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회의Ⅱ -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지난 1~3일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열린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에 참석했던 한·중·일 학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동양포럼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보내왔다. 한·중·일의 미래를 함께 열어간다는 데 뜻을 함께 한 이들이 보내온 감상문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 개천(開天)의 뜻밝힘과 미래창발적 대화

김용환 충북대 교수


개천절을 기념하는 동양포럼 회의가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사흘 동안 이루어졌다. 한·중·일을 대표하는 전문가·기성 세대와 학생·장래세대가 마주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자는 뜻을 국내외에서 펼쳐온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동양포럼 취지를 설명하면서 ‘동아시아 활명연대’를 제안하였다. 이는 곧 생명살림에 의한 동아시아의 개천이다. 개천의 뜻을 살려 동아시아 미래비전을 모색하는 대화의 시발을 의미한다. 
첫째 날, 개천의 뜻을 되새겨보고 동학의 다시 개벽과 퇴계의 이화사상과 접목시키면서, 세월호 사건과 동일본대지진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토론이 이루어졌다. 흔히 단군개국을 개천으로 알고 있지만, 초대 거발한(居發桓) 환웅에 의한 배달성립과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 치우천황이 탁록대전에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은 것이 밝혀졌고,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악마 깃발의 주인공이 되면서 고조선개국과 구별되는 개천의 의미에 대한 재조명이 요청되게 되었다. 개국과 다른 차원의 개천의 뜻을 새밝힘하게 될 때 우주생명을 자각하고 동아시아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희망을 담게 된다.  
사람은 생명을 자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생명을 자각할 필요가 없는 신이나 생명을 자각하지 못하는 즘생과 다른 인간의 특징이다. 둘째 날 야규 마코토 미래공창 편집주임의 발표에서 미래공창으로서의 개천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었고 오오하시 켄지는 동물적생명=문명에의 편향으로부터 식물적 생명=문명에의 대전환을 역설했다. 한·중·일이 서로 다른 문화적 특성의 차이를 나타내면서도 인(仁)·화(和)·통(通)의 상관연동태를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 길에 대한 공감대가 확보되었다. 동아시아 미래를 열기 위한 열정은 셋째 날까지 이어져 장래세대의 장지영 원장의 요가론, 손지수 토호쿠대 대학원생의 리더십 비판과 새로운 서번트십(섬기는 자의 마음가짐)의 제창, 이장욱 미술작가의 문명에 내재하는 야만성 등의 참신한 문제의식으로 활기찬 소통이 이어졌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활명연대의 구축을 통해서 이루고자 미래창발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 동양포럼 : 새로운 철학을 함께 창발하는 현장

박맹수 원광대 교수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충북 청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동양일보’ 창간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동양포럼’에 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이번 포럼은 지난 25년간 일본을 무대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공(公共)하는 철학’운동을 펼쳐 오신 김태창 선생님께서 ‘동아시아 활명연대(活命連帶)’를 구축하는 철학운동을 시작하자는 제안에 공감한 한·중·일 삼국의 학자와 젊은 연구자, 대학원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3일 간 계속된 금번 포럼은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포럼이었다. ‘새로운 철학이 태동하는 도시 청주’에서 ‘시민과 함께 철학하는 신문’을 지행하는 지역의 한 언론사가 지역을 넘어 동아시아를 시야에 두고 포럼을 기획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3국의 양식 있는 모든 이들의 주목에 값하는 세계적 수준의 포럼이었다. 
지역과 국가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동아시아로 활짝 열린 시야와 함께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포럼의 주최자가 되어 주신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님을 비롯하여, 포럼 운영위원장으로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주신 유성종 선생님, 그리고 포럼이 지향해야 가야 할 철학적 방향을 제시해 주신 김태창 선생님께 깊은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이번 포럼은 진행방식, 참가자의 면모, 논의된 내용 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학술적 모임일지라도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3일 동안 한 자리에 모여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지역 간 세대 간 ‘철학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일찍이 경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은 점심도 도시락으로 대신해 가면서까지 촌음을 아끼는 심정으로 참가자 전원이 종래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대화를 계속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포럼의 특징은 참가자의 면모에서도 아주 잘 드러나고 있었다. 연령 면에서는 20대 젊은이로부터 80대 최고령 학자가 참여함으로써 세대(世代)를 뛰어넘는 대화가 가능했다. 원로 및 중진 학자들이 젊은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의 발언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진지하게 답변하는 모습 속에서 필자는 일종의 지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한·중·일 삼국의 저명 학자와 젊은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가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열린 철학대화의 필요성에 ‘폭풍’같은 공감을 느끼면서 ‘동아시아 활명연대’ 구축이라는 동양포럼의 새로운 제안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도 큰 수확이었다고 본다. 끝으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며, 새로운 철학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김태창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동양포럼이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철학을 함께 창발하는 현장으로 자리매김되고 착실하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동아시아의 미래는 시민의 ‘생명살림’ 연대에서

