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철호

아무르 강에서

 

조철호

 

아무르 강이 비를 맞고 있다

구만리 장천 떠돌던 혼백들과 눈물 마른 새들만

석양을 비껴가고

절룩이며 절룩이며 왼종일 족쇄를 끌어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하바로프스크-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을 버리던 곳

언제나 축축한 이 도시 한 켠에

조선 사내들의 한숨 따라

아무르 강이 비를 맞고 있다

혁명가의 아내처럼

맨살로 비를 맞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유언도 없이 운명한 쓸쓸한 주검도

5월이면 풀꽃 하나 피우려는데

시베리아 설한풍만 강가를 서성일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을 강물은 알아

아무르 강-

오늘도 일삼아 비를 맞고 있다

발목잡힌 길손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 아무르강 :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길이가 세계 8위인 강으로 헤이룽강, 흑룡강(黑龍江)으로도 불린다.

* 하바로프스크 : 포석 조명희 선생이 스탈린 정권으로부터 총살형을 당하기 전까지 살았던 도시로, 1992년 포석의 유족인 조철호 시인은 아무르 강을 찾아 선생을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지었다.

* 오늘은 포석 조명희문학제가 열리는 날이다.

 

△시집 ‘유목민의 아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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