하던 중에 타자에 너무 신경 쓰는 부분이 힘들다고 경을 버리게 된다. 왕명명도 “경은 사족”이라며 억지로 남을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가 성실하면 우주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성(誠)=성실이란 자기성실이다. 여기에 타자에 대한 배려는 빠져 있다. 퇴계의 저작을 보면 ‘성’이 거의 안 보인다. ‘성(誠)’은 빼버리고 공경할 ‘경(敬)’자로 충실하게 편집이 되어 있다. 경은 타자지향이다. 남이 어려우면 무조건 구해주라는 것이다. 남에 대한 배려와 겸손과 물러섬과 낮춤과 감춤이다. 이것이 성과 경의 차이다. 성은 양명적이고 경은 주자적이다.”

▷선지수 도호쿠대학 대학원생 “퇴계는 경과 예(禮)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나?”

▷이동건 영남퇴계학회 이사장 “나는 오늘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게 바로 개천의 의미다. 조금 전에 많은 사람들이 개천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셨는데 하나를 덧붙이고 같이 논의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가진 모든 권리를 줬다는 천부설이 이 개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부설을 인간이 스스로 깨닫고 내가 하늘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각하는 것 자체가 개천이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든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데 어떤 방식으로 따르는가라는 구체적인 것이 예라고 생각한다. 또한 예를 실천하는 것이 경이라고 생각한다.”

▷김세진 군사학연구가(건명원 학생) “이 자리에 와 있을 수 있어 영광이다. 특히 박맹수 교수님의 문제 제기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인간과 세계의 동시개벽에 관한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까지는 개벽이란 주로 신이나 위대한 인물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백성이 개벽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 공감한다.”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

● 문제 제기 4 : 리우 지엔 훼이 국제일본학연구센터 교수

 

한국·중국·일본의 동아시아 삼국은 옛날부터 2000년에 걸쳐 한문이라는 기술(記述) 언어와 유교·불교·도교의 세 종교, 그리고 그것과 어울리는 문화를 공유해 왔다. 또 이른바 근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다툼을 거듭하면서도 일관되게 긴밀하게 연동하고 함께 ‘서양 수용’의 길을 걸어 왔다. 특히 후자는 옛날의 문화적 연대와는 달리, 실로 근대 서양이라는 거대한 이문화적 ‘타자’를 수용하는 새로운 문화권 내지는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가령 일본의 에도막부 말기의 개국에 즈음해 한발 앞서 개항한 상하이에서 간행된 다양한 ‘한역서서(漢譯西書)’가 유신(維新)의 지사(志士)들에게 많은 서양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많은 공헌을 하고, 또 그러한 한문정보를 참고해 메이지(明治)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여러 개념들에 대응하는 수많은 새로운 한자숙어(漢字熟語) 개념을 창출해내고, 영어 등으로 기술된 서양 학문체계를 수용하는 기초를 닦았던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 ‘서양수용’을 가능케 한 일본식 새로운 한자어 및 그것을 사용한 한문투 문체가 ‘유신’을 성사시킨 일본에 대한 관심 속에서, 그것이 표현하는 내용과 더불어 일종의 신문체(新文體)·신사상(新思想)으로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좀처럼 ‘고전’으로부터 탈피할 수 없었던 근대 중국어의 탄생을 재촉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일부의 ‘중국표상’이 중국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신된 이와 같은 ‘신문화’의 물결이 이후의 5.4운동 등에 대한 일본의 영향은 물론이고, 대략 중일전쟁에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사이의 문화에 의한 유대의 힘은, 예를 들면 양국이 교전하는 가운데서도 루쉰(魯迅)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인들끼리의 교류가 전혀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부터도 증명된다. 동아시아에는 2000년 이상에 걸쳐 ‘인(仁)=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이념도 존재했고,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로 과거에 공유해온 이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걸어온 역사의 과정을 서로 재인식하고, 그 경험과 교훈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화에 의한 유대의 재구축이야말로 틀림없이 장래에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마찰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대화>

▷박맹수 원광대 교수 “문화를 키워드로 한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공감하면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누가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공동체는 어떤 주체가 중심이 되어야 할까. 둘째로 앞으로 어떻게 전개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는 역사적으로 공동체적인 경험들을 나눈 가운데서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사례들이 있었다.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과거에 갖고 있는 한계와 갈등을 극복하면서 공유가 가능한 철학이 뭘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이번 포럼을 개최하기 전에 동아시아 교육공동체와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주제로 하는 콜로키엄을 가졌다. 문제 관심의 동시성이 느껴진다.”