최재목 영남대 교수


‘생각(生覺)’하는 ‘민학(民學)’: 이번에 철학이 대화로 살아있는 도시 청주에서 열린 ‘동양포럼’은 종래의 ‘관학(官學)’을 넘어서는 ‘민학(民學)’ 한 마당이었다. 민학은 ‘민(民)’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학술 행위를 말한다. 청주라는 지역의 언론 ‘동양일보사’가 기획한 이번 포럼은 동아시아의 미래가 각 지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생명살림(活命)’ 연대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확인한 자리였다. 
한국, 중국, 일본의 학자와 학생들이 세대를 넘어 ‘대화’라는 형태로 생명살림의 의미, 방법론을 논의하였다. 이런 기획의 중심에는 특별한 분이 계시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교토포럼을 이끌어 오시면서 공공철학을 구축하신 김태창 선생이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말의 뜻을 중시하는 김태창 선생은 우리말의 ‘생각(生覺)하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살 생(生)’ ‘깰 각(覺)’을 ‘생명의 자각’으로 풀이하고, 이런 사고 유형은 세계적으로도 참 드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충청북도 청주에서 ‘동양포럼’이라는 형태로 ‘생각(生覺)’하는 ‘민학(民學)’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동양일보사 조철호 회장과 포럼을 후원하는 유성종 운영위원장이 함께 하신다. 학술을 향한 깊은 뜻은 안동, 익산, 청주로 계속 순회하면서 퇴계학, 수운학, 명재학과 만나고, 이학(理學), 기학(氣學), 실심실학(實心實學)을 국제적 차원에서 풀어내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지역간 환경유대를 통해서 함께 이루어보자는 것이 김태창 선생이 구상하는 인터로컬필로소피의 겨냥하는 바인 것 같다. 이번 논의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울림이 있는 생각들을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메모해두고자 한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겉으로는 평탄하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다. 생김새는 비슷하나 생각하는 내용은 다르다. 한 마디 개념으로 지역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한국은 통(通), 일본은 화(和), 중국은 인(仁)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소통을 지향한다. 원효의 ‘화쟁(和諍)’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옛날 선조들도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쟁(諍)=말다툼(言+爭)=언쟁’을 좋아하였다. 
그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어디가나 말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진풍경을 만난다. 주먹도, 칼도 아니고 ‘말’이다. 언로가 막히는 것을 싫어한다. 불통(不通)을 싫어한다. 불통은 고집(固執)에서 나온다. 고집불통을 싫어하고, 상호소통을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은 것이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다. 내 것 네 것이 없이 공유하고 간섭한다. 오구라 기죠 교수(교토대)는 한국사회가 엘리트 중심이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엘리트는 돈·힘(권력)·도덕을 설계하고 장악하고 관리해왔다고 본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패거리 짓고 편 가르고 파당을 만들기에, 이런 ‘불통’ 구조에 불만과 스트레스를 소통에서 찾고자 하였다고 본다. 
반면 일본은 근본적으로 소통을 싫어한다. 식당에 가면 각자 자기 밥만 먹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를 별로 안 한다. 닭들이 모이를 쪼듯이 젓가락으로 자기 앞의 도시락만 먹어댄다. 각자 외골수로 살아간다. 그런 노하우를 토대로 장인(匠人) 사회를 만들고, 노벨상을 받고, 과학기술과 학술과 문화를 쌓아왔다. 가직(家職)은 천직(天職)이었다. 이렇게 고유한 자신의 영역을 남들이 터치하거나 간섭하거나 다가서고 들여다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각자의 속내(혼네)는 모자라건 넘치건 은폐되어 있고 비밀스러우며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형태로 조화를 꾀한다. 그것이 화(和)이다. 
중국은 여러 측면이 있으나 세계(천지)를 자신 속에 껴안고 각자가 주인이 되어 나와 타자 ‘미분(무구분)=합일’ 상태로 있는 것을 존중한다. 투박하고 느리고 둔한 것 같지만 세상이 주인공이라는 강한 자존심과 배짱이 있다.
이번 세미나의 주요 과제였던 개천(開天)의 해석이 ‘새로운 나날의 열림’이었다. 개국일이 아니라 개천절이라는 의미는 바로 한국이라는 국가를 넘어 동아시아, 세계사적인 ‘생명살림’의 새날열기로 보는 것, 이것이 이번 세미나의 큰 확인이었다. 이런 취지를 살려서 내년 8월 경에는 안동에서 퇴계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기대가 된다. 

