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록(충북병무청장)

▲ 김시록(충북병무청장)

그리스 아테네 교외의 아티카 지방에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라는 엄청나게 힘이 센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쇠 침대에 눕히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몸을 잡아 늘여 침대만큼 길이를 맞춰 죽였다.
그런데 그의 쇠 침대에는 침대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서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을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행인은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자신의 침대로 악행을 일삼던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에게 잡혀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 있는데 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이 말은 자기의 잣대대로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행위를 뜻하며, 융통성이 없거나 자기가 세운 일방적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아집과 횡포에 비유된다.
비록 신화 속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불합리한 규제에, 테세우스는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는 규제 개혁가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병무청은 국가안보를 위해 현역병 징집, 보충역 소집 등 병력 충원을 기본임무로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를 위해 병역법에서는 대한민국 남자 모두 병역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 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수불가결하게 있다.
하지만 불합리한 규제로 국민을 얽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를 개혁하여 부담을 완화하고 병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진이행 풍토를 확산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명으로 병무청은 병역이 의무가 아닌 당당한 권리로써 국민 모두에게 인식되도록 공감하는 행정개선을 통해 테세우스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들이 교육소집 일자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병역이행 자율성을 강화하였고, 재징병검사 대상자도 검사일자 및 장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병역의무자의 편의를 제고하였다. 또한 육·해·공군 모집 관련 규정을 통합하여 합리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였고, 약학대학생의 재학생 입영연기 제한연령을 27세로 완화해 의·치·한의·수의학과 학생과의 형평성을 유지하고 학습권을 보장하는 등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했던 규제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개선하였다.
병역이행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국민 불편 초래 규제들을 국민의 입장에서 적극 개선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민행복시대 구현을 목표로 5가지 개선과제를 선정하고 규제개혁을 추진하였다.
우선 국외여행 최초 허가 당시 이미 외국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에 대해서는 기간연장 허가와 동일하게 학교별 제한연령에 1년을 더한 기간까지 허가함으로써 불필요한 규제 및 민원불편 소지를 제거하였다.
다음으로 병역처분변경 사유를 ‘수형 등’에서 ‘수형자와 그 밖의 사유로 병역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 구분하여 인권침해 등 부정적 요인을 제거하였고, 의무경찰 등 전환복무 모집에 응시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현역병 입영기일 30일 전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하였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병역증 조회 및 발급이 가능하도록 개선하였고 사관학교에서 퇴교되어 현역병 외의 신분으로 복귀된 경우 현역병 등 복무시점과 관계없이 퇴교 전에 받은 군사훈련기간을 복무기간으로 인정하여 형평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이러한 결실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장 속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현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손톱 밑 가시는 없는지 샅샅이 찾아 함께하는 병무행정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산물인 것이다.
필자 또한 매월 복무기관, 입영현장 등을 방문하고 병역의무자들과의 만남, 대화를 통해 불편사항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수용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고 있다.
병무청은 앞으로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잣대가 아닌 국민의 잣대로 규제를 개혁하고 진정한 국민 행복시대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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