 

‘망각의 흔적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생명’

 

● 문제제기 5 :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세월호’를 떠올리면, 애도의 종결을 연장시켜 보려는 그 어떤 언어도 시(詩)가 될 수 없고 소설은 더더욱 역겨워 진다. 아이를 잃은 어미나 애비의 짐승 같은 아픔을 대신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당하지 않은 자들이 보내는 애도마저도 값싼 연민에 불과하지 않을까? 10월 1일, 오늘이 딱 900일째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이 차디찬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팽목항. 죽은 자의 가족들을 포함한 친척, 친구, 동료들은 물론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은 172명의 가슴에도 너무나 큰 고통과 상처가 새겨져 있다. 그 거대한 충격과 슬픔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팽목항에서 사라진 것은 세월호와 거기에 승선했던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지향해 왔던 모든 가치와 행태,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 자본과 기업의 민낯이 까발려지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해 사라져 가 버렸다. 세월호와 함께 많은 것이 침몰했다. 첫째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 시스템이 통째로 침몰했다. 사고발생 직후, 보건복지부나 안전행정부 그리고 관련 기관(국정원, 해경, 해군) 등 정부 인사들이 팽목항으로 모여들었고, 언론도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바쁘기만 했을 뿐, 구조는 없었다. 생존자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에 성공했을 뿐이라고.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고, 골든타임은 지나고 말았다. 시민들은 정부의 책임에 심각한 회의를 시작했고,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 빠졌다. 둘째, 그날 TV를 본 사람들은 안다. 정부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승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정보에 무지했다. 아니, 아예 탑승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언론은 팩트에 입각한 어떠한 공정성이나 객관성도 없이 제 마음대로 보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존엄성이 침몰했다는 사실이다. 이익추구에만 매몰된 ‘청해진해운’은 제멋대로 배의 구조를 변경했고,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선원들을 고용했다. 심지어 사고 당일 승선했던 선장마저도 대타로 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국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무능한 국가의 책무 방기, 감독기관의 안전불감증, 오로지 고속성장의 이윤추구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기업의 야만적 물욕이 결탁한 대한민국호는 침몰했다. 자유와 정의는 차치하고 기본과 상식만이라도 존중받는 나라는 한갓 꿈일 뿐이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실패로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 원인 파악이 끝났으면 결과에 대한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책임모면에만 급급하다.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절망적인 확인을 넘어, 그 국가가 부추겨온 물신과 증오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고 과정보다 사후 수습과정은 더욱 지루하고 역겨웠다. 국가에게 부여된 책무이행을 위해서라도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로하고 보호했어야 한다. 유가족이 “그만하라” 하더라도 정부가 끝까지 나서서 책임졌어야 할 일이다. 특조위의 최종목표가 보상금이 아니었음은 정부가 더 잘 알 터였다. 적어도 보상금을 둘러싼 이야기가 유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철저하게 차단했어야 했다. 망각의 흔적에도 희망의 씨앗은 자란다. 지금, 서서히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감지한다. 아무리 ‘짐승’과 ‘괴물’들이 준동하는 세상이라도 희망은 있다.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가능성이다. 루쉰은 헝가리 시인 페퇴피를 인용해 “절망은 희망처럼 허망한 것”이라 했다. 유가족과 일반인을 철저히 분할한 저열한 정치논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독한 슬픔을 딛고 일어선다. 망각을 거부한 시민들의 기억과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라운드 제로’에 새로운 생명이 돋는다. “그래! 그 때 슬픈 세월호가 있었지”라는 관성적 감성만 남아 아득한 망각의 심연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던 세월호.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명징하게 우리들의 기억 너머에서 살아 돌아와 새로운 희망으로 현현한다. 이제 달리던 걸음을 멈춰 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허리 펴고 숨 돌리며 더 먼 미래를 바라보자. 바야흐로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성장’을 위한 속도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가치와 질(質)을 숭상하는 ‘성숙’으로 진화해 나가야하지 않겠는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대화>

▷이장욱 미술작가(건명원 학생) “젊은 생명들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바다 속 깊숙이 침잠하면서 온 국민이 안타깝게 지켜보는 가운데서 국가란 무엇이며 정부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전문가들의 지식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처절한 심정이었다.”

▷오오하시 켄지 프리랜서 언론인 “세월호 사건에 관한 말씀을 듣고 느낀 바가 많다. 많은 점에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몇 해 전에 동일본에서 일어났던 대참사, 특히 원전사고가 발생했던 후쿠시마는 나 자신이 중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친척들은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다. 지금 그곳은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고 젊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틀림없는 인재(人災)요 제도 결함과 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생긴 관폐인데 국가와 정부의 책임에 대한 문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에 특유한 국가 숭배교의 인명 경시의 사고 경향 때문이다.”