 

● 동아시아의 활명연대(活命連帶) ‘함께’하는 주체성

야마모토 쿄시미래공창신문 발행인


‘통하면 아프지 않다(通卽不痛)’는 한국적 공통감각에 대비해서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일본인은 장인의 세계를 훼손시키지 않고 ‘통(通)’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과제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장인 의식이 ‘국체(國體)’라고 하는 국가교(國家敎)와 합체되면서 ‘불통(不通)’이 습성화되었을 때 일본은 쉽사리 파시즘화 되었다. ‘통’의 체인(體認)이야말로 한·중·일 삼국을 맺는다. 오구라 교수는 공자에는 수직성(垂直性)이 없고 온전히 수평성(水平性)만을 역설했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생명’이 솟아나오는 것은 거기에 수평적이고 평등한 지평이 있을 때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특히 ‘후생가외(後生可畏-논어)’를 실감케 하는 탁월한 젊은이들이 여러 석학들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직접 발제하고 서로 대화를 나눈 것은 큰 의의가 있었다.
지금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미국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류 지엔 훼이(劉建輝)씨). 젊은 세대들은 ‘생명’이 자본 속에 종속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신자유주의란 자본의 다과에 의한 생명 서열화의 다른 이름이다. 활명을 찾다가 도리어 살명(殺命)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의 동아시아 배치에 상징되는 ‘동아시아 분단의 쐐기’를 뽑아버릴 수 있는 근원적 생명력의 연대가 필요 불가결하다. ‘동아시아 활명연대를 제안(김태창 주간)’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생명문화도시 청주·함께 철학하는 도시 청주·철학이 대화로 살아있는 도시 청주-모두 김태창 주간의 명명-에서 동아시아 활명연대가 창발(創發)되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는 동아시아의 활명연대를 주축으로 공동창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이다. 
박맹수 교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가 ‘민중주체성’이라고 갈파했다. 동양적인 개체의 특징은 ‘타자와 함께’ 하는 데에 있다(텐 베니아민씨)라는 지적도 있었다. 동양적 주체성을 함께 밝혀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여는 것(회의의 주제)”이고 ‘개천(開天)’이자 ‘미래공창(未來共創)’인 것이다.
류 지엔 훼이 교수는 “현재 중국에는 가치체계가 없다”고 말했다. 나도 맞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이기 때문에 종래의 수직적인 교화는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평의 철학은 ‘경(敬)’의 철학과 통한다. 최재목 교수는 “한국의 거유(巨儒)인 이퇴계(李退溪)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로 일관해서 ‘경’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유성종 위원장은 단군 ‘신화’가 아니라 단군 ‘실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대강국 중국에 흡수되지 않는 한겨레의 위대함은 표층에 나타난 내셔널리즘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김태정 명예교수) 철학적 자질에 있다고 새삼스럽게 느꼈다.

