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중원대 교수)

▲ 이상주(중원대 교수)

 ‘폭서암(曝書巖)’이 더 무거울까? ‘장군암(將軍巖)’이 더 무거울까? ‘아   해 다르고, 어해 다르다’. ‘동가홍상이다’. 최근에 선출된 호남 출신 이정현새누리당대표는 말을 잘한다고 호평을 받았다 한다. 말을 잘 한다는 뜻은 크게 두 가지다. ‘핵심 내용을, 재미있게 말하거나 논리적으로 간명하게 정확한 표현을 구사한다’는 뜻이다. 두 가지를 조화있게하면 금상첨화이다.
  필자는 청주시 서원구 장암동 산 31-1번지 ‘장수바위/장바위’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문을 보고 느낀 점을 적어본다. 다음은 안내문의 개요다. “‘노긍’이라는 사람이 이 바위 위에 정자를 세우려고 그 바위를 덮고 있는 뚜껑처럼 생긴 바위를 옮기려하자 난 데 없는 뇌성벽력이 일어 정자 세우는 일을 중지했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폭서암(曝書巖)이라는 큰 글씨가 쓰여져있는데 이것은 노긍선생이 여기서 책을 말렸다고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라 한다. ‘장수바위’라 불리는 것은 노장수 즉 노긍이 살던 바위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2014년 9월 23일 청주시 지명 유래집에서 옮겨 적다.”
  ‘장군암’이 ‘폭서암’이다. 돌을 금으로 만드는 화학적 연금술은 불가하다. 그러나 언어문학의 연금술사는 될 수 있다. 남의 글을 인용하더라도 중요도가 높은 핵심내용을 주내용으로 삼아야한다. ‘폭서암’과 ‘장군암’중 어느 바위가 더 무거울까. 폭서암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무겁다. 저울로 달을 수 있는 물리적 무게가 아니다. 문화적 문학적 예술적 무게다.
 폭서암을 통해 우리는 3가지는 배울 수 있다. 첫째 노긍(盧兢1738~1790)은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천재라 극찬한 인물이다. 노긍의 본관은 교하, 호는 한원(漢原)이다. 1765년(영조41)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집안은 남인이라서 관로진출에 제약을 받았다. 생계를 위해 거벽(巨擘) 즉 ‘대리시험’을 쳐주는 일을 하다 유배당했다가 풀려났다한다. 노긍의 아버지 노명흠(盧命欽 1713∼1775)은 야담집(野談集) “동패낙송(東稗洛誦)”을 지었다. 이는 이희평(李羲平)의 “계서잡록(溪西雜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자가 중앙에서 인정받은 청주출신의 문필가다.
둘째 제자는 ‘청어람’해야한다. 노긍은 제자를 잘 둔 스승이다. 바위에 “한원(漢原) 노선생(盧先生) 폭서암(曝書巖) 문인(門人) 황득효가 기록하다(黃得孝書) 가경 무진(1808년) 여름(嘉慶 戊辰 夏)”이라 핵심내용을 새겼다. 눅눅해진 책을 햇볕에 말리던 바위다. 독서했다는 말 대신 쓴 말이다.
셋째 지식이 인생과 세상을 바꾼다. 선비라면 당연히 다독을 통해 보국해야한다. 대표적 다독암기왕은 괴산의 김득신이다. 노긍의 독서력은 ‘폭서암’이라는 글씨가 웅변해준다. 진천 초평의 이하곤도 다독왕이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정민교수가 유명하다. 그가 이가환이 노긍의 묘지명에 쓴 “그가 태어나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얻었고, 그가 죽자 우리나라가 한 사람을 잃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로써 정민은 독서수준이 높아 홍익학문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대가리보다는 ‘옥경’이 고상하다. 그구멍보다는 ‘옥문’이 더 염정적이며 열고 들어가고 싶은 외설적 자극이 강하여 ‘송이(松茸)’를 요동치게 한다. ‘정사’보다는 ‘운우지정’이 운치있고 낭만적이다. ‘묵이’보다는 ‘은어’가, ‘새뱅이’보다는 ‘선유대’가 고상하고 우아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에 따라 전달지수, 기억지수, 감동지수가 달라진다. 노긍의 경우 ‘장군암’보다는 ‘폭서암’이 훨씬 학문적이며 고상하고, 기품있으며 세련미가 있다. ‘폭서암’을 우선으로 하여 설명문을 작성하는 것이 직지를 간행한 도시 청주의 명성에 최선최적이다. 공부벌레가 적은 지역이 충북이다. 사고성신(師故成新)하라. 어느 시대나 지식이 부국강병으로 천하를 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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