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 예고에도 쭉정이 늘어 도정 땐 쌀 생산량 감소
-서산·태안선 ‘염해’…호남선 ‘수발아’ 등 피해 잇따라
-배추·콩·감, 폭염·병해충에 작황부진…가격은 상승

 

(동양일보 지역종합) “수십 년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습니다.”

올해도 풍년일 것이란 기대가 많았지만 정작 들녘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다르다. 수확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쌀과 콩은 쭉정이가 늘었고 감 역시 병충해 피해를 입어 농가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풍년예고’…농민들은 “글세”

4년 연속 풍년이 예고되며 기대를 안고 추수에 나섰던 쌀 농가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실망이 크다. 벼 수확량은 늘었지만 알차게 여물지 않아 실제 벼 생산량은 줄었기 때문이다.

청주시는 최근 75개 농가를 대상으로 벼 수확량을 조사해 ‘작년보다 1~3%가량 증가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그러나 ‘청원생명쌀’을 생산하는 RPC(미곡종합처리장)의 도정률은 지난해보다 최고 10%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벼의 알곡이 줄고 쭉정이가 늘어난 것이다. 청주시는 이를 고려하면 쌀 생산량이 작년보다 8%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겉으로는 풍년이나 쌀 생산량은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늦여름까지 계속된 무더위 때문이다. 특히 열대야 현상으로 야간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벼가 정상적으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충남 서산·태안 등 간척지에선 ‘염해(鹽害)’가 대량으로 발생, 농민들이 시름에 빠졌다. 올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의 염분이 올라 와 작물을 태운 것이다. 피해를 본 벼들은 쭉정이가 많고 도정을 해도 미질이 떨어졌다. 농민들은 올해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봤다.

호남지역에서는 베지 않은 이삭에서 싹이 트는 벼 수발아(穗發芽)까지 발생했다. 수발아가 생긴 벼는 수확량과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식용으로도 사용하기 힘들다. 전남에서만 피해 농경지가 2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래태 등 콩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콩 주산지인 충주에는 노린재가 극성을 부리며 쭉정이 콩으로 가득하다. 한 농민은 “40년 넘게 콩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해충피해를 입기는 처음”이라며 “쭉정이로 가득한 콩밭을 보면 속이 타들어간다”고 하소연했다.

‘감의 고장’ 영동의 감 농가들도 비상이다. 영동에서 곶감을 생산하는 농민 김모(61)씨는 “최근 감 값이 크게 올라 곶감 가격도 뛸 것으로 봤지만 정작 곶감을 만들 감이 부족하다”며 “수확량이 줄었는데 가격이 올라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 지역에서 최근 거래된 감(동시) 값은 20㎏ 기준 2만9000~3만2000원으로 작년보다 20%가량 올랐으나 지난달부터 잎이 누렇게 마르는 등 둥근무늬낙엽병이 번지며 수확량이 급감했다. 일교차가 큰 산간지역은 나무에 남아있는 감이 드물 정도다.

본격적인 절임배추 출하를 앞둔 괴산지역 농민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배추에 무름병과 뿌리혹병 등 병충해가 번지고 있으며 가을에도 더위가 이어져 주부들이 김장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절임배추 주문도 예전 같지 않다.

●작황부진 ‘밥상물가’ 상승 이어져

농산물 작황 부진은 서민들의 ‘밥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작황 부진으로 배추 가격이 상승하면서 김장비용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평균 4179원을 기록했다. 1년 전(2526원)과 비교해 65.4%, 5년 평균가격(2651원)에 비해서는 57.6% 비싸다.

배추와 같은 김장채소인 무 가격도 크게 뛰었다. 21일 소매시장에서 중간 품질 무 1개의 평균가격은 3385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48% 급등했다. 5년 평균가격(1646원)과 비교해도 두 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파 역시 작황이 부진해 가격이 평년 대비 60% 가까이 높고 양파와 마늘은 재배면적 감소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비쌌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전망이다.

충청지역도 마찬가지다. 충청지방통계청의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충북의 신선식품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1%, 충남은 22.0%, 대전도 17.3% 올랐다. 충북의 지난달 배추 가격은 1년 전보다. 244.8% 치솟았고, 충남도 219.1%, 대전은 149.3% 올랐다. 무도 충남이 124.5%, 대전도 135.5% 가격이 뛰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조만간 김장철 주요 채소에 대한 수급 안정대책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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