 

● 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

김태정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이번 동양포럼에서 첫째날 종합토론을 맡게 된 나는 처음부터 다소 긴장했다. 사전에 김태창 포럼 주간으로부터 포럼의 취지에 대한 설명은 들었지만, 막상 발표자들의 원고를 받고 보니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종래의 학술토론회와는 달리 대화를 위한 문제제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내가 잘 종합해서 총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첫째 날 포럼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런대로 끝내고 나니 둘째날부터는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둘째 날의 오오하시 켄지씨의 ‘동물생명과 식물생명, 그리고 우주생명으로’나 셋째 날 오전의 젊은 세대의 한·중·일 대화에서 원광대 요가연구소의 장지영씨 발제를 듣고 나서야 전체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번 동양포럼의 주제어는 ‘생명’이었다. 개체생명과 우주생명의 관계, 우주적 생명력의 회복, 생명의 서열화 등 모두 흥미롭고도 진지한 문제제기였다. 최종적으로는 서구근대문명에 의해 파괴돼 가는 우주적 생명력을 어떻게 회복해 갈 것인가? 또한 서구근대문명 이후 인간의 식물생명적 측면은 점점 약화되고 동물생명적 측면만 점점 증대돼 가는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 잡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김태창 포럼주간은 이런 생명의 문제,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은 동아시아의 ‘활명(活命)연대’의 공동 구축을 통해서 모색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국민국가의 테두리를 강화하는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미래공창의 주체로서의 시민의식을 함양해 갈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마지막날 전체토론에서 진행을 맡은 교토대학의 오구라 교수의 총평이 지금도 생각난다. 한·중·일 3국이 각각 중요시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태창 주간은 중국은 ‘인(仁)’을 일본은 ‘화(和)를 가장 중시하는 데 대해서 한국은 ’통(通)‘을 중시한다고 했다. 한국의서의 고전인 허준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통즉불통(通則不痛)이요, 불통즉통(不通則痛)이라‘는 명구를 예로 들었다. 기(氣)나 혈(血)이 통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기(氣)나 혈(血)이 막히면 병이 난다는 것은 동양의학에서는 기본상식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오구라 교수는 일본인들은 ‘통즉통(通則痛) 불통즉불통(不通則不痛)-통하면 아프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고 생각해 서로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을 강조하고 대화=소통을 강조하는 김태창 교수가 일본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나 국제관계에 있어서나 ‘통(通)’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 미래는 온다, 기원이 필요하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아름다운 청주,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