 

‘슬픔을 안고살다 - 동일본대지진’

 

● 문제 제기 6 : 가타오카 류 도호쿠대학 준교수

 

2011년 3월 11일, 센다이(仙臺)에서 지진이 일어난 이후의 일을 말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과연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가슴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통할 수 있을까?

아직 거리가 진흙투성이이고 거대한 쓰레기가 오브제처럼 여기저기에서 길을 막고 있던 이시노마키시(石卷市)의 강가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살아남아 버렸습니다”라고 갈겨쓴 페인트 글씨였다. 누구를 향해 외쳤는지도 모르는 이 말이 지금도 이물질처럼 가슴속에 가라앉아 마음을 저리게 한다.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해 볼까?”라며 어느 날 밤 피난소의 흡연 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가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됐으면 좋겠어.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이게 나의 진짜 속내야.” 비아냥거림이나 일시적인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은 곧바로 전해졌다. 마음속으로 서로 통하고 싶다고 절실하게 바랐기 때문에 나온 절망의 절규였다. 여기에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에도시대 토호쿠(東北) 지방의 사상가인 안도 쇼에키(安藤昌益)가 ‘직욕(職欲)’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은 ‘직업상의 욕망’이라는 뜻인데 전문가가 전문성을 추구할 때에 주위가 안 보이게 되는 위험성을 가리킨다. 저 옛날 에도시대부터 인간의 심리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직욕’ 세뇌 정도는 도를 넘고 있다. “당장 건강에 영향은 없습니다”를 반복한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서 직업을 수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치 역시 그랬을 것임에 틀림없다.

재해복구작업에서의 자위대의 활약은 평가 받을 만하다. 전후 반세기 동안 평화를 지켜 온 것이 그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사배급 1분 전에 “받들어 총!” 자세로 주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인간사회에는 물론 역할분담도 필요하고, 특히 군대에서 명령체계의 준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재해에서 보다 평가받아야 할 것은 그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임기응변으로 대응한 자위대나 공무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가 아닌 자원봉사자가 피해를 준 것도 많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입장이나 역할을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서로 도우려고 했다는 사실이리라. ‘유대’라는 말도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영혼의 식민지화”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통합실조증사회(統合失調症社會)”라고도 한다. 실제로 그렇다. 이번 원전 사고로 밝혀진 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욕’의 논리에 지배당해, “영혼의 식민지화”된 자기와 집으로 돌아간 또 하나의 자기가 분리된 채 인격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잊을 수 없는 슬픔이나 고독, 물론 이런 것이 없어도 된다면 없는 편이 좋다. 나는 운명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닥친 슬픔이나 고독으로부터 눈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제대로 마주보는 것 말고는 그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지 않을까?

마음속 깊숙이 잠재해 있는 불행의 씨앗에 대해, 그것을 덮는 행복의 씨앗을 많이 뿌림으로써 의식적으로 자기를 바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50개가 넘는 원전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해 볼 가치는 있다. 그렇게 우리는 저 방대한 쓰레기더미를 하나하나 치우고 진흙을 치워온 것이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그때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그것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남아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인간이 몇 번씩 슬픔과 고독에 절망하게 되면서도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해 왔다. 바로 그것이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비록 집이 쓸려가지 않았어도 가족을 잃지 않았어도 우리 마음속에 똑같은 쓰나미가 덮친 것이다.

과거를 잃었다. 이것이 이 지진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일으켰다. 더 이상 원래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복구나 회복이라는 말은 사실은 옳지 않다. 이 슬픔과 고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길 끝에 이번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인격과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사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모든 이의 의무가 아닐까?

<관련 대화>

▷선지수 도호쿠대학 대학원생(박사후기과정) “나는 동북대지진이 있었을 때 센다이에 있었고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지난달 센다이포럼이 열렸을 때 참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포럼에서는 지진과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가 거론되면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연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피해를 입은 유가족 분들은 “잊혀지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이 생자와 사자를 연결하는 한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귀룡 영남대 대학원생(석사과정) “국가를 넘어서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얘기인 것 같은데 나는 엉뚱한 생각을 더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저히 공유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서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공통가치관을 갖고 대화하자”

 

● 문제제기 7 : 지엔 엔 팡 텐진사범대학 교수

 

