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수 <청주상공회의소 회장>

 

나는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농심(당시 롯데공업)에 공채 1기생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보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 당시 공채 1기생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명문대 출신들이었는데 나와 동기 둘만 지방대 출신이었다. 나는 먼저 겁부터 덜컥 났다. 앞으로 명문대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행인 것은 발령 부서가 영업부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오직 열심히 하자, 당당하게 하자, 2배로 열심히 뛰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날부터 정말로 열심히 뛰었다. 시장조사의 임무가 부여 되었을 때 절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상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조금도 거짓을 보태지 않고 리포트를 작성하여 제출했는데 의외로 명문대 출신 사원보다 내가 쓴 리포트가 채택되는 것이다.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시장조사를 하게 된 덕에 행운이 왔다. 제법 큰 시장을 나에게 맡겨 주었다. 책임감이 훨씬 무겁고 컸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실적도 좋았고 자신감도 점점 높아져 자신 있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뛰는 만큼 보람도 맛보았고 보상도 따랐다. 승진이 남보다 빨랐고 판매지역도 중고참 이상이 되어야 맡을 수 있는 큰 지역이 나에게 맡겨졌다.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뛰다보니 영업실적도 따라주어 1년 만에 처음으로 신설된 지역장으로 발탁됐다. 수하에 여러 명의 배달사원을 거느리고 시범적으로 운영한 직영판매 방식이 성공적으로 평가되어 또 한번 승승장구를 하게 되었다.

입사 동기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제주영업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4년만에 영업소장으로 승진했으니 빠르기도 하지만 크나큰 행운이었다. 2년간 제주영업소에서 관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부산에 있는 2개 영업지점 중에 당당하게 부산 북부 영업지점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얼마나 큰 영광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또 한번 행운이 주어졌다. 임원급이 관리하던 경남 마산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마산지점은 지점의 규모는 큰데 시장점유율이 전국에서도 아주 부진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바로 인접해 조성된 창원시가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감히 농심 회장님께 제 나름대로 주변 환경 분석과 향후 발전가능성, 물류가 경남의 중심에서 용이한 점 등의 타당성 조사를 하여 창원유통단지에 마산지점을 옮겨야 된다는 품의서를 올렸더니 곧 바로 시장조사를 하여 부지를 물색하여 보고하라는 답신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회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에 부산지사에서는 그 큰 땅을 사서 지점을 짓게 되면 관리비 등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고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회장님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렵게 협상을 잘 해서 다른 회사들보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부지를 매입해 자가 창고와 영업지점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축하게 되었으니 타 영업지점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 지점의 판촉 여사원 8~10명이 직접 소매점을 방문하여 제품진열과 선입선출 그리고 즉석에 오래된 제품을 반품처리해 주니 소매점이 무척 좋아했다.

특약점에서 판촉 여사원들이 판촉활동을 하니 소매점 관리도 잘되고 판매량이 점점 신장을 하게 되는데 첫 해에 100% 신장에 이어 2년 연속 100% 신장하며, 삼양라면을 누르고 역전을 하게 됐다.

이러한 성과는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의 헌신도 있었지만, 기죽지 않고 열심히 도전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나를 항상 ‘정직해라, 성실해라, 기죽지 말고 당당해라’를 늘 후배들에게 심어주었다. 지금 청년실업 문제도 청년들이 정직하고 당당하고 기죽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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