일본 교토대학 학생들이 ‘함께 철학하는 도시 청주’에서 만난 것은 온통 아름다움이었다. 삼일 동안 열띤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한·중·일 삼국이 앞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한·중·일이 같이 ‘개천’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이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다. 그것이 없으면 함께 미래를 열어간다는 아름다운 뜻이 성립될 수가 없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 외의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 수상이나 정치가의 사죄도 물론  중요하다. 이를 지나치게 경시하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본인은 자기자신이 직접 하지않은 일에 대해서도 그로인해 고통받은 사람이 있는한 계속해서 사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용히 치러지는 것이 좋다. 대대적인 세리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죄송한 마음을 갖고 기원하는 것이 좋다. 
우리의 기원은 북한을 포함한, 과거 종주국과 식민지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꿈으로써,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지역 전체의 행복을 위해 일본이 적극적으로 공헌한다는 의지를 키워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충분히 커진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에만 얽매여 있어선 안 되며, 미래를 위해 더욱 나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원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사죄와 반성과 추도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즉, 사죄나 반성은 한번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대지를 일구듯이 한평생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볍고 표면적인 말이나 감정적인 격앙보다도, 조용한 ‘복상’과 깊은 기원이 지금처럼 필요한 때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주에서 조용히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기회를 주신 조철호 회장님, 유성종 선생님, 그리고 김태창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개천절 황금연휴의 감동과 충격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10월 첫 사흘의 황금연휴 기간, 일본, 중국,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청주에 모여 동아시아의 활명연대(活命連帶)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비관적이었던 한·중·일의 과거와 현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중·일의 미래를 여는 데, 정치와 경제 등의 이해갈등 관계를 뛰어넘어 생명, 문화, 환경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취지였다. 그리하여 국민성이나 민족성을 뛰어넘어 시민성을 주축으로 하는 수평적 공생공존 논리를 발굴해, 한·중·일의 교양과 지성, 인간의 영성에 깊은 울림을 주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기원하자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연대를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창안해 가자는 취지였다. 마침 회의 마지막 날이 우리의 개천절(開天節)이어서 그 의미가 자못 심상찮았다. 
인터네이션, 인터컬쳐, 인터릴리전스를 넘어 인터로칼리티 차원에서 동아시아 삼국이 공통의 개천을 상상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인지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국가, 권력, 종교, 지역의 예속을 벗어나 지역의 생활현장들이 만나 생명의 현장을 서로 잇고 맺고 살리는 활명연대를 전제로 한다면 이야기의 실마리는 열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지역 간 활명연대를 키우는 철학, 둘째, 에토스와 하비투스를 아울러 삶을 총체적으로 내실화시키는 철학. 마지막으로 태생적 악마성을 지닌 국가의 폭력과 상상치 못할 거대한 인적 자연적 대형 재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과 죽음을 함께 성찰하는 철학 등을 깊이 담론한다면 미래의 서광이 한층 밝아 보인다. 격동하는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함께 상상하기 위해서라면 먼저 철학이 변해야 한다. 화려한 개념들의 잔치나 가짜 도학자들의 고담준론이 더 이상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동물생명에서 식물생명으로의 전이를 통해 우주생명으로의 진화는 오로지 자기혁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자기혁명은 내 안에 도사린 동물생명을 여하히 억제해 가느냐에 달렸다. 근대, 서구, 남성, 자본주의 등 동물생명으로 비유되는 것들과 대비해서 식물생명으로 비유되고 대별되는 전근대, 동양, 여성 생명존중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폭력성과 괴물 같은 욕망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명적 전환에의 조응이지 않을까? 이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고, 새로운 철학에는 새로운 언어가 절실하다.  필요악의 국가, 선한 정부, 시민성 구축방안, 활명하는 수평적 연대의 실천, 갈등대립에서 공감과 협력으로, 동아시아 미래의 공동 건설, 후쿠시마와 세월호를 넘어서, 국가주도에서 시민주체로, 선한 욕망이나 공공적 욕망의 복원 등등 많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 이런 것들이 새로운 동아시아를 여는 문제의식의 출발임이 분명한 이상,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동아시아의 ‘하늘’을 연 80시간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30일 오후부터 지난 3일 저녁에 이르는 총 3박 4일간의 동양포럼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 깊은 대화의 한마당이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연구와 공적인 업무로 쫓기는 한·중·일 삼국의 학자와 학생들 30여명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는 도전적인 테마를 위해 80여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향후의 동아시아의 미래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4일이었다.
또한 3일간의 포럼 중 하루를 과감하게 ‘젊은 세대의 대화’에 할애한 것 역시 종래의 ‘기성세대’ 중심의 학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젊은 세대 역시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기성 세대가 생각하기 어려운 진지하고 주체적이며 건설적인 의견들을 활발하게 주고받았다. 그 자리에 함께한 대부분의 기성학자들이 이 ‘세대 공공적’이고 ‘세대 배려적’인 시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한 것도 바로 이 점을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는 젊은이들의 대화마당이 좀 더 풍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80대(유성종, 김태창)와 70대(조철호)의 원로세대들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원로들에 의해 실험적인 무대가 기획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하나의 희망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삼국 간 그리고 삼세대간의 조화 속에서 내가 확인한 것은, ‘고전’과 ‘근대’ 그리고 ‘생명’이야말로 삼국간의 대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천(開天)’의 ‘천(天)’은 한·중·일의 고전이 공유하는 공통언어이다. 마찬가지로 ‘근대’라는 역사적 경험 역시 동아시아가 피해갈 수 없었던 통과의례와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들 사이에는 의미와 경험상에서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곧 ‘고전’과 ‘근대’라는 테마가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성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됨을 의미한다. 
반면에 ‘생명’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제시해 주고 있다. 나아가서 그것은 동아시아가 인류에 제안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의 모습이다. 인류가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이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야말로 서구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고, 세계의 그 어느 문명보다도 동아시아문명이야말로 이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이번 포럼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3일간 젊은 세대들의 활약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그들이 내 세대가 되었을 때도 동양포럼을 이어갈 수 있도록, 무언가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 개천절에 개최된 뜻깊은 대화 모임  