한중일 3국의 대화가 필요하다. 공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대화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죽은 희생자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두 분 선생님이 문제 제기를 했다. 중국 양자강에서도 크루즈 한 대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다. 배에서는 454명이 탔는데 12명만 도망 나왔다. 중국 정부는 4일 지난 후에 이 배를 바로 인양했다. 2015년 8월 12일 밤 친진항에서는 폭발 사고가 있었다. 128명이 사망했는데 정부는 그 후에 소식을 전하지는 않고 올해 2월 5일에 공식적으로 사고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민들이 궁금한 지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난 앞에서 이와 같은 중국 정부의 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중국 정부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안정성이다. 공산당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기 보다는 사회의 안정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 대화>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아주 중요한 문제가 제기됐다. 장기룡씨는 공통성 보다는 차이성에 주목하고 거기서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동질성을 강요한 철학이나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얼마나 괴롭혀 왔는가? 반면 지엔 엔 팡 교수는 “그래도 공통성 없이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여러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각과 문제의식이 동시에 제기됐다. 여기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상이 어느 정도 제시된 것 같다. 원리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양쪽을 조화시키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갈등, 시비, 전쟁이 있는 것 아닌가? 그냥 이상적으로만 좋아하면 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것이기에 현실적이면서 이념적이고 이념적이며 현실적인 철학을 함께 더불어 열어가는 데는 어떤 쪽이 더 의미가 있고 성과가 있을지 모색하는 것이 이번 우리 모임의 취지라고 생각한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맹수 교수님은 동학사상은 유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달리한다며 동학사상의 독자성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유학과의 관계는 어떤지, 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을 전제로 깔고 동학사상이 가지는 독자성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에 있어 중요한 말씀이 되지 않을까. 최재목 교수께서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중 ‘재세이화’에 초점을 맞춰 사상적 맥락을 짚어주셨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이기. 이원론에 입각해 생각할 때 홍익인간은 기 쪽으로 풀어나갈 수는 없는 것인지, 그 점을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리우 지엔 훼이 교수님이 동아시아의 문화공동체의 이야기를 하셨지만 경제나 정치 공동체는 이뤄질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토론했으면 한다. 김태만 교수님과 가타오카 교수님 두 분이 발표하신 문제 제기에서는 결국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핵심일 것 같다. 국가란 필요악이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좋은 국가란 없다. 국가는 항상 국민이 감시하지 않으면 악한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이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히로다니 마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생(박사과정) “오전에는 개천절을 맞이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자는 문제 제기에 대한 발제와 응답 가운데 공통점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었는데 차츰 차이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오늘의 한중일의 관계 상황을 살펴볼 때 대립, 충돌, 분쟁의 원인은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공유 가능한 것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도저히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의 정체를 세심하게 성찰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적대의식까지는 가지 않는 차이의식에 대한 인식 조정이 필요하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용환 교수님이 발표해주신 가운데 고려 시대 때 백운경한 스님이 말씀하신 무심이 이제부터 우리가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공동체를 위한 교양을 함양하기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보완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오전에 시간이 부족해 무심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했던 것 같다. 오늘의 발제와 토론의 내용을 들으면서 느낀 바는 국가 중심적, 권력 지향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공동체 형성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도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공통성처럼 보이는 것도 각각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공통적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엄청난 차이와 자기정당화에의 집착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진실 앞에 선 단독자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개체 생명이 우주 생명을 자각해서 우주 생명과의 연동작용으로 진실을 회복하는 길이 권력적, 편견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길이 될 것이다. 국가 중심의 개천 행사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모시는 우주 생명을 받아들이는 데서 새로운 개천이 가능할 것이다. 백운 선사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통해 진실 앞에 바로 선 단독자의 모습을 직지에서 제공하고 여기에 한국 중국 일본의 다양한 스님들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동안 금속활자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동아시아 시민성 각성이라는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된 바가 없었지만 거기서 백운선사가 동아시아적 진실파악과 그 공유는 오로지 각자의 자의식을 무(無)로 돌려서 무심의 경지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했다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는 것이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맹수 교수님께서 이학과 동학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유학이 주지설과 주기설을 말한다면 퇴계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쪽에 무게를 둔 유학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뒤쪽과 연결시킨다면 유교하고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학이라던가 불교라던가 도교라던가 동양사상과의 연계관계가 가능하면 이런 것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포괄해서 동학사상이 나왔다는 쪽으로 가능한 것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 “전통사상이나 민간 신앙과 관계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동학이 나온 건 아니다. 기존 사상 속에서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게 고민하는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는 것이지 전통사상과 전혀 관계없는 진공상태에서 오지는 않는다. 계속 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퇴계학과의 관계이다. 퇴계학을 정통으로 수용했고 “동학은 퇴계학의 좌파다”라는 것이 나의 퇴계관이기도 하다. 다만 퇴계학도 동학도 고정불변의 것으로 고착시키기 보다는 발전, 진화, 변혁되는 과정을 통해서 상호관련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학에 대해 아전 유학이라고 폄하되고 있는 데 대해 그것에 대한 반론이랄까. 강조를 하셨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동학의 동에 대해 생각해볼 때 주로 서양에 대한 대비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 점에서 한중일의 방법 자세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일본의 화혼양재, 중국의 중체서용, 그리고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그것이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는 한도서기(韓道西器)라 하지 않고 동도서기(東道西器)라고 한데서 한국 중심의 자폐에 빠지지 않고 동아시아에의 열림을 함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내가 일본에서 연구를 하다 발견한 것인데 동학의 ‘동(東)’자에 관해서 일본의 오리구치 시노부라는 사람의 해석이 크게 도움이 됐다. 그의 해석을 빌려서 생각해보면 동학은 서양 사상이나 중국 사상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곳에서 피어난 새로운 사상이라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동 해석이 앞으로 동학을 생각할 때 중요하지 않을까?”