변영호 츠루문과대 교수


5월 초 동양포럼 첫 번째 한일회의에 참가한 뒤 이번에 ‘동양포럼 한·중·일 회의 Ⅱ’에 다시 올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김태창 선생님께서 교토포럼을 떠나신 후 청주에서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님,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님을 비롯한 뜻이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또 교토대 오구라 기조 교수님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김태창 선생님의 학문과 인품 때문일 것이다. 
내용도 교토포럼과 달라져서 김태창 선생님께서 품어 오셨던 생각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흐뭇했다. 
이번 포럼은 4가지 특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10월 3일의 ‘개천절’이 한국에서 고조선의 건국기념일로 이해되고 있는데, 오히려 개천은 그 말뜻에 있어서나 단군실화의 내용에 있어서나 특정국가의 건립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인간세계의 창발(創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특정국가(한국)에 갇혀버리지 않는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개천절을 현대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근거가 될 개천절이 반대로 국가를 넘어갈 수 있는 근거로써 재생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동일본대지진과 세월호 사건의 현장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보고가 있었는데, 여기서부터 생과 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인생에는 의미가 없으니 빨리 죽고 내세로 가고 싶다는 식의 자살을 유발하는 위험성도 있을 수 있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 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궁극적인 물음에 직결하게 될 것이다. 
지역 간 철학대화라는 의미에서 중국에서 온 중국학자, 일본과 한국에 와 있는 중국인 학자가 참가한 것은 아주 좋은 안배였다고 느껴졌다. 모두가 쟁쟁한 분들이라서 중국일국의 좁은 시야에 국한된 분도 없었고 날카로운 발언으로 포럼을 활성화시켰다. 마지막으로 한·중·일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참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발언에서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믿음직한 희망이 느껴졌다. 

 

● 말의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던 시공

카타오카 류 토호쿠대 준교수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말’이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만약에 동양포럼에 참가한 감상을 단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나의 경우에는 ‘말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고 할 것이다. 
개천(開天), 참가 전에는 거의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말이 생각지도 못한 풍부한 세계를 열어주었다. 오히려 내리막길에 접어든 나의 인생이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육체적 생명은 언젠가는 반드시 끝난다. 그러나 육체적 생명만이 생명은 아니다. 말이야말로 또 하나의 생명이 아닐까? 
동일본대지진 후에 ‘재개벽(再開闢)’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는 아직 어렴풋해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 말이 왠지 아직 멀리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이제 내 생명의 알맹이가 된 느낌이다. 감각적으로는 갓난아이가 새로운 말을 습득했을 때의 기쁨에 가깝다. 혹은 어디에선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 가사를 어느 새인가 흥얼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말은 사람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그러나 사람을 상처 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개천’이라는 말은, 말이 지니는 그와 같은 양면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나타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연다”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천지창조’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양쪽이 말에 의한 천지창조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천’은 유일신의 독언(獨言)에 의한 독창(獨創)이 아니라 대화(對話)에 의한 공창(共創)이다. 
더 중요한 것은 ‘천지창조’는 일회적인 사건인데 반해서 ‘개천’(=재개벽)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천’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생명은 35억년전에 시작됨과 동시에 매일 매 순간 시작되고 있다). 
또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는 열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 노력만으로 ‘개천’하는 것도 아니다. 
‘개천’과 ‘건국’은 다르다. ‘개천’과 ‘혁명’도 상반된다. 기성세대와 장래세대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의 동아시아의 희망이 될 수 있는 말이 새롭게 탄생하고, 또 계속해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 그것이 끝없이 지속되어 가는 것이 동양포럼의 원대한 사명이라고 느낀 3일간이었다. 