 

2016년 10월 2일

‘개신을 미래공창으로 푼다’

 

● 문제 제기 8 : 야규 마코토 미래공창신문 편집주임

 

나는 강원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교토포럼에서 일을 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중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친 다음에 이제 미래 공창신문에서 일을 하게 됐다.

원래 10월 3일은 개천절로 한국에서는 건국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왜 ‘건국’이나 ‘개국’이라고 하지 않고 ‘개천’이라고 했는지 많이 궁금했다. 나는 개천절이라고 하는 것에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천(天)이 昨天, 今天, 明天 같이 하루를 의미 할 때가 있다. 하늘에는 천공의 뜻이라든지 인격신 이외에 시간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후천개벽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와 사회의 변혁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구시대의 질서가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때 그것을 자각한 사람들이 일어서서 구질서를 뜯어 고치고 신질서를 수립하는 것이 후천개벽이 아닌가 생각된다. 환웅이 천상계에서 내려오고 그 아들인 단군이 나라를 이루기 전에도 민중들이 존재했는데 역사적 시각이 없었다. 그 이후 민중들은 역사의식을 갖게 됐는데 그 시발(始發)을 개천이라고 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단군신화를 잘 살펴보면 새로운 국면의 모티브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환웅은 인간세상을 동경하되 제멋대로 내려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상의를 해서 내려온다. 한 왕국, 천계를 대표하는 환웅과 지상을 대표하는 웅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요새 흔히 말하는 ‘더블’이다. 하프나 혼혈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피를 이어 받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더블’이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신성을 재현하는 말이다. 그러한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고 한국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그 과정을 잘 함축 한 말이 ‘개천’이다. 개천이란 다름 아닌 미래 공창이다. 단군 신화 속에는 미래공창의 원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인공동(神人共動)의 미래공창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많은 개인이나 집단이 미래를 얘기해 왔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이 미래상을 독창(獨創)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인간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거기에 따르지 않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숙청하기도 했다. 일찍이 내선일체, 대동아공영권 등 미사어구를 내세우며 식민지배에 나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리안 족의 이상적 미래를 제시하며 유태인을 학살하고 전쟁을 발발한 히틀러 같은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미래독창(未來獨創) 폭거에 맞서 싸운 사람도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I have a dream”이라고 말하며 흑인과 백인이 차별 없이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킹 목사가 죽은 후에는 그의 미래상에 공감한 사람들이 미국을 바꾸고 흑백차별도 없애려고 노력해서 마침내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탄생시켰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도 다민족과 다문화가 함께 할 수 있는 새 세계를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한국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 투사들도 미래공창의 주인공들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독창한 미래상이 무수한 피해를 낳았던 것을 보면 미래는 ‘독창’이 아닌 ‘공창’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래는 설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창의 창은 창조의 창이 아니라 복수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창발의 창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

 

<관련 대화>

▷김보름 한·중·일 시민운동가 “야규 선생의 발표를 듣고 어제부터 하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어제 김태창 선생님께서 새 시대에는 새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현재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인성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교육기관이 인성교육을 학제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한지 오래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것은 교육방법에 잠재된 철학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미래독창이라는 발상과 거기에 인간과 자원을 동원한다는 잘못된 철학이 새로운 바람직한 미래를 함께 여는 것을 방해하고 억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무언가 속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야규 박사께서 개천은 미래공창이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래를 함께 여는가에 대해서 견해를 듣고 싶다.”