 

● 동아시아의 살림 연대를 꿈꾸며  

장지영 원광대 요가학연구소 연구원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자’라는 주제로 함께 철학하는 도시 청주에서 열린 이번 동양포럼은 ‘함께’라는 말이 돋보인 시간과 공간이었다. 한·중·일 삼국의 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활명연대’(活命連帶)라는 생명 살림의 가치를 꿈꾸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지역 간’·‘세대 간’ 대화를 통한 연대야말로 나이라는 시간적 거리를 좁히고 국적이라는 공간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첫 걸음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포럼은 나에게 크게 세 가지 ‘연대’의 의미로 다가왔다. 먼저 ‘개천’에 의한 ‘공감 연대’이다, 하늘은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은 특정국의 하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개벽’을 주창한 최제우 선생은 모두에게 열린 우주적인 하늘을 모실 것을 제안하였다. 이런 ‘모두의’ 하늘을 공공(=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공통 토대’가 형성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통(通)’에 의한 ‘(상호)이해 연대’이다. 일찍이 ‘장자’는 자신의 입장이나 욕망을 앞세우지 않아야(虛) 비로소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허통(虛通)’을 주장하였는데, 이번 포럼은 그 구체적인 ‘갈래’들을 직접 확인하는 자리였다. 가령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화통(話通)’이 있고, 서로 다른 마음을 나누는 ‘심통(心通)’이 있으며, 막힌 기운이 서로 통하는 ‘기통(氣通)’이 있다. 
이번 포럼을 통해서 ‘통’에도 여러 가지 ‘통’이 있음을 알았고, 이 ‘통’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자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생명-살림’에 의한 ‘실천 연대’이다. 생명은 ‘숨’에서 비롯된다.  숨이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나와 타자는 하나로 연결된다. 숨에 대한 인식이 확장됨으로써 개체적인 나에서 우주적인 나로 거듭나는 것이다. 자신의 숨에 집중하여 나의 숨과 하늘 숨이 연결되어 있음을 매순간 자각할 때 근원적인 ‘생기’가 발현되고, 이 생기로부터 타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살림 의지’가 생긴다. 이러한 살림 의지가 바탕이 되어야 ‘생명의 서열화’나 ‘동물적 폭력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살림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평소에 사회적 관심보다는 개인의 건강과 안위에 몰두하는 요가인들을 보면서 요가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무언가 늘 허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서 ‘공공함’의 의미들을 되찾게 해 주었고, 생명-살림을 바탕으로 한 ‘공공 요가’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 열린 시민의식과 자기혁신

이동건 국제퇴계학연구소 이사장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개천(開天)의 뜻이 개국(開國)의 뜻과 함께, 개심(開心 열린 시민의식)과 개벽(開闢, 사회개혁)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발표를 일본인 학자가 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큰 울림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지만 이번처럼 감동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인류의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의 개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200만년 전에 인간의 먼 조상이 탄생하고 기나긴 진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현생 인류의 진화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들이 지구상에 퍼지면서 오천 년 전 한반도의 원주민과 합쳐서 開天(개천)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弘益人間(홍익인간)을 지향하는 Innovation을 선택하였다. 
일부는 다시 이동하여 일본 열도의 원주민에게 발전된 문화생활을 전수하면서 정착을 하여, 독특한 민족성을 가지게 된다. 
‘동양포럼’에 참석한 많은 학자들의 토론 끝에 중국은 인(仁), 일본은 화(和), 한국은 통(通)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문화민족인 중국은 ‘사랑’과 ‘배려’로 공동생활의 묘(妙)를 창조하고, 일본은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예절을 민족성에 담았으며, 한국은 소통을 통해 열린 시민의식과 자기역사비판으로 홍익인간을 민족성에 담아냈다. 한·중·일 삼국은 근세에 자기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내세워 다른 민족의 권리를 빼앗는 동물적 근성의 역사를 만들어내어 함께 멸망을 재촉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경향이 사라지지 않고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을 만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세 나라 민족이 진화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환경에 적응하여 함께 상생(相生)을 할 수 있는 자기개혁의 방법을 찾아내어야만 한다. 중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문화강국의 긍지와 사랑, 배려로 일본인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조화와 예절로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통(通)’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국가나 민족이 아닌 열린 시민들의 결단으로 삼국을 단단하게 뭉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꿈을 현실에 실천하기 위해 ‘동양일보’가 기획한 ‘동양포럼’은 한·중·일 3국의 활명연대(活命蓮帶)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기위한 등대의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 하늘=우주생명과 동아시아 시민들의 소통의 시작