▷야규 마코토 미래공창신문 편집주임 “김보름 선생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세 개의 초점에 맞춰 응답해 보겠다. 첫째는 인성교육, 둘째는 인성교육의 맹점, 셋째는 단일민족신화가 아닌 다민족 혼성 신화의 효용이다. 첫째와 둘째 문제는 일본과 상황이 너무 비슷해서 다른 나라의 일 같지 않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셋째 문제는 미래공창에 있어서 동질성 확보와 이질성 존중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것인데 내 경험에 입각해서 말하면 동질성의 확보 보다는 이질성의 존중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모처럼 열린 새 세계가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김보름씨가 얘기한 한국사회의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거론하고 싶다. 하나는 윤리교육을 공부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인성교육의 실패를 크게 자책하고 있다. 인성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데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김보름씨가 개천을 미래공창으로 해석하는 데는 공감하지만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 기여하느냐라는 지적에 대해서 김태창 선생님과 김보람씨 사이에 철학대화를 중시하는 데 생각을 같이 하는 것 같은데 그것에 나도 공감한다.”

 

‘한중 관계의 신기원을 생각하다’

 

● 문제 제기 9 : 지엔 엔 팡 톈진사범대 교수

 

최근 ‘사드 배치’ 문제가 터졌을 때 나는 마침 서울대에 있었다. 그때 성주군민 수천 명이 서울에 올라와 항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늘은 주로 철학과 사상의 측면에서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나는 전공 분야가 그렇고 해서 경제, 정치, 행정 분야의 시각으로 해석해 보겠다. 사드배치 결정은 중국을 분노하게 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공식행사에서 몸을 빼기 시작했다. 대구치맥축제에서 칭다오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불참했고, 중국 관영매체에서 한국 연예인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명동, 서울시내, 인천공항 등에서 볼 때는 유커의 수가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빅뱅콘서트 관객의 3분의 1이 중국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볼 때 정부 간 교류는 중단 됐지만 민간 교류는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지금 직면한 여러 문제들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015년 8월부터 1년간 서울대학에 있으면서 여러 한중학회에 참여하며 많은 학자들을 만났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 운영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잘 모르는데 중국과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어떻게 얘기 했나 의심이 들었다.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5가지이다.

첫째는 중국이 정치, 경제 등의 기치를 새로 제시하고 있지만 저항이 너무 많다. 둘째는 중국 경기도 좋지 않다. 셋째는 중국이 부패와의 싸움을 시작했지만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이 생겼다. 넷째는 실크로드 정책이 추진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에 직면했다. 마지막으로 시진핑 주석은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해 북경성진하북 일체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지금 시진핑 주석은 국내외로 여러 문제들에 직면한 상태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4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경제문제다. 롯데, 한진해운 등 여러 가지 경제적 불상사가 있다. 둘째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국내 정치의 혼란이다. 사드문제로 인해 국회와 국민, 여야당의 싸움이 잦다. 넷째는 북한의 핵 위협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의 원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둘째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해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경제 문제를 정치화시키는 움직임이다. 한국은 데모가 많은 나라다. 일부는 합리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지만 일부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지중파 학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중국을 잘 아는 학자가 많지 않다. 두 번째는 공동 의식을 기르는 것이고 세 번째는 공통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북핵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문제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한·중대화를 넓혀 가야 한다.

 

<관련 대화>

▷박맹수 원광대 교수 “사드문제가 나와서 한 마디 하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반대의 입장에 선다. 글도 쓰고 연설도 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한 말씀드리겠다. 북한 핵 측면의 문제가 있다. 사드는 그 명분이 전쟁의 위협, 위기를 낮추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대안인데 현실적으로는 전쟁의 위협을 촉발시켰고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정세를 조성했다는 측면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다는 것이 첫째 문제다. 둘째는 활명에 전혀 반대되는 무기라는 것이다.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사드는 대량살상무기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드는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무기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측면에 편향되었다는 문제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배치 지역의 눈에 보이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성주는 명품 농산물의 고장이고 민족 독립운동의 성지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성지인데 그런 부분들이 일거에 사라지고 찬성반대로 갈려 지역사회와 주민들이 완전히 분단되었다. 사드만 없었더라면 지극히 평화로웠을 지역인데 사드 때문에 갈등지역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사전에 충분히 주민들과의 대화, 환경영향평가 등 배치에 이르는 민주적 절차를 충분히 밟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비민주적인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운영의 안정성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서 사드 배치가 과연 문제 해결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변영호 쯔루문과대 교수 “사드배치는 대통령 전결사항인지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인지 알고 싶다.”

▷김태정 한국외대 명예교수 “사드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의 여론이 양분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드 문제는 국민들의 폭넓은 동의하에 추진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러나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와도 기본적으로 같습니다만 안보동맹조약 때문에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와 합의하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미동맹 자체를 문제시 한다면 몰라도 그것을 전제로 인정한다면 정부와 정부사이의 전결사항이다.”