야규 마코토 미래공창신문 편집주임


개천절이 다가오는 10월 1~3일, 영광스럽게도 청주에서 열린 2차 동양포럼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헬조선’, 중국에서는 ‘미생(未生)’이라는 말이 각각 거론되고 일본에서도 ‘민(民)을 죽이는 나라 일본’이라는 책이 나오는 만큼 동아시아 세 나라의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화제가 나왔다. GDP만 보면 일본, 한국과 대중국권(Greater China; 중국, 대만, 홍콩, 마카우)을 합치면 거의 미국과 버금가는 경제 규모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낮은 출생률과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 세계적으로 비교적 높은 자살률을 비롯하여 각각 나라와 사회가 서로 비슷한 “힘듦”을 안고 있다. 돈이 있어도 그 분배가 잘 되지 않아서 빈부격차가 심하고,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고, 또 세월호 사건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에서 나타난 국가의 기능 부전, 과도한 이익추구 등으로 인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이 소외되면서 동아시아는 ‘대동아공영권’이 아닌 ‘대동아공고권(大東亞共苦圈)’이 되고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 각국, 각 지역의 시민들이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논의할 만한 문제이다. 아마 이에 대한 진솔한 논의들이 축적되면서 시민들의 유대와 연대, 나아가서는 함께하는 행복을 실현시키는 ‘동아시아 공복권(共福圈)’ 구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실현을 위한 중심역할을 동양일보와 미래공창신문이 함께 담당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동아시아 새로운 미래는 활명연대를 통해서

선지수 도호쿠대 대학원생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를 주제로 한·중·일 전문 학자들의 대화, 젊은 세대들의 대화, 세대 간 대화 세 개의 축으로 하는 3일간의 철학대화가 함께 철학하는 생명문화도시 청주에서 개최됐다.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고 할 때 특정인의 ‘미래독창(未來獨創:독자적으로 미래를 창조함)’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쉬운데 동양포럼의 특징은 ‘함께 연다’는 ‘미래공창(未來共創:다수인이 함께, 더불어, 치우침이 없이 일으키고 키워감)’을 강조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성이나 감성에 편중된 논의를 총체적 삶의 차원인 근원적 생명력에 주목하고 개개인의 생명활동과 더불어 시민 사이의 ‘활명연대’를 제창한데서 찾아볼 수 있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해 내가 거주하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는 2011년 대지진이 발생해 츠나미로 수천명이 일시에 목숨을 잃고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는 등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초적인 인프라를 국가에 일임한 것에 대한 깊은 반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지난 달에는 김태창 주간을 모시고 도호쿠포럼을 개최하여 세대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때 개체 생명을 넘어선 우주 생명의 자각과 국가 의존적 태도에서 벗어나 시민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이는 특정한 리더나 엘리트 중심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한국에서도 시민들의 자각을 바탕으로 활발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이를 통해 동아시아 3국에 어떠한 가치를 제안할 지 기대되는 바이다. 
동양포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날 발전토론에서 우주 생명의 자각에 대해 수긍을 하면서도 실감이 안든다는 젊은 세대의 발언에 대해 김태창 주간의 성심을 다한 응답이었다. 미지의 중국인과 일본인 의사가 한국인 한 사람의 위독한 생명을 구출해 낸 사실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활명연대를 실제로 체험했고 거기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 구체적이고 희망적인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국인과 일본인 의사와 한국인 환자의 개체생명을 함께 살리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밑받침하는 보다 큰 생명력의 현현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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