▷김세진 군사학연구가(건명원 학생) “명분과 실제와의 사이가 벌어진 상황을 ‘안보 딜레마’라고 한다. 지금 이 상황에 한반도가 쳐해 있는 것 같다. 사드를 대량살상무기라고 하셨는데 사드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무기다. 오히려 중국의 대량 살상무기가 훨씬 많다. 미국의 입장이 강력히 반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의 안보 이익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반도의 정세가 예나 지금이나 슈퍼파워의 대립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내분이 참담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동아시아의 미래를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사이의 바람직한 평화정립을 위해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상대방에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공철학에 있다.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삼국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생활과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가치마저도 각국의 정치목적에 따라 다르게 정의 내리고 있다. 이러한 모순들을 반목과 대립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으로 가는데 중요한 것이 인권, 평화, 행복에 집중해 철학적 대화를 전개하면 사드배치 같은 어려운 문제들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동안 중국이해가 고전중심에 치우쳐 있었고 동·서 진영의 대립 때문에 대만을 통한 중국 이해만이 오랫동안 우리의 중국 이해의 중핵을 이뤄 왔다는 것도 대륙 중국의 이해가 불충분했던 원인이 아닌가 싶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문제에만 편향되지 말고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문제를 중시해야 된다. 너무 중국 이해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이 사대주의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상호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10년간 중국의 동서남북을 다니면서 철학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 학자·기업인·지도자들의 한국이해가 아주 없거나 지극히 왜곡되어 있는데 충격을 받은 적이 적지 않다. 그동안 서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고 앞으로 서로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면한 공통과제가 아니겠는가?”

▷지엔 엔 팡 교수 텐진사범대학 교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를 잘 알기 위한 진지한 철학대화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감한다.”

 

‘동물생명과 식물생명 그리고 우주생명으로’

 

● 문제제기 10: 오오하시 켄지 프리랜서 언론인

 

나는 2014년에 철학과 생명관이라는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일본 철학과 생명관이라는 강의를 했습니다. 일본어로는 사생관. 즉 죽음이 먼저 온다. 생사관이라고 하는 한국어와는 다르다. 동물들의 경우는 죽음 앞에 담담한데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서 삶을 생각해 보는 일본적 사생관과 삶을 먼저 생각하고 죽음을 그것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한국적 생사관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동물생명과 식물생명을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비유적 표현이지만 동물생명은 서양, 근대 이후, 남성적인 생명을 말하고 식물은 동양, 근대 이전, 여성적인 생명을 비유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유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동아시아 3국이 서양 근대라는 독에 마비된 상태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노인문제나 자살률이 높은 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다. 중국 일본에서도 같은 문제를 보이고 있다. 저출산도 그렇다. 근대에 의해 마비가 된 상태를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자는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반생명의 가치 체계에서 생명존중의 가치 체계로의 근본변혁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데 중요한 과제라는 것에도 공감을 느낀다. 김태창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신 생명의 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동물과 식물의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집 주위에 논이 있어 산책을 자주 하는데 6~7월경 논을 걸을 때 벼의 생명력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인체에는 식물기관하고 동물기관이 공존하고 있다. 식물기관은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나 뇌 등이 동물기관이다. 현대는 식물기관보다는 뇌나 눈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시대다. 그것은 건강하지 못하고 부자연적인 기능발휘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내부에 있는 생물 세포의 기능을 다시 한 번 살려야 할 때다. 식물 특유의 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다시 한 번 되돌릴 필요를 느낀다. 식물적 생명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나의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련 대화>

▷장지영 원광대 요가학연구원 연구원 “오오하시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물생명을 자본주의 세계관이고 식물생명을 반자본주의 세계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문제가 있다. 선한 욕망, 공공적인 욕망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식물적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는데 동의를 하면서 원래 인간은 식물적 성향이나 우주적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우주생명을 자각하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의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지 않을까?”

▷오오하시 켄지 프리랜서 언론인 “인간의 생명에는 동물적인 생명만 아니라 식물적 생명이 함께 함유돼 있다. 동물적 생명과 식물적 생명이 아우러지는 것이 우주적 생명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우주생명을 자각한다기 보다는 ‘되찾는다’고 표현해 왔고 거기에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 “대체로 동의는 한다. 뇌에 문제가 생기면 식물인간이다. 동물적인 부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대립·갈등·분쟁의 문제 등이 있다. 그래서 동물적인 생명과 식물적인 생명을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가가 문제다.”

▷오오하시 켄지 프리랜서 언론인 “최재목 선생님의 문제의식은 당연한 것이다. ‘식물은 선이고 동물은 악이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식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소를 내뿜는다. 그런 것처럼 내가 말하는 것은 동물적 신체와 식물적 신체가 동시에 내재되어 있음에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내가 오호하시 선생이 이 문제를 거론하길 바란 이유는 나 스스로의 생명체험이 객관적 중요성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83년이란 세월을 지내오며 50대 후반까지는 육식 중심의 식사를 해왔다. 생명 에너지의 보충을 주로 동물성 먹거리에서 충당했다. 60대부터는 바람직하지 않는 부작용이 일어나서 의사와 상담했더니 육식을 줄이고 채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실천해보니 육식을 중심으로 할 때보다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만 그런가 해서 동년배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생명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문화론적, 문명론적, 철학적으로 성찰하려 할 때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오오하시 선생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다.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한번쯤 거론해봄직한 화두가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부탁드렸던 것이다. 생명문화도시 청주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주식으로 삼아온 쌀의 가장 오래된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쌀은 가장 동아시아적인 식물성 먹거리다. 그래서 청주에서 식물적 생명을 재조명해보고 동아시아의 먹거리와 식사 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문두탁 교토대 대학원생(수사과정) “오호하시 선생님께서는 동물생명이라는 부문을 서양문명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서양 문명이라는 것이 인류의 욕망이라던지 인류가 추구해온 기술과 힘 이런 것들이 이제 현대에 와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병, 원전 사고 등 새로운 현대 사회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동물생명=서양문물’이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면 그 시각을 ‘식물생명=동양문명’이라는 시각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식물생명을 살려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들을 살리는데 공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오하시 선생님의 말씀은 무척 의미 있게 다가왔다.”

 

<종합 토론>

▷변영호 쯔루문과대 교수 “종합토론을 시작한다. 먼저 내가 문제제기를 해보겠다. 공통성은 철학사에서 아주 핵심적인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일본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보자고 해서 맨 처음으로 한·중·일의 대학생들에게 공통수업에 참가하게 하고 거기서 사용되는 공통의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서 유럽에서 논의되어온 공통선과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를 함께 찾자는데 합의가 이루어져서 그것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가운데 김태창 선생님의 제안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김 박사는 유럽처럼 하나의 ‘선(善)’=‘정의’에 수렴되는 공통선과 같은 발상이 동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역사적 체험에 입각해서 중국적 가치로서의 인(仁)과 일본적 가치로서의 화(和)와 한국적 가치로서의 통(通)의 삼원상관연동(三元相關連動)의 역동적 생성과정에서 공통가치를 찾아보자는데 잠정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가정적 합의에 의해서 한중일의 대학생들이 여름방학 때 오카야마대학에 와서 함께 몇 가지 과목을 이수하고 거기서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대화를 나누도록 한 것이다.”

▷김태정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지금 변영호 교수님 말씀을 듣고 상당히 재밌었는데 통의 문제를 가장 깊이 다루었던 최한기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 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和)’가 일본문화를 얘기할 때 반드시 거론된다. 그것은 성덕태자의 헌법 17조에 들어간 배경을 생각하게 되면 당시 불교수용문제를 둘러싸고 야마토 조정에서 격렬한 정치투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야먀토 호족 내 세력 간의 갈등이 아주 심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화(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헌법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서로가 불통이라고 비난한다. 야당의 경우에도 그렇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불통이 문제라고 한다. 소통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분명하나 소통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소통 소통하는 것이 아닌가? 소통이 왜 안 되는가 하면 하나의 정치문화로써 현재 국민성 형성에도 크게 작용됐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주자학에서의 주기론을 가지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주기이론이 강했다. 이율곡 선생과 이퇴계 선생 두 분 다 훌륭한 선생이지만 그 중에도 화통으로써는 이퇴계 선생이 훨씬 위에 사상사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도 남북이 서로 잘 통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국의 ‘인(仁)’이나 일본의 ‘화(和)’나 한국의 ‘통(通)’이 모두 각각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기독교의 ‘이웃사랑’이나 불교의 자비심과 상통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김세진 군사학연구가 “불통을 문제 삼고 불통을 논하고 불통을 탓하는 부분에서는 누구나 공감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하를 포함해서 상급자들까지 소통의 큰일을 겪어봤지만 소통에 가장 큰 적은 모두다 불통이라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착각을 깨는 데에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철학의 시작이 남의 불통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일통을 통하게 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통의 가장 큰 적은 불통이 아니라 소통하고 있다는 내 안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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